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식도 ‘맞춤 제공’이 필요한 시대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환자 및 질환에 따라 맛과 영양을 더한 환자식 개발이 한창이지만 낮은 수가 탓에 연구가 중단되거나 시도를 못하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다.
식용곤충으로 암환자 식단 개발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식용곤충을 활용한 암환자 식단을 개발하고 있다.
박준성 간담췌외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 3년간 항암치료를 받는 간암 및 췌담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갈색거저리’를 활용한 맞춤형 제품을 개발했고, 8주 동안 섭취함에 따른 환자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자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우정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양팀 팀장은 “갈색거저리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단백질의 경우 필수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있고, 지방산은 총 지방산 중 76~80%의 많은 불포화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철분이나 칼슘 등 무기질 성분이 다른 식품군에 비해 높다”면서 “갈색거저리는 양질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등의 공급원으로써 영양적 우수성과 갈색거저리가 갖고 있는 새우와 비슷한 고소한 맛을 잘 살려 환자식 재료로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연구를 주도한 박 교수는 “갈색거저리를 활용한 50여 종의 환자식 메뉴를 개발한 후 위장관 수술 후 암환자들에게 적용한 임상 연구를 진행한 결과, 영양 상태가 향상돼 임상적 효과를 검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팀은 갈색거저리를 이용한 가정간편식(HMR)을 개발, 효능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박 교수는 “대부분의 암환자가 통원 치료를 받기 때문에 재택 관리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 부족으로 식단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환자의 상태에 따른 기호도와 선호도를 고려해 메뉴를 개선하고, 환자의 저조해진 식사 섭취량을 감안해 적은 양의 섭취라도 고영양의 섭취가 가능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 위한 환자식 마련
부산대병원은 지난 5월 채식주의자를 위한 맞춤형 환자식을 개발해 환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환자, 일부 채식주의자 환자들의 잇단 문의에 따른 것으로, 영양사의 개별 면담을 통해 개인 허용기준을 반영하고 조립법까지 고려한 ‘맞춤 채식’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병원측은 낮은 수가 탓에 맞춤형 식단 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가 원한다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개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정숙 영양팀장은 “소수의 환자지만 채식 선택권을 제공함으로써 식사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라면서 “두부크럼블, 콩고기 등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영양소 균형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앞으로도 환자식 향상을 위한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주 병원장은 “음식은 인간 활동의 가장 기본이며, 환자들의 상태와 회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라며 “진료뿐만 아니라 환자식의 수준도 높여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들이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병원밥도 입맛대로…세부 메뉴 선택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일반밥을 처방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 메뉴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 메뉴 서비스는 입원환자의 영양 권장량에 맞춰 구성된 다양한 메뉴를 환자가 기호에 맞게 직접 선택하는 새로운 형태의 환자식 서비스다.
환자식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빠르고 위생적으로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영양 밸런스를 위해 정해진 식단의 식사가 제공된다. 병원 영양팀은 이러한 환자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메뉴 선택이 가능한 급식 시스템을 연구했다.
해당 서비스는 크게 백반식과 일품식으로 나누어 선택할 수 있고, 식사 선택 후 세부 반찬들을 다시 선택해 기호에 맞는 식단을 구성할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세부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환자식을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지선 영양팀 팀장은 “입원 환자식은 한번 식사 때마다 4가지 반찬을 주는데 환자마다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전에도 김치가 맵다거나, 특정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고 하면 소소하게 응대해왔다”라며 “환자 선택의 폭을 더 넓히고 빠르게 제공할 수 있도록 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환자들의 데이터가 쌓이다보니 선호하는 음식들이 정해져 있어서 비용 손실 없는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가능했다”라며 “병원 안에서의 식사는 치료와 연관되지만 환자에게는 일종의 서비스다. 제한된 식사로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극대화한 것이다. 물론 입원환자가 1000명이 넘기 때문에 개개인의 입맛을 다 맞춰주긴 어렵지만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끼당 수가 5000~6000원, 지속적 개발 어려워
다만, 이 팀장은 턱없이 낮은 수가로 인해 맞춤 환자식 개발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미 대형병원들은 현재 수가 수준 이상을 투자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 수가에 맞춰서는 제공하기 어렵다는 게 영양사의 현실적 어려움”이라며 “상급종합병원 치료식은 6000원대, 일반식사는 5000원대다. 요즘 식당에서도 5000원에 밥을 못 먹는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병원에서는 직접 배식도 하고 위생관리 차원에서 남은 반찬이나 재료들도 그날 모두 폐기한다. 대형병원들은 적자로 식사를 제공한다”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하루 종일 생활하는 곳이고 식사에 제한이 많기 때문에 응대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식재료 물가 등이 많이 올랐다. 이를 반영한 수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병원에서는 낮은 수가 문제로 인해 환자식 개발을 중단키도 했다.
한림대 성심병원 관계자는 “치료식의 경우 당뇨, 콩팥병 환자를 대상으로만 제공하고 있고, 피부 재생이 필요한 화상환자에게 고단백 섭취를 늘리고 있다”라면서 “국가에서 정한 수가 기준에 맞춰서 제공하다 보니 질환별로 맞춰서 개발하기가 어렵고 하고 싶어도 제약이 많은 실정”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식 중에서도 저칼로리 식단이 필요한 환자 대상 다이어트식이 있었는데 여러 제한 때문에 지금은 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