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 손톱 밑 큐티클과 주변부 살갗을 뜯는 버릇을 갖고 있는 A씨. 혼자 있을 때는 물론 모임자리에서도 계속 손톱을 만지작거리다보니 앉은 자리가 지저분해지고 피부도 성할 날이 없다. ‘하지 말아야지’하고 마음을 먹어도 괜히 찜찜하고 뜯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손톱을 물어뜯게 된다.
# 얼마 전 출산한 B씨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손을 씻는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도 손을 자주 씻긴 했지만 손이 오염돼 아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괜한 불안감에 가스 밸브를 제대로 잠갔는지, 문은 잘 잠겼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집밖을 나섰다가 문이 잘 잠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 학생인 C씨는 특정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맴도는 증상 때문에 공부할 때마다 어려움을 느낀다. 집중력 부족 탓을 해보지만 어떤 노래가 불현듯 생각날 때면 그 노래의 구절이 반복적으로 맴돈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특정 생각이나 충동,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그로 인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을 집착‧반복한다면 ‘강박증(강박장애)’을 의심해볼 수 있다. 증상이 심할수록 불안 해소에 시간과 주의를 뺏겨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강박장애는 젊은 환자가 많고,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의심되는 경우 정확한 진단 및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 국내 강박장애 환자 절반은 20~30대
국내 강박장애(F42)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진료데이터에 따르면, 강박장애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15년 2만4446명에서 2016년 2만5835명, 2017년 2만7054명, 2018년 2만8505명, 2019년 3만152명으로 연평균 5.4%씩 증가했다. 남성은 2015년 1만4302명에서 2019년 1만7367명으로 21.4%(3065명) 증가했고, 여성은 2015년 1만144명에서 2019년 1만2785명으로 26.0%(2,641명) 늘었다.
환자 절반은 20~30대의 젊은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전체 진료인원 중 20대가 28.3%(8520명)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대가 20.6%(6220명), 40대 16.1%(4865명), 10대 11.6%(3494명) 순이었다.
남성의 경우 20대 29.8%, 30대 20.7%, 40대 15.3%의 순으로 많았고 여성은 20대 26.2% 30대 20.6%, 40대가 17.2% 순이었다.
강박장애 발생에는 생물학적인 원인과 심리적인 원인이 모두 관계된다.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 시스템의 이상과 뇌의 전두-선조 신경회로의 기능적 이상이 중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강박 증상이 악화되는 양상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됐으며, 이를 통해 강박증상에 심리적인 원인도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30대에서 환자가 많은 이유로는 늦은 진단, 미래에 대한 불안감, 스트레스 등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노대영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보통 강박장애는 10대부터 발병하는데 당시에는 좋지 않은 습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20, 30대 때 증상이 심해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니 진료를 받기 시작한다”면서 “또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압박감, 과도한 스트레스 등도 강박장애 발병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출산 후 위생에 대해 너무 신경 쓰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석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또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발병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심해지자 20~30대에 병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게다가 20대는 막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수행하게 되는 시기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학업 및 직장 생활에서의 어려움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형광펜칠’된 생각‧행동에 집착, ‘조현병’ 오해도
나타나는 증상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두 개 이상의 물건이 있을 때 대칭이나 직각이 되도록 두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시달리거나, 물건들을 무조건 모으기만 하고 버리지 못하는 경우, 뽀족한 물건을 보면 그 물건으로 다른 사람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돼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을 회피하는 경우 강박장애 증상으로 볼 수 있다.
노 교수는 “찜찜하고 불안함을 느껴서 2~3번 확인하고, 손을 씻고 하는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강박장애 환자들은 그 수준이 과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형광펜칠 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라면서 “세 번 이상 문단속을 하거나 1시간 이상 어떤 증상에 몰두하거나, 막연한 불안감에 손을 자주 씻거나 유연성이 떨어지더라도 자기만의 규칙을 갖고 행동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면 강박장애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반복해서 어떤 충동이나 이미지, 노래 등이 떠오르는 것도 강박장애 증상일 수 있다. 원하지 도 않는 금기시되는 사고, 이를 테면 십자가를 보고 침을 뱉어야 한다는 생각에 형광펜칠 하는 순간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라며 “충동, 습관으로 치부되고 있는 손톱, 피부 뜯기, 머리카락 뽑기 등도 넓은 의미의 강박장애 증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강박장애 환자의 약 30%는 난치성이지만 모든 질환이 그렇듯 조기에 치료할수록 치료효과는 커진다. 하지만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고 증상을 숨기는 경우도 있어 만성화될 때까지 방치되는 환자들이 많다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초기에는 증상이 과한 것 같다고 알려주기만 해도 금방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증상을 숨기거나 인지하지 못해 치료가 늦어지면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이 필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박장애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많이 주는 질환 중 하나다. 금기시된 생각, 기괴한 생각들을 망상이라고 여기고 조현병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만성화되면 생산연령인 20~40대에 모든 성취가 방해받을 수 있어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 약물 및 인지행동치료를 함께 시행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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