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먼 ‘산재’와 ‘나’의 거리 좁혀볼까 [이생안망]

기사승인 2021-11-21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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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입버릇처럼 ‘이생망’을 외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2030세대. 그러나 사람의 일생을 하루로 환산하면 30세는 고작 오전 8시30분. 점심도 먹기 전에 하루를 망하게 둘 수 없다. 이번 생이 망할 것 같은 순간 꺼내 볼 치트키를 쿠키뉴스 2030 기자들이 모아봤다.

가깝지만 먼 ‘산재’와 ‘나’의 거리 좁혀볼까 [이생안망]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내 친구 ‘산재’야, 안녕? 회사에 들어온 직후니까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구나. 언젠가 필요할지 모를 너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매달 회사에서 돈을 주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아무리 돈으로 맺어진 친구 관계라지만, 그동안 너에 대해 무심했던 것 반성해. 난 아직도 너를 잘 모르겠거든.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겠지. 내 곁에 있는 거겠지. 내 목소리가 들리니, 산재야. 조금 늦었지만 실망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너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 볼게. 내 질문에 답해주겠니.

◇ ‘산재’야, 네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알려줄래?
“응, 난 네가 일하다 다쳤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야. 내 진짜 이름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이지만, 줄여서 ‘산재’라고 부르니까 편하게 불러줘. 난 5대 사회보험 중 하나로 소속돼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니까 네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고 보면 돼. 만약 네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업무상 사고), 일 때문에 병에 걸리면(업무상 질병)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네 월급명세서에 내 이름이 없어도 놀라지 마. 내 이름이 적힌 보험료는 원칙대로 회사가 대신 내고 있을 거야.”

◇ 혹시 널 만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회사에서 하던 일 때문에 사고를 당한 거면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다른 말로 하면 ‘업무 수행성’(업무 수행 중 발생했는가)과 ‘업무 기인성’(재해자 업무에 기인해 발생했는가)과 ‘근로자성’(재해자가 근로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 해. 만약 네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했다고 해보자. 현장에서 일하던 중이니까 업무 수행성, 일이 아니면 추락할 일도 없을 테니 업무 기인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 적법한 근로계약을 맺고 일했으면 근로자성까지 갖춰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야.”

◇ 꼭 사고를 당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주요우울장애, 불안장애,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반응 등도 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이라고 근로복지공단은 안내하고 있어. 예를 들어 진상 민원인에 시달리던 콜센터 직원이 우울증을 앓게 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어. 고객을 상대하면서 심신이 소진했으니 업무 수행성, 일을 하지 않았으면 고객과 대화할 일도 없을 테니 업무 기인성도 충족해. 근로계약을 맺었으면 근로자성도 입증되니까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어. 또 회식이나 출·퇴근길에 발생한 사고도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출퇴근과 회식도 일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행위로 판단하기 때문이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같은 감염병도 감염경로가 분명하고 일하는 과정에 옮았으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해.”

◇ 너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지 미리 알 수 있을까?
“급여로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우린 요양급여와 휴업급여, 간병급여, 장해급여로 구분해. 요양급여는 산업재해를 겪었을 때 치료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뜻해. 비급여 진료비를 제하고 대부분 받을 수 있지. 휴업급여는 일하지 못하는 요양 기간 동안 받는 급여를 의미해. 평균 임금의 70% 정도 되니까, 네 월급이 300만원이면 21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지. 만일 휴업 급여액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최저임금액 기준으로 지급된다는 것 알아둬. 장해급여와 간병급여는 사고 이후 후유장해가 있으면 받을 수 있어.”

◇ 우리 회사에서도 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응, 그럼. 이래 봬도 범위가 꽤 넓거든. 5인 미만을 포함해서 대부분 사업장에서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회사가 날 만나는 걸 막아도 소용없어. 회사에 동의를 받지 않고 네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내 도움을 신청할 수 있거든. 회사는 네가 신청한 재해 경위 등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뿐이지 신청하는 주체가 아니야. 혹시 회사가 산재 보험료를 안 냈어도 너무 걱정하지 마. 근로복지공단이 우선 너를 도와준 뒤에 너희 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해 보험료를 받아갈 거야.”

◇ 산재야, 솔직히 말해줘. 정말 네 도움을 받는 게 맞을까?
“사실 한계는 있어. 만약 해당 사업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일해야 하는 거면 눈치가 보여서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말 아파도 내 도움을 받아서 쉬면, 대체인력이 없어서 남은 사람들의 일이 늘어나거든. 또 내 도움을 받는 기간엔 널 해고할 수 없지만, 그 이후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많아. 고용주가 널 좋지 않게 볼 수도 있고, 다른 직장으로 재취업이 어려워졌다는 사람도 있어. 우리나라 제도는 사회로 복귀하기까지 지원하지 못하고, 보상에만 집중된 구조라서 그래. 실제로 우리나라는 산재 신청률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낮지만, 사망 재해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순위야.내 도움을 받는 걸 꺼리지만, 죽음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지.”

◇ 그래도 네 도움을 받고 싶은데, 회사에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혹시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병을 얻은 거라면, 산재를 신청해도 보험료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회사에 슬쩍 말해보면 어떨까. 고용주가 제도를 잘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거든. 또 근로복지공단에서 사업주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필요한 걸 갖춰가고 있으니까 한 번 알아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야. 난 너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도 있지만, 일하면서 얻은 사고와 질병이 회사가 책임지고 관리할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의미도 있어. 일하다 다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만약 다치면 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해.”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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