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이 부동산에 이어 가상화폐 정책까지 실패한 경우 청년층의 민심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 20년 집권론'은커녕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대선 정국에 먹구름이 끼면서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26일 오후 6시 18분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 12만4147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이 글은 지난 22일 은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대책 등을 묻는 질의에 미등록 암호화폐 거래소의 9월 폐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가상화폐가) 이 부분(제도권)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가상화폐 투자를 많이 하는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줘야 한다"라고 발언한 이후 등록됐다.
암호화페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지난 14일 8100만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하다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5000만원 선까지 폭락했다.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하셨다"면서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됐을까. 지금의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일침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4050 인생 선배들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불려놓고는 암호화폐는 투기니 그만둬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 생존이 달려있는 주택은 투기 대상으로 괜찮고 코인은 투기로 부적절하다? 어른답게 배울게 많다"고 지적했다. 청원인의 글에 그간 분노를 조금씩 분출해 왔던 2030세대들이 폭발적으로 공감했다.
암호화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과 함께 "자산으로 인정은 안 한다면서 세금은 왜 걷는다고 하나" "젊은 사람들이 바보인줄 아나" "어른들은 부동산으로 다 돈 벌었으면서 2030세대만 노예로 살 순 없다" 등의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을 '신분을 상승 시켜 줄 유일한 사다리'로 본 청년들의 분노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집값이 폭등하고 각종 규제로 내 집 마련 꿈이 사라졌다는 불만이 쌓인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암호화폐 투자를 한탕주의로 치부하자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미 부동산 이슈 등으로 4·7 재보선에서 지지를 철회한 2030세대의 민심을 확인한 민주당은 이같은 청년들의 반응에 화들짝 놀란 눈치다.
가뜩이나 재보궐 선거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아 위태로워진 '20년 집권론'이 더욱 멀어질 위기에 닥치자 더불어민주당은 은 위원장을 일제히 때리며 2030 마음잡기에 나섰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 후 "가상화폐와 관련해 앞으로 당내 대응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을 이뤘다"며 "당 차원에서 청년세대에게 가상화폐 투자가 불가피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과, 소통의 필요성에도 (다들)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암호화폐 시장이 위험하니 막겠다는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암호화폐 정책은 그때(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 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노웅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은성수 위원장의 협박성 발언 이후, 코인 가격은 30% 가까이 급락했다"며 '본인의 위치와 파급력을 생각하면 정말 '참을 수 없는 발언의 가벼움'이고, 시장에 큰 충격을 준 부분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용기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기성세대의 잣대로 청년들의 의사 결정을 비하하는 명백한 꼰대식 발언"이라면서 "금융위는 정신 좀 차리라. 당국이 정말 어른인 척하고 싶으셨다면 맞니 틀리니 훈계할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돈을 벌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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