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한예리 “영화 ‘미나리’, 이렇게 관심 받을 줄 몰랐어요”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3-04 06: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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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우 한예리. 판씨네마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는 첫 장면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아칸소로 이사하는 한국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스한 햇볕 아래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건 차가운 콘테이너 주택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모니카(한예리)는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에게 화를 낸다. 모니카는 아칸소에서 자신의 농장을 일궈 성공을 꿈꾸는 제이콥과 생각이 다르다. 불확실한 제이콥의 모험을 지켜보는 모니카의 시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따가워진다. 시간이 갈수록 모니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긴장하며 지켜보게 된다.

‘미나리’엔 배우 윤여정만 있는 게 아니다. 배우 한예리도 한국배우로 ‘미나리’에 출연하며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쿠키뉴스와 만난 한예리는 지난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과 ‘미나리’는 다른 얘기라고 했다. “‘미나리’엔 ‘미나리’만의 온전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한예리는 첫 대본을 읽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어색한 한국어로 번역돼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정이삭 감독님을 뵙기 전에 번역된 첫 대본을 먼저 받았어요. 번역이 완전하지 않아서 ‘미나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모니카의 이야기를 완전히 알 순 없었죠. 뭔가 좋은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서 감독님을 빨리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을 뵀는데 정말 좋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과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SBS 드라마 ‘녹두꽃’을 촬영 중이라 끝나는 날짜가 정확히 나온 상태가 아니었어요. 혹시 제가 못하게 되면 꼭 좋은 한국 배우를 소개해드리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모니카가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인물이라 연기하는 배우도 한국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영화 '미나리' 스틸컷

한예리는 ‘미나리’ 촬영 중 윤여정에게 1980년대에 이민을 가는 의미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당시엔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민을 결심하려면 다신 한국의 가족들을 못 볼 수 있다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모니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예리는 모니카를 연기하며 가장 고민했던 건 남편인 제이콥과의 관계였다.

“모니카는 왜 제이콥의 곁에 있고, 왜 그를 사랑하는 걸까, 모니카가 가장 원하는 게 뭘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생각하다보니 모니카가 가장 크게 갖고 있는 감정은 사랑이더라고요. 그게 뿌리가 돼서 가족을 지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누구보다 가정의 해산을 원하지 않는 캐릭터인거죠. 자신을 좀 희생해서라도 아이들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기르고 싶지만, 제이콥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관계가 끊어지지 않길 바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기하면서 모니카가 제이콥을 많이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걸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이 겪은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다. 정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설명하며 한예리에게 특별히 요구한 건 없었다. 대신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다툰 이야기, 그 당시 느긴 불안감과 부모님의 표정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예리 역시 모니카를 연기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많이 떠올리려고 했다.

사진=배우 한예리. 판씨네마

“부모님들이 싸우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의 기억과 엄마의 표정을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와 이모, 할머니가 갖고 있던 얼굴들, 뭔가 참고 있는 입매, 그때의 눈빛들이 제 기억에 있더라고요. 저도 조금씩 기억을 꺼내면서 표현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어쩔 수 없이 불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거잖아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제이콥과 모니카는 어린 나이에 경제적인 기반 없이 아이를 기르면서 뭔가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거기에 아이가 아프고 낯선 곳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트러블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최근 미국에서 각종 시상식을 휩쓰는 ‘미나리’는 사실 작은 규모로 제작된 미국 독립영화다. 한예리도 영화를 찍으며 자신이 할리우드에 진출한다거나, 할리우드 시스템을 경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국에 머물며 홀로 ‘미나리’를 홍보하며 미국에서 들리는 좋은 소식들을 접하는 게 오히려 좋다고 했다.

“이렇게 관심 받을 줄 몰랐어요. 전 미국에 살거나 이민을 가지 않아서 이 이야기가 얼마나 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마음을 울리는지는 몰랐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미나리’를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매일 좋은 소식이 들려서 기쁘고 선물 같지만, 제가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고 있진 않아서 덤덤하게 넘어가고 있어요. 지금이 오히려 제 스스로에겐 좋은 시간들 같아요. 다음 작업을 위해서도 좋은 것 같고요. ‘미나리’를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아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든데,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잠시나마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고 따뜻함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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