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디지털성범죄 형량 늘렸지만 “인기몰이식 양형”…연이은 비판

김희란 / 기사승인 : 2020-09-16 16: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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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대/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김희란 기자 =강화된 디지털 성범죄 처벌기준에도 여전히 시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는 지난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새롭게 마련했다. 양형위는 청소년성보호법 11조상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양형기준을 세분화하고 기존보다 높은 형량을 적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양형기준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성착취물 관련 범죄로 받을 수 있는 최대형량은 29년 3개월이다. 이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 상습범에 해당하는 형량이다. 양형위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 영리 목적 판매, 배포, 구입 등 4가지 영역에서 양형 기준을 기본, 가중, 특별가중, 다수범, 상습범으로 구분해 각기 다른 형량을 부여한다.

강화된 형량 기준에도 시민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는 형량이 여전히 적다고 주장했다. 최대 형량이 29년 3개월인 성착취물 제작 부분은 기본 형량이 최소 5년부터 시작한다. 판사의 재량에 따라 형량이 천차만별일 수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피해자들은 30년 이상 고통 받을텐데 29년도 짧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 29년부터 시작해야한다’, ‘미국은 징역 100년도 나오는데 한국은 왜 이렇게 징역을 아끼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대학생 정모(24·여)씨는 “여전히 솜방망이 형량이 부과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라면서 “최소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 외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처벌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상습범 적용은 제작 부분에만 적용될 뿐, 나머지 판매, 배포, 아동·청소년 알선, 구입 등의 영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제작 외 다른 부분의 최소 형량을 살펴보면 판매는 4년, 배포 및 아동·청소년 알선은 2년 6개월이다. 구입은 10개월이다. 시민 이모(26·여)씨는 “성착취물 제작이 가장 죄가 중한 것은 맞지만 판매와 배포, 구입이 디지털 성범죄 확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 알선, 구입에 형량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부과하면 사람들은 ‘제작만 안 하면 괜찮겠지’라는 인식이 박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n번방 사건' 주동자 조주빈(24) 

강화된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 법 제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새롭게 마련된 디지털성범죄 처벌기준은 다른 그 어떤 강력범죄보다도 형량이 높다. 기본 일반강간은 징역 2년 6개월~5년으로 새롭게 결정된 디지털성범죄 형량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살인죄는 참작 동기 살인 기본 기준 징역 4년~6년이다.

네티즌들은 ‘법이 인기투표냐’, ‘조두순이 조주빈보다 낫다는 말이냐’ 등의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 김모(24·여)씨는 “디지털 성범죄 창궐은 결국 성범죄 처벌에 소홀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파생된 것”이라면서 “여론에 따라 이렇게 쉽게 형량을 올려버릴 것이었으면 그동안 계속 논란이 됐던 성범죄 형량은 왜 그대로인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 뿐만 아니라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온라인이든 현실이든 그동안 성범죄에 대해 소홀했던 인식이 변화돼고 경각심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 범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 이상 무기징역 이하지만 기준이 넓고 양형 기준이 없다. n번방 운영자였던 ‘와치맨’ 전모(38)씨는 징역 3년 6개월형, ‘켈리’ 신모(32)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으며 논란이 됐다. 또 지난 2015년부터 약 2년 8개월간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해온 손정우(24)가 지난 7월6일 1년 6개월형을 마치고 풀려나며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안원하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기몰이식 양형”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그는 “모든 죄목을 죄가 중한 순으로 나열하고 무거운 죄목에 더 많은 형량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가장 이슈가 된다고 해서 이 부분만 강화하면 오히려 다른 범죄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들의 분노에 기반한 양형은 형법 체계를 ‘뒤죽박죽’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안 교수는 “형량을 더 높인다고 해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징역 100년도 때리는데 한국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냐’는 불만이 있는데, 미국이 형량이 더 높다고 해서 강력 범죄율이 더 낮은가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현재 강화된 형량을 더 높이는 게 아니라 범죄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면서 “디지털 성범죄자들 전면 검거를 위해 제도를 촘촘히 보완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더 도움 될 것”이라고 전했다.

heeran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