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국세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 사각지대를 잡아냈다. 국내 증권사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총수익스와프(TRS)를 통한 이자·배당 소득에 대해 세금을 걷지 않는 관행을 포착하고 과세 처분에 나섰다. 청구서를 받은 증권사들이 국세청 방침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서면서 과세 사각지대 해소까지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국세청 vs 증권사 소송전 왜? …“외국인 금융투자소득 과세 사각지대”
국세청과 국내 대형 증권사들 간에 소송전이 벌어졌다.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5개사는 국세청의 과세처분에 대한 조세심판원 심판청구 절차에 들어갔다.
소송전의 핵심은 외국인이 가져가는 총수익스와프(TRS) 소득에 대한 과세 공백이다. 국세청은 국내 증권사들과 TRS 계약을 맺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급 받는 파생거래 수익에 이자와 배당 상당액이 포함되는 점을 지적했다. 국내 조세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국내증시에서 벌어들이는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은 증권사들이 원천징수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TRS 계약을 거쳐 통째로 파생상품거래 소득으로 처리되면서 과세망을 우회한다는 것이다.
탈세 수단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 TRS를 쉽게 정의하면 투자자가 금융사의 ‘명의’를 빌려 투자하는 거래 방식이다. 계약을 맺은 증권사 등 금융사가 투자자를 대신해 주식 등의 자산을 매입한다. 해당 자산 가격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은 계약을 맺은 투자자가 모두 가져간다. 증권사는 이같은 거래의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주로 위험 회피나 레버리지 창출, 이익형태 변환 등의 목적으로 쓰인다.
투자자는 TRS 계약을 통해 자산을 직접적으로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보유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형식상 투자 명의가 증권사이므로 투자자는 주식 소유에 대한 공시의무가 없다. 예를 들어 TRS 계약을 통해 실질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5% 이상 보유해 대주주에 해당하더라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CFD와 마찬가지…세금 회피 목적 투자자들, TRS로 몰려갈라”
이번 사안은 세금회피 논란에 휩싸였던 차액결제거래(CFD)에 대한 과세 공백 사태와 유사하다. CFD 역시 TRS 거래의 일종이다. 개인이 실제 주식을 매수하지 않고 주가 상승이나 하락에 따른 차익만 정산받는 거래 방식이다. 최대 10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TRS 방식이기에 금융사가 투자자를 대신해 주식을 매입한다. 매입한 주식의 소유권은 증권사에게 있다. 덕분에 투자자는 주식 보유 효과를 누리면서도 양도세를 물지 않아도 됐다. 이런 측면 때문에 세금회피 목적의 매수와 불건전 거래가 몰린다는 문제가 지적되어왔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세법을 고치면서 탈세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부가 마련한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을 통해 지난 4월1일부터 CFD도 양도세 과세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과세 공백을 메꿔냈다는 평가다.
문제는 CFD는 과세 대상이 됐지만, 이보다 넒은 개념인 TRS 거래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CFD에서 이뤄지던 방식의 세금회피가 TRS에서 유사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FD 과세가 무색하게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아있는 셈이다.
외국인 과세 공백 방관해온 증권사들…“과세할 이유가 없다”
증권사들은 TRS 거래에 대해 과세하지 않았던 이유로 ‘세법 규정 공백’을 꼽는다. TRS의 법적 형태 자체가 파생상품이기에 국내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원천징수할 소득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TRS 계약을 통해 지급되는 소득을 굳이 분류해서 성격별로 과세할 명확한 규정이 없기에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증권사들의 공동대응을 주관하고 있는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증권업계의 생각은 국세청의 입장과 다르다. 세법에는 실질과세의 원칙을 규정함과 동시에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과세가 이뤄지려면) 파생상품 내에서도 이자나 배당소득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과세해라’ 이렇게 명확하게 규정이 되어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측 소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측에서는 국세청 상대로 승소를 확신한다.
법무법인 가온 강남규 변호사는 “증권사들의 승소여지가 상당한 사안”이라며 “사실상 외국인에게 지급된 금액이 배당금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보는 관점은 파생상품 본연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이다. 실질은 배당소득이 아닌 거로 봐야 한다. 외국인들은 주주로서 그 금액을 받는 것이 아니라 TRS 계약에 의한 채권적 권리금을 받은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단,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은 일부 증권사들이 국세청의 과세 지침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과세처분을 따를 증권사들은 외국인 TRS 계약자를 상대로 세금 징수분을 청구하거나, 혹은 회사 부담으로 처리해야 한다.
국세청의 외로운 싸움 “포장지 벗겨내고 내용물에 주목해야”
국세청이 과세처분에 나선 근거에는 국세 부과의 대원칙인 ‘실질과세의 원칙’이 있다. 소득이 있으면 ‘실제 성격’에 따라 과세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외국인들이 TRS 거래를 통해 이자와 배당소득을 지급받아가는 대목에 주목했다. 실질과세의 원칙을 적용하면 TRS 거래에서 이뤄지는 세부 내용을 파고들 필요가 있다. 소득이 지급되는 형식이 파생상품거래로 ‘포장’되었더라도, 실제 내용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조세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국내증시에서 받아 가는 이자와 배당소득은 국내 금융사가 원천징수해야 한다. 형식상으로는 정상거래로 보이나, 실질은 TRS 형태를 타고 해외로 국내세수가 세어나간다고 본 셈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국세청 처분에 대해 불복을 진행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소득의 실질적인 성격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조세법원 심판청구 결과를 기다려볼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TRS가 조세회피 창구로 남용될 여지를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인과 증권사 간에 오가는 TRS 소득 지급분의 내용이 배당과 이자소득이 주가 되는 경우는 악용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의이전을 통해 세금을 회피하려는 목적을 가진 투자자들이 TRS로 몰려들 수 있다는 평가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국세청의 증권사에 대한 과세처분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늬만 파생상품’인 것을 잡아내려는 거다. 행정력을 동원해 과세 사각지대를 메꾸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해석된다”며 “CFD도 조세회피 논란에 휩싸였다가 당국이 세제 규정을 개편하면서 세금 대상이 됐다. 행정심판 결과에 따라 기재부에서 관련 논의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 세법에 명문화된 열거규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이건 순전히 국내 세금제도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방증”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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