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오랫동안 여행은 금기어였다. 위드코로나를 앞두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암담한 시간 속에서도 더 나은 여행을 꿈꾸며 묵묵히 내일의 여행을 기획했던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행업계 차세대 리더들을 만나보았다.
① 여행업계 앙팡테리블 -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② 코로나19 극복 산증인 - 이영근 한국스마트관광협회 회장
③ 모빌리티 플랫폼의 빈틈 - 최민석 무브 대표
④ 한국형 도시민박 도전 - 조산구 위홈 대표
‘광주의 문화판을 바꾼 부산 사나이’, 이한호 쥬스컴퍼니 대표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그렇다. 대표적인 지역문화 기획자로 꼽히는 그가 둥지를 튼 곳은 광주 양림동이었다. 가족까지 함께 이주해 광주의 대표적인 구도심이었던 이곳에서 10년 동안 진득하게 문화적 도시재생을 꾀한 결과 양림동은 광주의 대표적인 예술 여행지가 되었다.
스스로를 지역문화 기획자라고 말하는 그와 동료들은 히트작 제조기다. 양림동을 비롯해 아산 온양온천시장,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서울남산골한옥마을 등 공간 활성화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여수 시티투어-낭만버스, 광주 시티투어-광주 100년 이야기, 목포 시티투어-로맨틱선샤인 등 공연과 여행이 결합된 테마형 시티투어 버스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이한호 대표는 지자체에서 관광과 문화 분야의 계획을 수립할 때 먼저 찾는 지역문화 기획자다. 그래서 바쁘다. 일주일에도 몇 바퀴 전국을 순회한다. 지역의 문화와 관광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어서 그를 만나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명확해지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바쁜 그를 청주에서 만났다.
-지역문화 기획자의 역할을 설명해달라.
2003년 문화기획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축제기획자나 공연기획자가 주요한 활동 범주였다. 당시 문화기획에 대한 관점은 대체로 포맷 중심이었다. 그런데 문화기획의 결과로서 로컬의 문화 향유에 변화가 생기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다. 이선철, 권순석 등 지역을 무대로 두고 활동하는 선배들이 2010년 전후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내 방향과 지향도 이쪽이라고 생각했다.
-지역문화 기획자로서 본인의 특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역문화 기획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축제 개발과 기획, 대행 그리고, 축제를 통한 지역활성화와 관련된 일을 주로했다. 그래서 지역 문화를 축제 중심적 사고에서 바라봤던 것 같다. 문화기획자로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사람들이 희열을 함께 느끼는 것을 만든다는 카니발리즘적 마인드였다. 그러다 긴 호흡과 확장성을 바탕으로 로컬의 문화를 기획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지역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역문화 기획자로서 그동안 관여했던 곳은 어디어디인가?
충남 아산 온양온천시장, 전북 무주 태권도원, 최근에는 경북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지역에 문화 관광 컨설팅이나 운영 계획을 세웠다. 평택이나 부여 광주 남구 등 지자체의 관광 진흥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여행주간의 총괄 디렉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쥬스컴퍼니 초기에 대표적으로 문화기획을 한 지역은 어디었나?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시장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중심으로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서울 근교라 방문자가 많았다. 지역문화 브랜드를 만드는 경험을 하고 지역을 대상화 하지 말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해야겠다고 생각으로 아산지사를 냈다. 이것을 모태로 양림동 문화적 도시재생도 시작했다.
-이한호라는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양림동 문화적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부산 출신이 광주에서 이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광주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시작했다. 공간을 기획하고 도시를 기획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초기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중심으로 사고했다. 그런 큰 기관이 들어서는데 그 파장을 확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림동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1980년 이전의 광주는 어떤 곳이었나’라는 질문이었다. 광주는 모든 서사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작했다. 그 이전의 광주는 없었다. 광주시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서사가 없었다. 나에게도 중요한 질문이어서 파고들었는데 이 질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양림동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곳이었다.
-양림동이 어떤 답을 주었나?
양림동은 서양 선교사들이 처음에 터를 잡은 곳으로 광주에 근대를 심어준 곳이다. 그 근대를 받아들인 이들이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런 근대의식이 1980년 광주로 이어졌다. 광주시민들도 기억하지 않았던 시간에 천착했는데, 프로젝트 초입 에 적절한 문제의식이었다.
-문화기획을 이런 근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색다르다.
사회학을 부전공했다. 사회가 100여년 주기로 큰 변화를 맞는다는 메가트랜드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203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문화도시 정책이 만들어 낼 광주를 상상할 때 딱 100년 전인 1930년을 들여다 보았다. 그 중간인 1980년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시나리오가 괜찮았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광주를 해석하는 설계도로 삼았다. 이런 게 없었으면 해맸을 것이다.
-‘광주 1930’을 특정하고 그 시절 광주를 복기하는 기획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1930년대는 광주에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광주의 여러 시간대에서 개방성과 다양성이 가장 풍부했던 시간대다. 그 많은 부자와 예술인과 선교사들이 양림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함께 하면서 광주의 근대문화를 만들어냈다. 거기에서 축적된 경험들이 광주의 일상에 영향을 줘서 시민사회 리더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힘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2030 세대에게 인기가 좋은 경주 황리단길도 톤앤무드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다. ‘1930년대 식민화 되지 않은 조선 귀족사회’라는 주제의식이 느껴진다.
광주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다크투어리즘으로 풀어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광주 양림동에는 군산과 목포에 흔한 적산가옥이 없었고 식문화에서도 일제 잔재가 없었다. 광주의 근대화는 선교사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영역이었다. 다크가 아니었다. 깊이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시대가 펼쳐졌다. 정율성의 음악이나 김현승의 시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1930년 광주를 어떻게 풀어갔나?
시대와 장소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에는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스토리 클럽을 운영했고, 이를 바탕으로 ‘모단걸 다이어리’라는 장소 특정형 공연을 개발했다. ‘마을이 무대다’라는 생각으로 마을을 산책하면서 시그니쳐 공간에서 공연했다. 이후 이나영, 김꽃비, 이영훈 등 동료들과 함께 30회에 걸쳐 ‘1930 양림쌀롱’이라는 마을 축제를 열어서 지역의 상권과 문화자원을 묶어냈다. 명소 중심이 아니라 톤앤무드와 라이프스타일을 여행자들에게 어필하게 했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근대의 복식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의도에 호응해 주었다.
-다향다방이라는 조그만 무인다방을 양림동의 문화적 도시재생 거점으로 삼았는데 ‘양림쌀롱’이라는 여행자라운지를 거쳐 이제 10년후그라운드라는 큰 거점이 되었다. 공간 활성화는 어떤 방식으로 했나?
공공 영역의 컨설팅을 하면서 큰 공간의 운영기획과 관리를 많이 해와서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이해관계자가 많아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 힘들어진다. 작은 공간이면 색깔을 정해놓고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아 작게 시작했다.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을 초대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2012년부터 다형다방에서 문화기획자 모임, 예술인들의 파티, 청년예술가들의 네트워킹 등 살롱을 만들었다. 처음에 모형을 보여주고 그 이후에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해 365일 문을 열어 두었다. 다형다방이 한옥 양림쌀롱을 거쳐 10년후그라운드로 성장했다.
-광주에 대한 그런 고민이 ‘광주예술여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2017년 이후 광주 관광 위기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관광에서는 원래부터 광역지자체 중 하위권이었다. 전남대학교 강신겸 교수님을 비롯해 지역에 새로운 여행을 디자인하자는 그룹이 나타났고 그 결과물로 ‘예술여행도시 광주’가 정책사업으로 결정되었다. 도시관광 비전을 함께 만들어낸 셈인데 여기에 민간 파트너로 초기 정책 수립부터 함께하게 되었다.
-‘예술여행도시 광주’를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역에는 계획과 예산이 있어도 움직일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광주도 인바운드 여행사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아웃바운드 하청만 있다. 콘텐츠를 만들지도 못하고 만들어도 전달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우선 사람부터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예술여행학교를 2020년 시작했다. 현재 230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이 광주 여행을 고민하고 개발하고 기획하고 창업 준비 중이다.
-히트작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테마형 시티투어 버스다.
여수 시티투어-낭만버스, 광주 시티투어-광주 100년 이야기, 목포 시티투어-로맨틱선샤인을 금호고속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금호고속은 단순한 여객사업자가 아니다. 금호고속은 ‘1,000대의 관광버스’와 주요 버스터미널을 가진 회사다. 수도권에서 남도까지 자가용으로 여행 오기 쉽지 않은데, 버스를 활용한 효과적인 여행이 가능하다. 코로나 이후에는 버스 기반 이색적인 외국인 대상 관광상품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양림동과 함께 이 대표가 일궈낸 중요한 공간이 남산골한옥마을이다. 초기에 어떤 기획을 가지고 시작했나.
남산골한옥마을의 시간은 1890년대로 설정했다. 한옥마을에 재현한 한옥의 건립연대가 대부분 1890년 무렵이었다. 그래서 파트너인 윤성진 감독, 박재길 이사와 함께 ‘1890년대 한양의 어느 날’이라는 컨셉으로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의 톤앤무드를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공간 디자인을 어떻게 실행했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이지만 국내외 여행자들이 마을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 넣는데 집중했다. 특히 ‘남산골야시장’에 대한 호응이 컸다. 원래 남산골한옥마을은 야간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었는데 야시장 덕분에 밤에도 활성화 되었다. ‘남산골 밤마실’ ‘손탁 야회’ ‘남산골 드라마’ 등 1890년대 시대성과 서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계속 기획했다. 2016년 이전 중국인 관광객 중심의 공간이 2019년에는 45개국 150만명이 방문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시민들 역시 서울 안에서 특별한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자, 국악을 통해 풍류여행을 즐기는 장소로 찾아줬다.
-남산골야시장의 원형인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도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안다.
2015-2016 연간 12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할만큼 성황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좋은 셀러와 푸드트럭을 적극적으로 섭외해서 장터를 형성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푸드트럭이 창업까지 이를 수 있게 도왔다. 야시장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성장하도록, 이벤트로서의 야시장이 아니라 육성 체계로서의 야시장이 되도록 기획했다.
-다른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힘들었을 것 같다.
남산골한옥마을도 꽃 피우기 직전이었고, 2020년 여름 10년후그라운드를 오픈했는데, 모든 것이 닫혀버리니 상당히 위축되었다. 남산골한옥마을의 경우 공공 공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안전하게, 더 실감나게, 더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한 끝에 온&오프라인으로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길들을 찾았다. 특히 온라인으로 진행된 공연예술축제 <변신술>과 비대면 남산골전통체험, 살롱 1890, 남산live 등은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도 구축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넓은 세상과 만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0년후그라운드의 경우 민간의 자율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했다. 코로나19 와중에 한희원, 이이남, 정헌기 등 지역 문화예술인, 주민, 상인들과 ‘양림 골목비엔날레’를 열었다. 비대면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전시였다. ‘마을이 미술관이다’라고, 양림동 공간 전체를 재해석해서 관의 지원 없이 민간의 힘만으로 ‘양림 골목비엔날레’를 열었는데 좋은 성과를 얻으면서 예술여행도시 광주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다.
-베트남을 비롯해 아시아 문화기획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광주의 문화기획자들과 함께 2012년부터 매년 베트남 싱가폴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며 현지 문화 기획자와 정책 담당자들을 만나고 있다. 광주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이자 아시아 문화예술인들이 코리안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아시아와 광주의 만남은 어떻게 이끌 생각인가?
최근 광주 구도심에 아시아음식문화거리(구시청 사거리) 활성화 기획을 맡게 되었다. 도전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음식에서 나아가 아시아 라이프 스타일을 중심으로 아시아 문화교류를 실험할 랩을 운영할 예정이다. 지역의 20대들이 아시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장을 열 것이다. 아시아가 쥬스컴퍼니에게는 ‘10년 후 그라운드’다. 문화를 기반으로 아시아 지역의 상호 문화교류와 비지니스를 도모하는 것이 나와 동료들의 비전이다.
고재열 여행감독 gosisa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