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2021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 개막을 앞두고 대부분의 관계자는 DRX가 하위권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글러 ‘표식’ 홍창현을 제외한 주전 선수 4명이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DRX는 좋은 호흡과 경기력을 바탕으로 최종순위 5위(9승 9패)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탑 라이너 ‘킹겐’ 황성훈은 특히 괄목상대한 모습을 보여주며 DRX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다. 때로는 든든한 방패처럼, 때로는 날이 선 칼처럼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부진에 빠졌던 스프링 스플릿 2라운드에도 묵묵히 분전하면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비록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4위 T1을 만나 세트 스코어 1대 3으로 패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황성훈은 아쉬움은 모두 털어버리고 연습에 매진 중이다. 서머 스플릿에는 “‘한체탑(한국 최고의 탑 라이너)’으로 거듭나겠다”며 연습에 매진 중인 황성훈을 7일 서울 오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받은 긴 휴식이었는데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번 휴가 때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마음을 버렸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있거나, 부모님과 산책하면서 보냈습니다. 사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두 힐링으로 다가왔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친구들과 제대로 술자리를 가지지 못한 건데 친구들이 모두 군대에 있거든요. 아, 최근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정말 귀여워요. 견종은 토이푸들인데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요.
Q. 1년 만에 돌아온 한국무대에서 나름의 성과를 달성한 것 같아요. LCK 복귀 소감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중국에서 뛰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더이상 언어의 장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해외리그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은 이게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예요. 저 역시 LPL(중국 프로리그) 이적 초창기에는 “언어는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달랐어요.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프로 레벨에서는 디테일 차이에 따라 승패가 갈리죠. 하지만 언어 때문에 소통에 차질이 생기면 제 디테일을 팀에 접목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해요. 그러다보면 주도적으로 게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수동적인 플레이가 강제되는 부분이 있어요. LCK 복귀 이후 언어적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디테일을 잘 캐치하는 제 장점도 살아났어요. 나름 스프링 기간에는 제 강점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웃음). 플레이에 만족감이 생기니 휴가기간도 즐거웠어요. 서머 이후, 혹은 롤드컵 이후에도 지금처럼 기분좋게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습니다.
Q. APK프린스, KT롤스터, 비리비리 게이밍(BLG)에 이어 DRX는 네 번째 팀입니다. DRX에 오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 강점은 디테일을 잘 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코칭스태프와 팀 동료가 제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데요. 그렇기에 ‘씨맥’ 김대호 감독님이 있는 DRX를 오게 됐어요. 김대호 감독님이 워낙 게임 내에 소소한 플레이를 잘 보기로 유명하시니까요. 어떻게 보면 마지막 수를 던진 거죠. 만약 이 분(김대호 감독)의 피드백을 받았는데도 발전하지 못하면 저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Q. 이적 직후 김대호 감독이 자격정지를 당하면서 어떻게 보면 초반 플랜이 꼬이게 된 셈이네요. 당시의 심경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굉장히 절망했어요. 결과론적으로 보면 ‘쏭’ 김상수 감독(대행)님은 정말 뛰어난 지도자인건 맞아요. 하지만 당시에는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어요. 더구나 추가 징계가 생겨 서머 때도 김대호 감독님과 함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암울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프로 생활을 접어야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Q. 당시 상황이 얼마나 암울했을지 짐작이 가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좌절에서 벗어났는지도 묻고 싶어요.
모든 코칭스태프 분들이 정말 많이 노력하셨어요. 그 중 특히 ‘무성’ 김무성 코치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은데요. 무성 코치님은 정말로 게임을 잘 보는 분입니다. 마치 ‘주니어 씨맥’ 같은 느낌이랄까요? 코칭스태프에 대한 신뢰가 생기니 좌절감이 조금씩 사라졌죠. 그리고 장외에서 경기를 보고 있을 김대호 감독님에게 실망을 주기 싫었어요.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Q. 그렇다면 코칭스태프는 선수단에 어떤 부분을 강조했는지 궁금해요.
시즌 시작 전까지만 해도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안 좋은 일도 갑작스럽게 터져서 합을 맞추고, 챔피언 티어정리를 할 겨를이 없었어요. 케스파(KeSPA)컵 때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죠. 이후 팀 차원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피드백 과정에서 코치님과 선수 간의 의견 충돌이 생기면 김상수 감독(대행)님이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죠. 당시 저희는 신인이 많은 팀이여서 한판한판에 부담감을 많이 가지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대행)님이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셨죠.
Q. 이제 스프링 시즌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치른 T1과의 일전이 기억에 강하게 남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아쉽지는 않아요. 물론 팀 적인 측면에서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한 점은 당연히 아쉽죠. 다만 이전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팀 성적만큼이나 선수 개인 성적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선수들은 팀 상황이 좋지 않아도 열심히 해서 자신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하잖아요. 결국 이는 몸값과도 연결되고요. 아무리 팀 내 상황이 어려워도 선수 본인은 항상 일정 이상의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스프링 시즌 제 플레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위기는 있었지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한화생명은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바이퍼’ 박도현, ‘리헨즈’ 손시우처럼 근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선수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잖아요. 만약 선수 다섯 명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면 그 팀은 더욱 발전할 수 있겠죠. 플레이를 이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승부욕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KDA 관리를 위해 해야 할 플레이를 하지 않고 사리기만 해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웃음).
Q. 1라운드 DRX의 파괴력은 막강했습니다. 하지만 2라운드는 의외일 정도로 경기력 난조가 이어졌는데요. 갑작스럽게 경기력 난조가 생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이 부분은 자세하게 얘기하기는 어렵네요. 7주차 프레딧 브리온에게 승리한 후 저희는 9승 4패를 기록하며 3위로 일정을 마무리했어요. 이후 5연패를 했는데, 잘 나가던 팀이 갑작스럽게 연패를 하니 의아하게 생각하신 팬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당시 DRX는 패배가 더 많았어도 이상하지 않은 팀이었습니다. 물론 후반 집중력을 가지고 역전에 성공한 경기도 많았지만, 깔끔한 승리는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 무렵 사실은 연습 도중 팀원 간에 갈등이 조금 있었어요. 선수 사이에서 플레이에 대한 이견이 생겼고, 이를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 거죠. 분위기도 조금 망가졌고, 대회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게임을 하다보면 당연히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해소가 된 상태에요.
Q. 지금은 잘 해결됐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팀이 부진하는 상황에서도 킹겐 선수의 플레이는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결과 이번 시즌 ‘LCK All-Pro Team’ 서드 탑 라이너로 선정됐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선수라면 1등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에 맞는 방향성을 잡고 게임을 해요. 물론 쟁쟁한 선수들을 꺾고 서드 팀에 선정된 것도 매우 기쁜 일이지만, 여름에는 꼭 퍼스트 탑 라이너로 선정되고 싶습니다.
Q. 그렇다면 킹겐 선수가 생각하기에 올 시즌 가장 뛰어났던 탑 라이너는 누구였나요? 혹시 본받고 싶은 선수는 있었나요?
감히 누굴 평가할 실력은 아니지만 젠지 이스포츠의 탑 라이너 ‘라스칼’ 김광희 선수와의 대결이 가장 힘들었어요. 김광희 선수는 탑 라이너의 정석 그 자체에요. 챔피언 구도를 잡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심지어 실수도 거의 안 해요. 만약 제가 실수를 하면 완전히 말려버리는 거죠. 1라운드에는 제가 졌지만, 2라운드에는 이겼다고 생각해요. 서머에는 완벽히 이겨보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아, 그리고 한 명 더 있어요. 팀 성적을 제외하면 제 마음 속 최고의 탑 라이너는 KT의 ‘도란’ 최현준 선수에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에요. 하지만 팀 상황상 최현준 선수가 라인전에 온전히 집중하기에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진정한 맞대결을 펼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죠.
Q. 지난 시즌 본인을 평가한다면 몇 점을 주고 싶나요?
10점 만점 기준으로 8.5점은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5분 기준 상대방과 CS(크립스코어) 차이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가 탑 라이너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지표는 라인전 능력 척도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아마 주전급 선수 중에서는 제 지표가 좋은 편이긴 합니다(30게임 이상 출장 탑 라이너 중 1위). 실제로 지금은 FPX에서 활약하고 있는 ‘너구리’ 장하권 선수도 이 부분에서 굉장히 두각을 드러냈죠. 물론 제가 주로 후픽을 하고, ‘표식’ 창현이가 탑 라인을 자주 봐줬기에 지표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하는 부분입니다.
Q. 만족했던 부분은 들었으니,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다음 시즌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될까요?
팀원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았던 부분은 개선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팀 경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스프링 내내 항상 ‘협곡의 전령’ 전투에서 사고가 발생했어요. 똑같은 실수를 계속한다는 것은, 발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스프링이 끝날 때까지 이러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습니다. 전령 싸움은 탑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초중반 단계에서 조금 더 세심하고 영리하게 게임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KT 롤스터의 킹겐, BLG 그리고 지금의 킹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KT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2018년에는 연습생, 2019년은 선수로 활동했는데요. 처음 KT에 입단할 때는 ‘밥도 주는데, 게임을 시켜준다고? 연봉도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생 시절에는 팀원들에게 인정받는 게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당시 KT는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였으니까요. ‘스멥’ 송경호, ‘스코어’ 고동빈, ‘폰’ 허원석, ‘데프트’ 김혁규, ‘마타’ 조세형 등 다들 기라성같은 선수잖아요. 형들이 저를 ‘잘하는 선수’로 기억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솔로랭크 순위를 올리는데 집중했고 1위도 해봤죠. 정리하자면 2018년은 대회 욕심보다는 내부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죠.
이듬해에는 1군 로스터에 들면서 주전경쟁을 하게 됐는데, 당시 감정 소모가 너무 심했어요. 조금만 부진해도 교체될 수 있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경호 형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경쟁자라는 생각에 많이 다가가지 못해서 아쉬워요. 지금 와서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경호 형이 못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대신 출전한 선수가 못 하면 제게 기회가 올 수 있잖아요. 정말 나쁜 생각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너무 역겨웠어요. 실력 여하를 떠나 경쟁자와 벽을 두고 살아야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2019년은 나름대로 즐거웠던 일도 있었지만, 선수 킹겐에게 정말 힘든 한해였습니다.
지난해 BLG 얘기도 해볼게요. 솔직히 말하면 연봉을 많이 준다고 해서 갔어요(웃음). 물론 금액적인 부분뿐 아니라 당시에는 LPL의 위상이 높아졌던 시기여서 중국행을 선택한 분분도 있죠. 중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몰랐습니다. 가장 큰 실수라면 함께 뛸 한국인 선수를 데려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의사소통도 어렵고,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줄 동료가 없다보니 경기력도 나빠졌어요. 플레이 스타일도 수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당시 BLG에는 나진 출신 심성수 감독님이 계셨지만, 제 고충을 말씀드리기는 어려웠어요. 감독님은 팀 전체를 커버해야하니까요. 부진이 이어지다보니 팬들의 시선도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다시 내 실력을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지금의 킹겐은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오르막을 등산하다 이제 평탄한 길로 접어든 느낌? 안정기면서도 제 프로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느낌입니다. 사실 게임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처음인 것 같아요. 환경이 좋아진 만큼 더욱 더 열심히 해보려고요. 걷기 편해졌다고 속도를 줄이면, 결국 또 다른 경쟁자에게 따라잡힐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해온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려 합니다.
Q.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이었고, 다가올 시즌 목표는 무엇일까요?
사실 스프링은 목표치 이상으로 잘 했다고 생각해요. 서머 때는 김대호 감독님이 복귀하니 더욱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감독님의 부재에도 이정도 성적을 거뒀으니까요. 최종 목표는 롤드컵(LoL 월드챔피언십) 진출이죠. 롤드컵에서 제 이름이 거론되면 뿌듯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올 시즌 DRX와 킹겐 선수를 응원해주신 팬 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일단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상황이 나아져서 LoL파크에 경기가 열렸으면 좋겠어요.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오프라인으로 경기를 나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저는 DRX가 때 묻지 않은 선수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 팀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선수들의 성장기를 보며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머 스플릿에는 경기력과 성적 모두 잡아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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