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인력) 간호사들이 의사로부터 불법의료행위를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PA들은 인력부족, 의료현장의 위계질서 때문에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고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간호계에서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31일 한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3월 22일부터 5월 7일까지 노조 소속 93개 지부(102개 의료기관)를 대상으로 진행된 의료현장 실태조사에서 의사들이 자신의 고유업무를 PA에게 떠넘기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PA가 의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각종 검사 및 약물, 입‧퇴원 등에 대한 환자처치를 처방하는 사례가 확인됐고, 전공의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진료과에서는 의사 대신 수술과 수술기록지를 작성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심지어 환자의 치료 방향은 물론 암환자의 항암제 용량을 계산하고, 동맥관 채혈 등의 침습적 시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사망을 전제로 하는 환자의 수술·시술·검사 등에 대한 동의서를 의사 이름으로 받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PA들은 불법의료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의사인력 부족, 위계질서 등의 이유로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었다. PA간호사 A씨는 “당장 환자가 여러 가지 불편함을 호소하는데 의사가 없거나, 연락이 안 될 경우 약물이나 동의서, 드레싱, 동맥관 채혈처럼 시간을 다투는 문제는 간호사가 어쩔 수 없이 처방을 입력하거나 직접 시술 처리하는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B씨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신규간호사들은 특히 더 의사의 업무지시를 거절하기 어렵다. 상급자에게 거부 의사를 표시할 경우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C씨는 “PA는 교수와 직속 상하관계에 있다. 교수의 지시를 경력이 적은 간호사가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D씨는 “근무평점을 주는 진료과장 지시로 불법의료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PA들은 불분명한 책임소재로 인해 법적 처벌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실태조사에서 “법률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법과 위법의 경계 위에 서 있다”, “불법의료행위를 하면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간호사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를 지시받는 경우 의료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소재에 대한 불안과 갈등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도 확인됐다. PA인력들은 실태조사에서 “의사 이름으로 처방을 내지만 의사들은 정작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처방한 것이 아니라며 PA에게 미룬다.”, “환자·보호자들이 민원이나 소송을 제기하면 PA는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은 업무를 지시한 진료부서나 간호부서에서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의사들은 본인들의 업무를 대신 이행할 것을 지시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고 하지만, 현행 법률상 행위당사자인 간호사가 처벌 대상이다. PA는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이 없다.”, “의사의 고유업무를 대행함으로써 법적 책임이 발생하지만 보호책이나 구제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PA는 우리나라 의료법상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병원에서 존재하는 직역이다. 대개 간호사 위주로 구성되며, 의사는 아니지만 처방·의무기록 작성·시술·수술 등 의료법상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의대 정원 감축, 전공의 특별법 시행 등으로 부족해진 의사 인력을 대신해 실질적인 의사업무를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신을 간호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한 청원자는 지난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간호법 제정으로 PA 간호사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청원자는 “미국의 PA는 국가적으로 인정되는 직업이다. 일정 과정을 거친 뒤 면허를 가지고 처방을 내고 시술 및 수술을 하는 등 한국의 레지던트와 비슷한 업무를 한다”면서 “하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미국처럼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통해 PA 자격을 부여하고 합법적으로 업무를 맡기자는 대안이 의사단체의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병원에서는 그런 불법적인 PA간호사를 채용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료법에 명시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간호사의 불분명한 업무 경계는 간호사에게 PA업무를 맡길 수 있는 구실이 된다. 미국 PA의 경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 할 수 있는 일만 하도록 법의 보호를 받는다”며 “하지만 간호법이 없는 한국의 간호사들은 의사의 보조 업무라는 표현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로 업무를 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이는 간호사 면허를 가진 PA간호사에게도 적용이 되며, 이들은 의사와 간호사 사이 그 어디쯤에서 일반 간호사보다도 더 모호한 업무 경계 속에서 법의 보호 없이 일을 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청원자는 PA간호사들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갖기도 한다며 ‘간호법’ 제정을 통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백히 해 간호사들이 법의 보호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PA간호사도 결국은 간호사 면허를 가진 간호사다. 필수인력인 PA간호사에 대해 불법이라는 말로 일관하며 법의 테두리 밖에서 PA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의료상황에 맞춰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간호법 제정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간호협회도 간호법 제정으로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전문간호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PA 문제는 간호법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법이 있었다면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정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한 법이 필요하다. 모든 의료직역을 단일 법안으로 다루기엔 세상이 발전하면서 전문화된 의료인들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며 “세계 각국에서도 여러 형태의 간호법이 제정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PA는 미국식 제도에서 이름만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협회는 전문간호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도 생명을 다루는 직역이기 때문에 별도의 양성과정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