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배송 제한 등 ‘과로방지’ 합의… 물류유통 변화 불가피

오준엽 / 기사승인 : 2021-01-21 18:01:55
- + 인쇄

분류작업 전담인력 투입, 자동화 설비 구축, 수익구조 개선 등 7개 사안 합의
택배업계 총파업 철회했지만, 구체화 등 풀어야할 숙제 ‘산적’… 2·3차 합의 주목돼

사진=쿠키뉴스DB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설 명절을 앞두고 물류·유통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사태로 새벽배송이나 야간·심야배송, 로켓배송 등의 형태가 자리를 잡은 가운데 상충해온 ‘소비자 편의성’과 ‘노동자 생존권’에 대한 일부 조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 21일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택배업계 노사가 한 자리에서 서명한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이 있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날 택배사와 택배기사는 총 7가지 사안을 합의했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이었던 ‘분류작업’의 책임소재가 명확해졌다. 택배를 타인과 본인(택배기사) 택배로 구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책임은 앞으로 택배사가 지기로 했다.

아울러 택배기사의 ‘공짜노동’이라고 논란이 됐던 분류작업 역시 택배사가 전담하기로 했다. 자동화 설비 구축계획을 수립하고, 완료 전까지 별도 인력을 투입하거나 택배기사들에게 분류작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방안도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는 자동화 관련 예산과 세제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오후 9시 이후 심야배송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제한하기로 했다. 택배기사의 주 최대 작업시간도 60시간, 일일 최대 12시간을 목표로 정하고,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사업장 등은 동포 외국인력(H-2)을 허용하는 방안 등도 공감대를 이뤘다. 설 성수기 택배종사자 보호를 위한 특별지원인력 투입계획 이행도 약속했다.

수익배분 등에 대한 방안도 마련됐다. 당장 소비자로부터 받은 택배비는 택배사업자에게 온전히 지급될 수 있도록 유통산업 및 택배거래 구조개선을 추진하고, 국토부는 근본적인 거래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키로 했다. 이밖에 갑질 방지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9월까지 현장에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련의 합의가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 택배업계 종사자는 “만약 합의문대로 바로 시행되면 물류대란은 불가피해보인다. 당장 택배사는 막대한 추가비용이 소요되고, 충분한 택배인력이 수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측면을 인정했다. 다만 설 명절 물류대란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지난 18일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한진택배 과로사 대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박효상 기자

아직 선언적 성격의 1차 합의에 지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부족한 점, 합의에 동참하지 않은 로젠택배 등 여타 물류유통·택배업계의 참여가 불투명한 점을 거론하며 급격한 변화에 따른 업계의 충격을 완화할 계획 등이 구체화되기까지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에 당정과 업계의 2, 3차 합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택배노조는 이날 합의문 서명 후 예고했던 총파업을 일단 철회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노조)는 21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회의실에서 노사 간 합의안 도출에 대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했다”며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분류작업은 택배 사업자 책임이고 택배 기사들의 업무는 집하와 배송으로 한다’고 명시했다”며 “28년 동안 공짜노동으로 일해왔던 분류작업으로부터 노동자들이 해방되고 벗어난 날”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택배 분류인력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에 쟁점에서 택배기사에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아쉬움도 드러냈다.

이와 관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늘 합의는 첫 출발이지만 중요한 문제는 방향을 거의 다 짚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택배를 포함한 물류산업을 어떻게 더 키울지, 일자리를 확충하고 좋게 만들지에 대한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합의 토대로 해서 살 붙이고, 현실에 뿌리 내리도록 보강하는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도 “다행스러운 출발”이라면서 “이제 다음 과제가 남았다. 불공정 관행과 갑질을 막을 수 있는 구조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책임 있는 조치를 마련해 택배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논평을 남겼다.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