[단독] 청와대는 지금, 게시판 조작 중?… ‘입맛대로 공개’ 논란

[단독] 청와대는 지금, 게시판 조작 중?… ‘입맛대로 공개’ 논란

12일 상소문 형태 청원, 명문으로 공유돼 1만3000명 사전동의 했지만 공개 안 돼

기사승인 2020-08-19 18:11:38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첫 화면 갈무리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塵人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문재인 정권에서의 실정으로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신랄한 비판을 풍자적 형태로 약 A4용지 10장 분량에 걸쳐 펼쳐진 글이 올랐다. 해당 글은 ‘시무 7조’ 혹은 ‘진인(塵人·티끌 같은 사람) 조은산 상소문’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유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해당 글은 청원게시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가 게시판 운영기준을 개편한 지난 2019년 3월 이후 개시 전 1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공개하도록 하면서 아직까지 비공개 청원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당 청원의 사전 동의건수는 19일 오후 6시 기준 1만3000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상소문 형태의 진인 조은산의 시무 7조를 접한 네티즌들은 “멋진 상소문이다. 정치적인 건 싹 빼고 지금 우리가 당면해있는 어려움을 국민청원이라는 글로 아주 소상하게 적은 글”이라거나, “저는 왜 이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을까요. 정치색 다 빼고 그냥 많이 아프고 슬프네요. 어느 분인지 진짜 대단하신 듯”이라는 등 공감과 감탄의 답글을 달았다.

네티즌 일부는 글쓴이 ‘진인’의 필력과 표현력, 현재 국가 상황의 문제점을 깊숙이 찌르는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며 왜 청원글이 공개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지난 7월 ‘진인’이 올렸던 ‘다(多)치킨자 규제론을 펼친 청원인이 삼가 올리는 상소문’에 마음 상한 청와대가 글을 비공개 처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진인 조은산의 상소’.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투명성 논란 재점화

실제 청와대는 청원게시판 청원글 공개기준 등 세부내용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언론의 공식요청에도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청와대 게시판 홈페이지에 F&Q 형태로 간략한 방향성과 예시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개되기 위해서는 ‘100명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만 돼 있다.

공개가 어려워 ‘숨김’ 혹은 ‘삭제’ 처리가 되는 청원은 ▲동일한 내용으로 추후 중복 게시된 경우 ▲욕설 및 비속어를 사용한 경우 ▲폭력적, 선정적,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이 담긴 경우 ▲개인정보, 허위사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로 제한해 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진인’이 올린 상소문 2건에는 모두 해당 사항이 없다는 네티즌들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청와대가 입맛에 맞지 않는 글을 임의적으로 숨기거나 삭제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것. 이와 관련 김우석 전 통합당 수석대변인은 청와대가 게시판 운영기준을 변경한 지난 4월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것은 운영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김 수석대변인은 “게시판의 운영계획과 기준이 명확해야하는데 기준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청와대가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글을 취사선택한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게시판 운영계획이나 기준은커녕 의혹과 요구에 대한 반응조차 일체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국민청원이 문을 연 지 3년이 됐다. 책임 있는 답변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시작했지만, 때로는 답변 드리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면서도 “정부가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끝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짧은 소감만을 전했을 뿐이다.

‘진인 조은산의 상소’가 등록 일주일째 비공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알림창 갈무리

◆ 갈등과 분열의 정치 끝내달라는 절절한 호소

한편, ‘진인 조은산’의 상소문은 “폐하”, “소인”, “조정의 대신, 관료” 등 전제왕권시대에 사용할 법한 단어들로 현실의 어려움과 민생의 생각을 풍자와 은유를 섞어 담아냈다. 특히 그는 글에서 국정을 위해 고려해야할 7가지를 ‘시무7조’로 명명하고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

진인이 간언한 7가지는 ▲세금인하 ▲이성적 국정운영 ▲실리 중심의 외교 ▲현실주의적 접근 ▲인사(人事)의 엄정함 ▲헌법에 입각한 판단 ▲대통령 스스로 초심을 되새기며 새롭게 거듭나라는 당부였다. 그는 일련의 당부를 때론 날카롭게 때론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부드럽게 전했다.

일례로 진인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국회에 모여들어 탁상공론을 거듭하며 말장난을 일삼고 실정의 책임을 폐위된 선황에게 떠밀며 실패한 정책을 그보다 더한 우책으로 덮어 백성들을 우롱하니 그 꼴이 가히 점입가경”이라며 김현미·추미애 장관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빗대어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평생을 살아오며 무주택자 일주택자 다주택자라는 단어가 이토록 심오하고 엄중하며 잔인한 것인지 폐하의 실정 하에 처음 깨닫사오며 일찍이 폐하의 막역지우였던 故노무현 선황의 통치 하에서도, 폐하의 정적이었던 이명박 선황과 폐하의 제물이었던 박근혜 선황의 통치 하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참담한 헌법유린과 처절한 수탈과 극심한 분열과 외교적 고립을 겪사옵니다”라며 “폐하께서는 작금에 이르러 무엇과 싸우고 계신 것이옵니까”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끝내겠다는 폐하의 취임사를 소인은 우러러 기억하는 바, 성군의 법도는 제 자신마저 품을 수 있으나 폭군의 법도는 제 자신 또한 해치는 법, 부디 일신하시어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비로소 끝내주시옵고 백성의 일기 안에 상생하시며 역사의 기록 안에 영생하시옵소서”라는 바람을 담은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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