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호텔거지를 만든 건

기사승인 2021-02-19 07: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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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호텔거지를 만든 건
[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1인가구 900만 시대다. 지난해 연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서 1인가구는 906만3362가구로 전체 가구의 39.2%를 차지했다. 10가구 중 4가구가 1인가구인 셈이다. 반대로 일반적인 가족형태로 여겨지던 4인가구 이상 가구는 전체 가구에서 2016년 25.1%에서 지난해 20.0%로 줄었다.

이에 따라 1인 가구 부동산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다행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 관련 다양한 사회적기업, 시민단체 등이 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사회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시장에 제시하는가 하면, 월세 지원 정책에 대한 개선방안을 내고도 있다. 

지난해 1인 가구 주거 문제의 대안으로 이슈가 된 사회주택으로는 서울 성북구 ‘호텔개조 공유임대주택’인 안암생활이 있다. 당시 안암생활은 시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해 입지가 좋고 월 임대료는 27만~35만원 수준으로 저렴해 주목받았다. 또 청년주거 시민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서울시청년주거상담센터 운영)은 최근 한국도시연구소 의뢰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의 주거 지원 방안이 저소득 청년계층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 차원에서의 움직임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정부의 주거정책은 줄어들고 있는 3~4인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생애최초 특별공급 주택 범위를 넓혀 조건을 완화했고 올해부터 소득요건을 더 완화하는 등 무주택자들에게 희망을 줬다. 하지만 이는 기혼이거나 자녀가 있어야만 신청할 수 있다. 미혼인 20~40대 1인가구는 자격조건이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는 지난해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2025년까지 청년주택 27만3000가구를 공급하고 전월세 자금 대출 지원 등을 통해 청년 주거부담을 낮춘다고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민달팽이유니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월세자금 지원 방안은 전세대출과 비교했을 때 더욱 까다로운 조건과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이용률이 현저하게 적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갔을까. 정부는 잘못된 홍보를 통해 잘 기획된 1인가구 임대주택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안암생활이 그 예다. 지난해말 안암생활이 내부 모습이 공개되자 3~4인가구가 살기에 공간이 좁다는 등의 이유로 비난 여론은 거세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호텔거지’라는 혐오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뭔가 이상하다. 1인 가구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임대주택을 놓고 3~4인 가구가 살기에 좁아 전세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는 비판이라니. 더욱 재미난 건 그렇게 욕먹던 임대주택은 입주가 시작된 지 두어 달이 지난 지금, 입주자들의 만족감은 물론 입주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만족도와 관심도가 큰 해당 주택이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부의 잘못된 홍보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부는 안암생활 주택을 공개하기 전 ‘적정 주택 공급량을 제시하지 못하고 혼선을 빚었던 이유’와 ‘1인 가구의 증가 추세’를 연관 짓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대책 일환으로 호텔임대주택을 발표했다. 그 전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월세 대책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호텔방을 주거용으로 바꿔 전월세로 내놓는 방안 등이 준비되고 있다고 답했다. 전세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1인가구 호텔임대주택을 통해 안심하라고 했으니, 시민들의 분노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1인가구를 위한 주거방안 마련과 전세대책은 분명 다른 방향으로 홍보됐어야 했다.

1인가구가 늘고 있다. 사회적기업과 시민단체는 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도 예정돼 있다. 아무쪼록 정부는 3~4인가구 만큼이나, 어쩌면 이들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1인가구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홍보가 필요해 보인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그 사회 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만큼 반영됐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는 한 취재원의 말이 떠오른다.

asj0525@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