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엘림은 여전히 롤드컵을 곱씹는다

기사승인 2020-09-25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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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엘림은 여전히 롤드컵을 곱씹는다
▲사진=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작지만 단단한 선수. 올해 데뷔한 T1의 신예 정글러 ‘엘림’ 최엘림에게 받은 인상이다. 하지만 그런 그 조차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 선발전 탈락이라는 ‘큰 사건’은 감내하기 힘든 것이었다. 쉬이 떨쳐낼 수 없는 아쉬움 탓에 휴가 중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최엘림을 2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T1 사옥에서 만났다. 이날 그가 자주, 반복적으로 언급했던 공통된 단어는 롤드컵이었다. 쿠키뉴스는 최엘림과 함께 올 시즌 활약에 대한 진단, 다음 시즌의 목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울러 ‘스트리머’ 최엘림 등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엿보는 시간을 가졌다. 

Q.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T1 정글러 ‘엘림’ 최엘림입니다.

Q. 최근까지 휴가였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휴가를 길게 받았는데, 연습실에서 솔로랭크를 조금 하다가 집으로 갔어요. 별다른 걸 하지는 않았고 가족들, 친구들이랑 만나서 잘 쉬고 왔어요.”

Q. 정말 다사다난했던 시즌이었죠. 오랜만에 받은 긴 휴식이었는데 어땠어요?

“음…. 사실 롤드컵을 못 가게 돼서 받은 긴 휴가라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워요. 쉬고 있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네요.”

Q. 갑작스럽게 롤드컵 선발전에 나서게 됐고,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결과는 아쉬웠어요. 경기가 끝난 뒤 괴로워하는 엘림 선수를 보고 저도 마음이 아팠는데, 당시 심경이 어땠나요?“

팀원들과 길게 호흡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엄청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할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결과가 나와서 슬펐어요. 경기가 끝난 뒤엔 다들 수고했다는 얘기를 나눴고 각자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한 시간 정도 멍 때리다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집에서도 생각 없이 누워만 있었어요.”

Q. 집에서 누워 있으면서도 경기 장면들이 숱하게 떠올라서 잠을 못 잤을 것 같아요.

“다전제는 첫 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초반에 꼼꼼하지 못했던 게 계속 생각났어요. 한타 때 어떻게 할지 서로 소통을 자세히 못한 것도 아쉬웠고요. 이길 수 있는 타이밍에 승기를 못 잡은 것도 아쉽고. 아쉬운 것들만 계속 생각났던 것 같아요.”

Q. 분위기를 좀 바꿔 볼게요. 프로게이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처음부터 열심히 게임을 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롤을 잘하진 않았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첫 배치에서 브론즈 2 티어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제가 게임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서 우승도 많이 차지하면서 이게 제가 가야 될 길인 걸 알았죠. (포지션은 처음부터 정글러였나요?) 중학교 때 친구들과 대회를 나갔는데 친구들이 정글을 잘한다고 해서 정글을 하게 됐어요.”

Q. 아마추어 시절 KeG 팀으로 유명했었어요. 당시 ‘도란’ 최현준(DRX) 선수와 ‘구마유시’ 이민형 선수도 같은 팀이었죠. 어떻게 팀을 결성하신 거예요?

“당시 도란 선수와 게임 친구였어요. 도란 선수가 귓속말로 같이 대회를 나가자고 제안했어요. 멤버에 민형이가 있길래 수락했어요. 챌린저끼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거든요. 그 멤버라면 쉽게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함께 하게 됐어요.”

Q. 한국 대표로 나간 대회 결승에서 SK 텔레콤 T1 롤드컵 우승 스킨을 팀 전원이 전부 장착하고 나가서 화제가 됐었어요. 배경이 궁금한데요.

“그 때가 아마 제가 T1에 들어온 직후였을 거예요. 구단 허락을 받고 나간 대회였는데 초반에 승을 쌓아두면 퍼포먼스를 보여주자고 멤버들과 얘기 했었어요. 당시 민형이까지 포함해서 T1 멤버가 2명이라서 SKT 스킨으로 정했죠. 챔피언 조합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쿠키인터뷰] 엘림은 여전히 롤드컵을 곱씹는다
▲사진=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Q. T1 아카데미 입단 당시, ‘벵기’ 선수가 직접 엘림 선수를 뽑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정말 존경하는 선수예요. 롤드컵도 우승하셨고 T1에서 좋은 모습도 많이 보여주셨죠. 아직 직접 만나 뵙지 못한 게 아쉬워요. (정말요? 얼마 전에 벵기 선수가 사옥에 들른 것으로 아는데요.) 그 때도 제가 휴가여서 기회가 없었어요(웃음).”

Q. ‘벵기’ 선수 하니까 엘림 선수의 롤모델이 궁금해졌어요.

“예전에는 벵기 선수였어요. 요새는 LPL의 카사 선수가 롤모델이예요. 운영방식이 무척 스마트 한 것 같아서 본받고 싶은 선수예요.”

Q. 바깥에서 바라 본 T1과 1군 합류 후의 T1은 어떤 점이 달랐나요?

“아카데미와 1군은 교류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당시에는 목표의식, 소속감 등이 확실하지 않아서 다소 막연하게 ‘출전하고 싶다’ 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1군에 오니까 확실히 목표 의식이 생기더라고요. 이기고 싶고, 롤드컵에 나가고 싶고 그런 것들요.”

Q. 선배인 커즈 선수가 있었는데, 이토록 데뷔를 빠르게 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어요. 커즈 형한텐 정말 배울 점이 많아요. 자신이 확실하게 이득을 볼 수 있는 동선을 짜는데, 연구를 많이 한 게 느껴져요. 올 시즌 형과 함께 경쟁도 하고, 플레이도 같이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Q. T1의 스카우터로도 유명하잖아요. 칸나, 클로저 선수에게 입단 제의를 한 걸로 아는데 올 시즌 데뷔까지 한 두 선수한테 보답으로 선물이라도 받아야 되는 거 아닐까요?

“그 친구들이 잘 해서 온 거라 제가 한 건 없어요. 그렇지만 선물 해준다면 받을 의향은 있어요. 사실 칸나 선수한테 장난으로 생색을 낸 적은 있어요. 주전으로 뛰게 됐으니 비싼 시계를 사 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받진 못했어요. 하하.”

Q. 최근 T1 아카데미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롤 더 넥스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는데, 선배로서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아마추어 대회도 휩쓸고 엄청 잘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자부심이 생기죠. 경쟁심, 승부욕 등을 느끼진 않아요. 같이 잘해서 한국에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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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Q. 스트리밍에서 많은 매력을 보여주면서 팬 분들한테 상당히 인기가 많은 걸로 알아요. ‘꼰림(꼰대 엘림)’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요. 동갑내기 친구들과 지내다보니 학창시절에는 몰랐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제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장난이고요. 형들한테는 차마 못하겠고 동생들에겐 자주 그런 장난을 많이 거는 편이예요. 동생들도 저한테 장난을 많이 치고 있어요. 프레임이 있다 보니 그런 콘셉트로 밀고 있는 감도 있죠(웃음).”

Q. 최근 개인 방송에서 했던 어록들이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더라고요. ‘선발전 비하인드 스토리를 5년 후에 풀 거다’, ‘탑에서 나를 막을 사람이 없다’ 등의 발언을 하셨더라고요. 

“하하.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게 엄청 큰 건 없어요. 5년 뒤에 풀 수 있다면 풀 생각이고요. 탑 얘기도 재미삼아 한 거예요. 제가 휴가 때 솔로랭크로 탑을 많이 갔는데 프로 선수들이 휴가 중이다 보니까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연승을 좀 했거든요. 포지션 변경 등은 생각 없어요. 정말 재미삼아 한 말이예요(웃음).”

Q. 최근에는 T1 선수들끼리 ‘어몽어스’를 하던데 누가 제일 못한다고 생각하세요?

“(이)상호랑, 페이커 형이요. 페이커 형은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조금 재미를 아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연기를 잘 못해서 T1 선수들 사이에선 중간 정도라고 생각해요.”

Q.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이었고, 다가올 시즌 목표는 무엇일까요?

“올해는 경기를 많이 나가고 싶었던 게 목표였어요. 또 롤드컵에 가고 싶었는데 이 목표는 이루지 못해서 아쉽고요. 다음 시즌에는 폼을 많이 끌어올려서 챔피언 폭도 많이 넓히고 싶어요. 올 시즌 경기에 나서면서 챔피언 폭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많이 경기에 나서진 않았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즌 같아요. 순간순간의 판단으로 게임의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특히 정글러는 경험이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이 경기에 나서면서 꼭 롤드컵에 나가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올 시즌 T1과 엘림 선수를 응원해주신 팬 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개인적으로 경기를 많이 못나가서 아쉬운 시즌이었어요. 코로나19로 팬 분들을 직접 뵙지 못했잖아요. 응원 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서 힘이 많이 됐는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꼭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기량을 갈고 닦아서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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