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안 찍던 김지운 감독을 변화시킨 것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11-12 06: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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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안 찍던 김지운 감독을 변화시킨 것 [쿠키인터뷰]
김지운 감독.   애플 TV+ 제공

지난 4일 OTT 서비스 애플 TV+가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닥터 브레인’은 애플 TV+가 선보이는 첫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다. 동시에 ‘킹덤’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 제작진과 수많은 오리지널 작품을 공개하며 먼저 자리를 잡은 넷플릭스와 경쟁할 첫 번째 무기이기도 하다. 영화 ‘조용한 가족’부터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 23년 간 영화에 매달려온 김지운 감독과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배우 이선균과 함께 했다.

김지운 감독은 지난 3일 제작발표회에서 “2시간짜리 이야기를 하다가 6시간의 이야기로 끌고가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에겐 드라마도, OTT와 협업도 처음이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 감독은 “젊을 땐 영화의 반대가 드라마라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품어온 생각을 털어놨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며 그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제 OTT와 드라마는 그에게 ‘또 하나의 문’이 됐다.

“영화가 갖고 있는 여러 고유성 중 하나가 시네마틱 사이즈의 압도감이에요. 단순히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현해서가 아니에요. 큰 화면에서 공간과 인물을 크게 보여주면서 감정과 이야기를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OTT가 나오기 전 드라마는 표현 수위와 소재 면에서 제한이 많았어요. 영화에서만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감수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가 영화의 반대라고 생각했고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을 빨리 당겨온 거죠. 위축된 영화 산업은 점점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으로 가고, 오히려 OTT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영화가 갖고 있던 독자성과 범위를 가져갔어요. 큰 사이즈만 포기하면 OTT에서 더 모험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세상이 바뀌면서 창작자 입장에선 또 하나의 문이 생긴 거예요. ‘내가 과연 드라마를 찍을까’라는 생각은 없어졌어요.”

드라마 안 찍던 김지운 감독을 변화시킨 것 [쿠키인터뷰]
김지운 감독.   애플 TV+ 제공

드라마는 서사를 만드는 과정과 도구가 영화와 달랐다. 어렵고 생소했다. 동시에 신선하고 재밌었다. 같은 시간에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이 김지운 감독을 짓눌렀다. 짧은 시간에 많이 찍으려면 영화에서 중시하던 스타일보다 서사의 전달에 중점을 둬야 했다.

“분량과 시간의 압박이 가장 컸어요. 영화는 주어진 시간 동안 2시간짜리 이미지와 서사를 만들었다면, ‘닥터 브레인’은 똑같은 시간에 3배를 했어야 하니까요. 저한테는 큰 부담감이었어요. 또 시리즈물이니까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엔딩 감각에 주력했어요. 그런 점이 재밌기도 했죠. 영화를 할 때는 창작자 고유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치중했다면, 드라마는 이야기의 전달력을 더 높이는 것이 중요했어요. 덕분에 제 작품의 분위기가 좀 바뀌지 않았을까 싶어요. 뭔가 더 해보고 싶은 걸 절제하는 면에서 아쉬운 지점도 있지만요.”

‘닥터 브레인’ 촬영 현장은 영화와 드라마의 중간의 속도로 흘러갔다.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경험해본 배우들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말도 했다. 김지운 감독에겐 생소하고 신선했다. 조명과 촬영 의상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더 섬세하게 작업하는 걸 기다려줬던 영화 현장과는 달랐다. 미장센을 언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빠른 현장이 낯선 건 당연했다.

드라마 안 찍던 김지운 감독을 변화시킨 것 [쿠키인터뷰]
김지운 감독.   애플 TV+ 제공

“드라마를 찍는 시간엔 계속 긴장이 돼 있었어요. 한 번도 루즈해지는 순간이 없었죠. 매 시간 계속 몰두하는 건 드라마가 훨씬 더 강도가 높더라고요. 전 영상에선 미장센이 언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작업해온 사람이에요. ‘닥터 브레인’에선 인물이 이동하는 삶의 공간들로 그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차가운 병원과 드라이한 집이 그래요. 과거 가족이 함께 살 때는 따뜻한 톤이고, 기억 속에 있을 때는 불균질하고 악몽 같은 느낌이길 바랐어요. 단순히 색감을 아름답게 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언어화한다고 생각했어요. 인물이 말하지 않아도 공간의 분위기와 톤, 색감으로 얘기해주는 방식이 항상 제가 해온 방식입니다.”

‘닥터 브레인’에서 김지운 감독이 맡은 역할은 여러 가지다. 각본을 썼고 연출을 하고 총괄 프로듀서까지 겸했다. 결국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세 명의 작가와 각본을 공동 집필했고, 임필성 감독이 함께 촬영을 도왔다. 나이가 들고 상황이 달라졋지만, 다시 순수하게 혼자 작업할 마음도 여전히 있다.

“공동 작업을 하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온전히 혼자 쓰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아이디어가 고갈된 느낌도 들어요. 어쩔 수 없죠. 회사를 차리면서 환경이 바뀌기도 했고요. 초기에 순수하게 영화를 동경하고 비전을 가졌던 영화광 상태로 가는 것이 지금은 어려워요. 변명일 수도 있어요. 옛날처럼 제 오리지널 작품을 하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언젠가 다시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나만이 생가갈 수 있는 기이하고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개발하고 있어요. 그걸 혼자 작업해볼 생각도 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