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법원 앞에 모인 여성들

이소연 / 기사승인 : 2020-11-26 14: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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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박사방’ 일당의 선고일. 여성들이 법원 앞에 모여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여성들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라며 행동과 연대를 멈추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현우)는 26일 오전 10시 조주빈과 박사방 일당 등 6명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조주빈의 신상은 10년간 공개 고지된다. 3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도 명령됐다. 1억여원의 추징과 압수된 범죄수익에 대한 몰수도 이뤄진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유인·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다”며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추가 피해에 노출되게 하고 극심한 고통을 줬다. 피해자들은 피고인을 엄벌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조주빈의 공범에게도 중형이 선고됐다. 강모씨 징역 13년, 천모씨 징역 15년, 장모씨 징역 7년, 임모씨 징역 8년이다. 미성년자인 이모씨에게는 징역 10년에 단기 5년이 선고됐다. 미성년자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치다.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전경. 

이날 재판정 방청객의 다수는 여성이었다. 이들은 재판을 지켜보며 선고 내용을 꼼꼼히 필기했다. 조주빈 등 피고인이 재판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주시했다. 중형이 선고되자 여성 중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방청객 김모(29·여)씨는 “조주빈 등에 대한 선고가 다른 텔레그램 성착취물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많은 여성들이 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이모(31·여)씨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크게 화가 났다”며 “그간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가볍게 보는 것 같아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재판을 방청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n번방 디지털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eNd팀의 피켓 시위. 

이날 재판에 앞서 ‘n번방 디지털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eNd팀’(eNd팀)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재판이 끝날 때까지 ‘N번방에서 감방으로 단 한 놈도 놓칠 수 없다’는 피켓을 들고 엄벌을 촉구했다. eNd팀은 “조주빈이 검거된 날로부터 벌써 247일이 지났다. 그러나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날 동안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가해자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들을 쫓아 수없이 많은 재판을 방청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한 춘천, 대구, 제주 등 전국 곳곳의 재판을 직접 감시하며 매순간 크게 분노해야만 했다”며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지금과 같은 대규모 성착취 범죄를 양산했다는 책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가해자가 강력 처벌받을 때까지 절대로 끝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조주빈 등에 대한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재판이 끝난 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이 모인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같은 날 오전 11시 재판이 끝난 후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절대 잡히지도 않고 처벌받지도 않는다’고 비웃어왔다”면서 “적어도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오늘로써 틀린 것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조주빈 외 수많은 가해자가 법정에 서고 있지만 죗값을 제대로 받은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면서 “우리는 정말로 끝장을 볼 것이다. 더 많은 시민과 함께 길고 노련한 호흡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텔레그램 성착취물 사건에서 가해자 중심의 양형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효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거의 모든 가해자가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 실제 판결에서는 감형 사유가 되기도 한다”며 “가해자가 진정으로 사과할 대상은 피해자여야 마땅하다. 정말로 본인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그에 걸맞은 판결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조주빈 등에 대한 선고 이후 퍼포먼스를 진행 중이다. 

앞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성착취물이 제작, 공유돼 논란이 됐다. 이른바 ‘n번방’이다. 경찰의 수사를 따돌리기 위해 1번~8번방까지 8개 대화방을 운영해 n번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후 n번방을 모방한 박사방 등이 등장했다. 이같은 대화방에서는 미성년자를 비롯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했다.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등은 경찰에 검거, 구속기소 됐다. 이들의 범행에 가담한 공범들도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