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여행] 석탄역사 발자취 따라 떠나는 정선 '고한·사북' 가을 나들이

박하림 / 기사승인 : 2021-10-18 15: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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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을 나르던 길에서 힐링을 찾다…운탄고도 트레킹
‘누워있는 마을 호텔’ 고한 18번가 
청년들의 빛으로 깨어난 도시…사북시장 별愛별 청년몰
삼탄아트마인, 석탄 대신 예술을 캐다

[정선=쿠키뉴스] 박하림 기자 =탄광이 문을 닫자,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기 시작했다. 북적이던 상가는 폐허가 됐고, 학교에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삶의 희망을 잃었다’는 회의적인 의식이 만연했다.

과거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급속도로 도시 슬럼화를 겪었던 강원 폐광지역.

2000년도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섰으나, 주민들의 큰 기대만큼 낙수효과가 실현되지 않아 또다시 절망했다.

주민들은 깨달았다.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골목길 폐허들이 마을 호텔로 탈바꿈했고, 전통시장 구석 자투리 땅에 청년몰이 들어서 도심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과거 석탄을 나르던 산길은 트레킹 코스로 조성돼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고, 석탄 광업소는 현재 예술을 캐는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죽어있던 지역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주민들의 노력이 아름다운 변화를 이뤄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전성기가 있고, 내리막길을 걷겠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변화를 이룰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추수의 계절 가을, 변화의 씨앗이 심긴 정선 고한·사북읍 곳곳에서 자라나는 회복의 에너지를 느껴보자. 

운탄고도 트레킹.

◆석탄을 나르던 길에서 힐링을 찾다…운탄고도 트레킹

이른 아침, 대한민국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는 함백산으로 향했다.

함백산의 지맥이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자, 정선에서 영월 혹은 태백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바로 만항재(해발고도 1330m)다. 우리나라 땅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중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다.

2021 운탄고도 트레킹도 이곳에서 시작된다. 운탄고도는 탄광 산업이 활발하던 시절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었다.

트레킹은 지나칠 수 없었다. 베이직 코스(만항재~도롱이 연못, 14.2km)를 과감히 선택했다. 

운탄고도를 걷다 보면 구름, 숲, 바위, 연못 등 다양한 절경들이 펼쳐진다. 코스 중간에는 오색영롱한 바위절벽을, 코스의 끝 길에서는 1177탄광갱을 만나볼 수 있다. 햇빛도 시시각각 다르게 길을 비추며 펼쳐진다. 

코스 깊숙이 들어서면 오감이 호강한다. 산림욕의 근원인 피톤치드가 쏟아지며 허파 속 먼지를 말끔히 씻겨준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일상 속 잡념을 떨쳐내고, 울긋불긋 불타는 단풍잎이 또 다른 열정의 영감을 전해준다. 코스 중간 바위에 걸터 앉아 먹는 김밥도 꿀맛이다.

갈탄 형태를 이룬 석탄.

코스를 걷던 중 암벽 단면에 그어진 검은 줄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갱도 안에만 있을 줄 알았던 석탄 광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크고 작은 갈탄 형태를 이룬 석탄 광맥이다. ‘크루아상’의 단면처럼 보이는 갈탄의 얇은 층들은 보기보다 손쉽게 떼어졌다. 

이곳저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도롱이 연못에 도착할 때쯤,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고 저녁노을은 탐방객의 하산을 서둘러 재촉했다.

운탄고도에 내려 앉은 저녁 노을.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골목길 초입새.

◆골목이 엘리베이터…‘누워있는 마을 호텔’ 고한 18번가 

하루의 여독을 달래고자 고한 마을호텔 18번가에서 묵기로 했다.

이곳 호텔은 독특하다. 골목길이 호텔의 엘리베이터다. 골목에 있는 객실과 카페, 회의실,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층간을 이동하는 개념이다. 일명 ‘누워있는 호텔’이다. 도심 속 높은 빌딩이 남부럽지 않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환한 조명과 상점 곳곳의 알록달록 꽃들이 한밤중에도 도심을 환히 밝혀준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며 하루의 피곤함이 싹 가신다. 호텔 사장님의 친절한 안내에 또 한 번 감동이다.

마을호텔 18번가는 주민들이 마을협동조합을 구성해 옛 탄광마을 골목길의 상점과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직접 운영하는 구조다. 주변의 상점이 호텔의 부대시설이 된다는 기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여행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주민자치와 도시재생의 선도적인 모델로 알려지며 견학단의 방문도 쇄도하고 있다.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마을호텔 18번가는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보장된 사업이 아니었다. 마을호텔 18번가의 소재지인 고한읍은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 이후 폐광으로 인해 황폐화가 가속화 된 곳이었다. 당시 고한 18리로 불렸던 이곳의 골목 양쪽의 상가 30여 채가 대부분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한 때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으로 탄생한 강원랜드의 후광효과를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강원랜드에서 발생한 천문학적인 예산을 수십 년간 폐광지역에 쏟아부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체감할 수 없었다. 그 막대한 예산은 대부분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됐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깨달았다. 마을을 바꾸는 것은 공기업, 정부, 지자체의 대규모 예산 투자 사업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라는 것을. 

김진용 마을 호텔 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주민들의 생각의 전환이 이 사업을 이룰 수 있는 행동 에너지원(동력)이었다”면서 “성과에만 쫓기지 않았다. 성과에만 쫓긴다면 정말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캄캄한 골목길에 하나, 둘씩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7년 빈 상가를 사서 직접 수리해 출판사를 개업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장 16명과 화가, 디자이너 등 지역 전문가 8명이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에 선뜻 동참했다. 2018년 1월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가 출범했다. '18번가'는 어감이 안 좋은 '18리'를 대신해 만든 단어다.

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는 골목 청소, 전깃줄 정비, 교통정리, 꽃 심기 등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했다. 이후 빈집 10가구를 리모델링하고 2020년 5월에는 국토교통부 소규모 재생 공모사업으로 마을 호텔을 개장했다. 마을호텔 18번가는 방 3개의 초미니 숙박시설이지만, 풍성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식당, 세탁소, 사진관, 출판사 등 주민들이 빈집을 개조해 운영하는 가게 10여 개가 모두 부대시설이다.

골목이 살아나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어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폐광촌 골목의 기적, 도시재생 1번지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주민들은 2019년 여름 골목에 정원박람회라는 또 하나의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강원 정선군 사북시장 별愛별 청년몰&별빛공원.

◆청년들의 빛으로 깨어난 도시…사북시장 별愛별 청년몰

사북의 밤이 환하다. 청년들의 열정이 한밤중에도 식지 않아서일까.

올 7월 정식 개장한 사북읍 사북시장 별愛별 청년몰은 현재 음식업 7곳과 도소매 3곳이 개점했다. 음식업 2곳과 베이커리 1곳 또한 추가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건물 2층 테라스엔 지장천 별빛공원까지 조성됨으로써 먹거리·볼거리를 갖춘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청년몰은 겉보기엔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크고 넓어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한 층에 점포 두 곳도 입점하기 빠듯했다. 알고 보니 시장 귀퉁이 △ 모형의 자투리 땅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강원 정선군 사북시장 별愛별 청년몰.

건물은 비좁았지만 청년 상인들은 대인배였다. 서로 겹치는 메뉴들이 하나도 없었다.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살린 ‘상생의 조화’에서 큰 매력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메뉴로는 연탄빵, 수제 건강 디저트, 정선 캐릭터 기념품 등이 꼽힌다.  

가을밤 별빛공원에 앉아 연탄빵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이면 감탄이 절로 쏟아진다. 여유로움 속에 조화로운 풍미를 더욱 고급스럽게 느낄 수 있다. 별처럼 빛나는 청년들의 열정과 별이 쏟아지는 사북의 밤하늘 아래, 별의별 다양한 재미와 먹거리가 함께하는 곳이다. 
 
현재 전국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북별꼴야시장은 잠정 폐장했지만, 코로나 종식 이후 석탄문화제와 다채로운 야간공연 등이 어우러져 탄광지역 르네상스 ‘빛으로 깨어나는 도시’가 되길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강원 정선군 사북시장 별愛별 청년몰 시그니쳐 메뉴 '연탄빵'.


강원 정선군 고한읍에 소재한 삼탄아트마인.

◆석탄 대신 예술을 캐다…삼탄아트마인

과거 석탄을 캐던 곳이 예술을 캐는 광산으로 재탄생한 곳이 있다고 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고한읍에 있는 ‘삼탄아트마인’이다.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를 의미하는 삼탄(Samtan)과,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Art), 그리고 광산을 의미하는 마인(Mine)을 하나의 단어로 함축된 뜻을 담고 있다. 

정선은 1960년대부터 수많은 석탄 광산이 있는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현장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1962년 함백한 자락에 설립된 삼척탄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민영 탄광으로 유명했다. 삼척탄좌가 문을 닫은 바로 그 자리에 201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1호'인 '정선삼탄아트마인'이 세워졌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던 석탄은 시대 변화에 의해 그 가치를 잃었다. 삼탄아트마인에선 광부들의 일터였던 이 공간을 문화와 예술, 산업유산이 만나 새로운 공간으로 조성했다. 한때 뜨거운 막장에서 가족과 미래를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광부들은 이제 이곳에서 과거 향수를 전하고 과거의 공백을 채운 문화·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에 소재한 삼탄아트마인.

'삼탄아트마인'에는 과거 광부들이 석탄을 캐던 탄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굴러갈 것 같은 석탄차, 땅속을 수직으로 파고 내려간 수직갱의 철 구조물, 석탄차를 끌어당기던 강철 로프, 끊임없이 석탄을 실어 나르던 컨베이어 벨트, 석탄을 캐던 현장인 갱도 등을 직접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에는 현대미술관 CAM(Contemporary Art Museum), 탄광시절 화장실로 사용되던 곳에 만들어진 ‘마인갤러리3’, 삼척탄좌 40년의 역사를 보여 주는 '삼탄뮤지엄·자료실', 광부들이 화장실 또는 샤워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설치미술 갤러리로 꾸민 '마인갤러리' 등이 있어 찾는 이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내년 디지털 미디어아트까지 구현할 계획을 알리며 방문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인 광부들의 애달픈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 이들의 사연은 오늘날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오랜 시간 흘러 삶의 방식과 모습은 바뀌었어도, 이들의 개척정신과 도전 의식은 문화, 관광, 예술로 승화돼 먼 후대까지 이어져 더 밝은 빛을 보게 되지 않을까. 정선 고한·사북지역은 인간 승리의 경이로운 무대를 장식한 곳임이 틀림없다.

hrp11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