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추석 연휴 끝나면 이혼할게요"

기사승인 2020-10-01 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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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나는 결혼에 적합한 여자가 아니야. 결혼과 결혼에 의해서 따라오는 제반의 의무를 수행할 자신도, 의지도 없어.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난 누구의 아내, 며느리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기보다는 그냥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어.…(중략) 퇴근 후에 자기 계발도 하고 공연 같은 거 보면서 릴렉스를 하고 싶지, 집안에 가서 살림에 치이고 싶지 않아. 집안일도 제대로 못 해내고 있다고 자책에 빠지고 싶지도 않고. 명절 때나 온갖 경조사로, 며느리의 의무로 속박받고 싶지도 않고”

지난 2017년 방영된 KBS 드라마 ‘아버지가 너무해’에 등장한 대사입니다. 극 중 변혜영이라는 캐릭터는 한국의 보수적인 가족관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남자친구의 청혼에 “한국에서 며느리는 카스트 제도에서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라며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죠. 변혜영의 대사에 당시 많은 여자가 동질감과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건 기혼자들이었습니다.

쿡기자에게도 변해영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비혼 선언을 했던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몇 년 전 결혼을 했습니다. 사랑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제사 많은 집의 장남과 결혼한 친구는 최근 했던 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봐. 이번 명절 노동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거든. 양가 부모님 앞에서 ‘올해 추석만 지나면 이혼하겠다’ 선언하는 꿈을 꿨어. 잠에서 깬 직후에는 웃겼는데 나중에는 슬퍼지더라. 할 거면 바로 하지 추석은 왜 기다려. 무의식 속에서도 차례상은 차리겠다는 거잖아”

이번 추석 특선 영화로 ‘82년생 김지영’이 방영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서는 이혼 장려 편성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소비되었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의 노동이 여성에게 쏠려 있는 명절에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상차림은 왜 여성들이 주가 되어 준비해야 하는지, 남편의 일은 왜 ‘돕는’ 수준에 그치는 건지, 그것마저 시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친정보다 시댁을 먼저 가야 하는지 연속되는 물음표를 관습이라는 틀린 답에 대입하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요. 물론 명절 증후군은 며느리들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통의 비중으로 볼 땐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은 분명하죠. 한 결혼정보업체에서는 여성들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차례·제사 횟수를 묻는다고 합니다.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절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가족들과 만나 정을 나누고 화합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특히 모두 모여 먹는 밥 한 끼가 값진 시대에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절대적인 노고가 필요한 명절은 나쁩니다. 일방적 희생으로 빚었다면 그것이 평화라 할지라도 위태로운 법이죠. 예전과 비교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변한 것도 없는 명절,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지금 엄마와 아내의 표정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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