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차인표 “오래 안주한 ‘바른생활’ 이미지… 변해야겠구나 느꼈죠”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1-13 0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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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네가 밥 벌어먹는 것도 내 이미지 때문이야.”

영화 ‘차인표’(감독 김동규) 속 차인표(차인표)가 매니저에게 하는 말이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오가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 역시 배우 차인표의 '이미지' 덕분이다. 지난 1994년 시청률 45.1%를 기록한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대단한 히트 드라마로 신인에서 전 국민이 아는 스타가 된 차인표. 그는 영화 '차인표'에서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와 ‘4대 천왕’으로 예능에 출연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한물 간 스타로 등장한다. 이 같은 설정이 단순히 영화적 설정인지, 현실의 반영인지 구분하기 모호하다. 5년 전 ‘차인표’의 대본을 읽은 차인표가 출연을 고사한 이유도 그래서다.

그로부터 4년 후 차인표는 다시 찾아온 제안을 받아들였다. ‘차인표’는 주인공 차인표의 출연 결심을 시작으로 제작에 착수했고, 지난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차인표는 대본을 처음 읽었던 5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5년 전 처음 읽은 ‘차인표’는 대본 속 차인표가 정체기를 겪고 있었어요. 현실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난 아직 활동하고 작품하고 있는데, 굳이 왜 나를 망가뜨려서 영화를 찍어야 돼’가 주된 거절 요인이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영화 대본 속 상황과 비슷해져가더라고요. 기다려도 영화를 할 기회가 안 생기니까 나중엔 ‘어?’라고 생각했어요. 현실과 허구가 동일시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 도전이 희화화되고 외면 받으면 어떡하나 부담감은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봐주고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어느 정도 의도대로 성취된 것 같아서 좋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는 스릴이 있었죠. 호불호는 많이 갈리지만요.”

▲영화 '차인표' 스틸컷

차인표는 자신의 이미지를 소재로 한 ‘차인표’에 출연하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자신이 나서서 대본을 고치지 않겠다는 것. 현실의 차인표는 감독이 창조한 '차인표'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극 중 차인표의 대사를 소화하면서 실제 자신의 마음과 캐릭터의 마음 경계선에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대본에 현실과 다른 모습이 있어도 넘어갔지만, 한 가지 수정을 부탁한 대목도 있었다.

“‘차인표’는 제 초상권으로 만든 영화잖아요. ‘이건 아니고 이게 나예요’라고 잔소리하기 시작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죠. 만약 제가 그렇게 했다면 영화가 안 만들어졌을 것 같아요. 어쨌든 김동규 감독이 ‘차인표’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쓰면서 자기만의 작은 영화적 세계를 창조해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허구를 모호하게 오가는 세상을 만들었고, 인물이 생각하거나 말하는 건 현실을 복제한 게 아니라 제3자로서 저를 관찰한 인물에 의한 거예요. 여기서 제가 대본을 바꿔 달라고 하면 장르를 훼손함과 동시에 그냥 ‘다큐’가 됐겠죠. 그 지점에서 조심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만 차인표가 정치인이 되고 싶어 하는 에피소드는 수정해달라고 했어요. 그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차인표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대본처럼 바뀐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봤다. “대본이 현실을 잘 본 것 같다”, “상업영화계에서 투자가 안 되는 배우가 있는데, 제가 그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차분하게 말하기도 했다. 속상한 것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소재로 코미디를 유발시킬 수 있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한 '바른생활'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여유가 있었다.

▲사진=넷플릭스

“제가 제 입으로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하진 않아요. 하지만 부여받은 이미지로 오랫동안 살면서 얻은 게 많았어요. 잘 먹고 살 수 있었고, 연예인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죠. 분노 캐릭터도 생겼고 좋은 일이 많았어요. 그 이면을 보면, 제가 제 이미지에 안주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편안한 구역에 들어가서 이미지를 즐기면서 너무 오랫동안 안주한 것 아닌가 싶어요. 변화를 하지 않으니까 팬들이 떠나갔는데, 떠나간 줄 모르고 기다린 거죠. ‘어? 이게 아니구나’,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느끼고 있을 때 만난 작품이 이 ‘차인표’ 영화예요.”

차인표는 2년 전 코미디팀 옹알스가 라스베가스 무대에 도전하는 다큐멘터리 '옹알스'를 연출한 감독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부분 작품 제작이 중단되자, 송일곤 감독과 함께 공동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 창작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차인표는 ‘차인표’를 배우로서의 분기점으로 생각했다.

“제 출연작이 12~13개 정도 있어요. 전 이번 ‘차인표’ 이전까지를 ‘비포 차인표’, 지금부터는 ‘애프터 차인표’라고 생각해요. 이전까지는 제 고정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작품을 선택했다면, 이제부턴 제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장르는 코미디에 제일 관심이 많아요. 주성치 감독의 작품 같은 코미디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꼭 코미디가 아니라도, 위로받거나 한시름 놓고 크게 웃을 수 있는 작품들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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