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도시락 두 개

기사승인 2020-09-23 13: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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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도시락 두 개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중태에 빠진 초등생 형제가 지난달 거주지 인근 편의점에서 음료 가격을 알아보는 모습이 찍힌 CCTV 영상/ 민수미 기자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상을 입은 초등학생 형제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주 인천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자주 가던 편의점에 들러 이야기를 듣고 폐쇄회로(CC)TV도 확인했습니다. 화면 속 큰아이가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 결심한 듯 과일 맛 음료를 들고 계산대로 뛰기 시작했죠. 주인이 바코드를 찍자 숫자가 깜빡였습니다. 아이는 이내 물건을 제자리에 뒀습니다. 보던 영상을 멈추고 가격을 확인했습니다. 1400원이었습니다.

편의점 주인은 형제의 특이한 행동을 기억합니다. 편의점에 오면 항상 오래 머물던 아이들.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었다, 뺐다 반복하던 아이들. 먹고 싶은 것이 많아 한참을 구경했고, 하지만 돈이 없어 고심 끝에 한두개의 음식만 샀다는 겁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루는 이랬어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둘이 신나서 음식 구경을 하더라고요. 과자, 핫바, 아이스크림 등을 장바구니에 넣었고요. 그런데 결국 뭘 사갔는지 아세요? 도시락 두 개. 먹고 싶은 거 말고, 먹어야 하는 걸 선택한 거죠. 생존을 위한 타협 아니었겠어요·…”

인간이라면 욕망과 양보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그 선택의 순간 앞에 서기엔 형제는 너무나 어립니다. 부모의 방임으로 시작된 불행을 학교,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어떤 곳에서도 막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비단 인천 형제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보호의 울타리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무관심 속에 방임과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인천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이제야 돌봄 사각지대를 점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재학대 의심 사례 집중 점검과 학대 사실 발견 시 엄정 대응도 약속했습니다. 당연히 해왔어야 할 일입니다.

안타깝지만, 사회적 책임이 모든 그늘을 비출 수 없습니다. 관리체계 밖에 있는 고위험 아동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른들의 관심입니다. 누군가 조금만 지켜봐 주면 해결할 수 있는 일로 꿈은 물론 생활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인천 형제의 집과 가까운 곳에서 마트를 하던 주민 A씨도 늦은 후회를 자책했습니다. “돌아보면 가끔 아이스크림 사러 올 때 빼고는 아이들을 못 봤어요. 형제가 밖에서 노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가게에 왔을 때 나라도 신경 써줬으면 어땠을까’ 요 며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을 사람들도 다들 같은 얘기고요. 근데 그럼 뭐해요. 너무 늦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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