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21년 과업 끝낸 랑랑이 바흐에게 한 말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낸 랑랑 “나는 바흐를 느꼈다”

기사승인 2020-09-15 0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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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21년 과업 끝낸 랑랑이 바흐에게 한 말은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17세 소년은 피아노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앞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피아노 연주에 있어선 ‘천재 소년’으로 통하던 그였다. 클래식계는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빠뜨리지 않고 흡수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주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소년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완성하는 걸 자신의 평생 숙원으로 여겼다. 그가 ‘과업’을 마치는 데는 무려 21년이 걸렸다. 클래식계 슈퍼스타, 피아니스트 랑랑의 이야기다.

“저는 항상 준비됐다고 느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랑랑은 최근 쿠키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완성하기 위해 20여년 간 바로크 음악을 연구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에 꾸밈음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배워야 해요. 낭만 시대의 꾸밈음을 오려다가 바로크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바로크의 꾸밈음을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죠.”

그는 3년 전부터 독일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와 함께 바흐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중 최고로 꼽히는 글렌 굴드의 버전을 비롯해 파레하, 바렌보임, 안드라스 쉬프, 그리고 안드레스 슈타이어 등의 연주를 모두 섭렵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게 된 것들도 있었다. 랑랑은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에겐 특히 25번 변주를 해석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25번 변주의 굉장히 어둡고, 수동적이고, 고군분투하고, 상당히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해석을 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그는 “10대가 25번 변주를 연주하는 것은 고문 그 자체일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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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은 바로크 음악을 완벽히 재현하면서도 “오르간의 소리를 흉내 내는 것 같은 완벽한 스타카토와 아름다운 레가토 등의 순수한 테크닉을 조금씩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느린 부분은 더욱 느리게 연주하며 평온함이나 외로움, 한 발짝씩 언덕을 오르는 힘듦 등의 감정을 살렸다는 것이다. 연주 시간이 90분으로 길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감정적인 부분이에요. 사람들은 바흐나 바로크 음악을 감정 없이 연주하는 경향이 있어요. 필요 이상의 감정은 쇼팽이나 리스트, 슈만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방법론적으로 따지면 일부는 맞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라고 보면, 그 판단은 완전히 틀렸어요. 이 작품에 있어서도 낭만주의 작곡가들을 대하듯 완전히 마음을 내줘야 해요.”

전 세계를 신음하게 한 전염병은 랑랑의 녹음에도 영향을 줬다. 그는 애초 지난 6월에 스튜디오 녹음을 계획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을 3월로 당겼다. 하지만 준비가 충분했기에 어려움은 없었단다. 3월 초 바흐가 몸담았던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경험도 그에겐 확신을 심어줬다. “이미 바흐 옆에서 연주를 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엄청나게 힘든 일은 아니었죠. 좋은 피아노를 고르고, 음향을 신경 쓰는 것. 그거면 됐어요.”

랑랑은 이 작품 연주를 마친 뒤 바흐의 무덤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했다면 좋겠습니다.” 바흐가 자신의 연주를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 같으냐는 질문엔 “정말 모르겠다”면서도 “그가 나를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를 느꼈다”고 답했다. 생사를 뛰어넘은 교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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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은 오는 1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지난해 한국계 독일 음악가와 결혼한 그는 “한국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장모님이 항상 맛있는 불고기를 만들어주신다”고 말하며 웃었다. 코로나19로 70개 넘는 공연을 취소·연기한 상황이라 무대를 향한 갈증은 더욱 크다. 랑랑은 “어느 뮤지션에게든 악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요즘이기도 하다. 음악이 가진 거대한 치유의 힘 때문이다.

“우리 음악가들은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하고 계속해서 연습해야 해요.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줘야 하죠.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결속해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같이 일하고 클래식 음악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이 특히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더욱 와닿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짧은 연주를 담은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려고요.”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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