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서 구매한 만 원짜리 게임, 제 삶 송두리째 바꿨죠”

문대찬 / 기사승인 : 2021-12-04 10: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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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엄마 손 잡고 구매한 게임에 푹 빠진 소년
'날아라 슈퍼보드 : 환상서유기' 후속작 2017년부터 개발
비전공자로 '맨땅에 헤딩'... 응원과 후원 덕에 직진
"좋아서 시작한 게임 개발, 내년부턴 직업으로"


KCT 미디어에서 1998년 발매한 '날아라 슈퍼보드 : 환상서유기'

게이머라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을 꼬박 새워 즐긴 ‘인생 게임’ 하나쯤은 갖고 있을 터다. 다만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인생 게임’을 만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달 초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이탄현(30)씨는 ‘인생 게임’을 만난 20여 년 전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거예요. 동네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놀러 갔다가 ‘날아라 슈퍼보드 : 환상서유기(이하 환상서유기)’를 처음 접하게 됐죠. 구매했다는 곳을 한달음에 찾아 가보니 이미 다 팔려서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친구네 집으로 가서 게임을 플레이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씨는 동네 슈퍼마켓 매대에서 주얼판(별도의 박스 패키지 없이 저렴하게 유통된 제품)으로 발매 된 ‘환상 서유기’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마트에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갔는데 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CD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가격은 만 원이었는데, 이걸 사주면 공부 열심히 하겠다면서 어머니를 졸랐죠. 겨우겨우 손에 넣어서 그 때부터 형과 함께 게임을 즐겼어요.”

1998년 KCT 미디어가 개발한 ‘환상서유기’는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IP(지식재산권)를 재해석한 게임이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 등의 캐릭터에 서양의 다크 판타지 요소를 곁들여 색다른 매력을 뽐낸 작품이다. 부족한 인력, IMF로 인한 투자 부족 등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출시됐지만 풍부한 캐릭터와 깊이 있는 스토리, 고품질의 연출과 BGM 등을 앞세워 많은 유저에게 사랑 받았다. 현재까지도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회자될 정도로, 국산 패키지 게임의 몇 안 되는 명작으로 꼽힌다.

'환상서유기' 플레이 장면.

“몇 번이나 클리어 했는지 모르겠어요. 방학만 되면 다시 첫 스테이지부터 시작해 엔딩까지 봤죠. 그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반복했어요. 뭐가 그렇게 재밌었냐고요? 세계관도 탄탄하고 캐릭터의 흡입력 있는 대사들, 그런 것들이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게임을 해봤지만 ‘환상서유기’만큼의 몰입감을 주는 게임은 만나보질 못했어요. 전투도 재밌고 동료를 영입하고 성장 시켜나가는 과정, 아이템 수집, 당시에도 매력적이었던 전투 방식 등등… 말하자면 입만 아프죠, 하하. ‘환상서유기’를 무시하는 친구들 때문에 많이도 싸웠어요.”

“아직도 생생해요. 우리 어렸을 땐 ‘놀토(노는 토요일)’라는 게 있었잖아요. 신발주머니를 툭툭 차면서 걸어오는 데 하늘도 되게 맑고… 집 가서 ‘환상서유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벅찼던 당시의 마음이 아직도 크게 남아 있어요. 달리 말하면 제 유년의 전부죠. 그런 게임이에요. ‘환상서유기’는.”

'환상서유기'를 즐기다 보면 NPC를 통해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환상서유기’를 즐긴 대부분의 유저들처럼, 이 씨 역시 후속작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KCT 미디어가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의 풍파 속에 도산하면서 후속작 출시는 요원해졌다.

“팬이라면 공감할 거예요. 마음속에 후속작에 대한 염원 같은 게 간절했거든요. 캐릭터와 세계관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다음엔 어떤 얘기들이 펼쳐졌을까, 이런 근원적인 흥미들이 마음을 간지럽힌 거죠. 어렸을 땐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개발자를 다시 모아 후속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했죠. 그런데 아시잖아요, 현실에선 돈을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으니까요.”

2017년, 결국 이 씨는 후속작 개발에 직접 뛰어들었다. 계기는 삶을 뒤흔든 큰 부상이었다.

“복싱을 하다가 눈을 다쳐서 큰 수술을 몇 번 했어요. 시력이 크게 떨어졌죠.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왼쪽 눈밖에 잘 안 보이는 상황이에요. 나중에 앞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추후 ‘환상 서유기’의 후속작이 나오더라도 그걸 못 보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전에 몇몇 팬 분들이 후속작 개발을 시도하신 적은 있어요. 하지만 끝을 맺지 못하고 관두셨어요. 다른 분들이 개발을 시작하는 걸 무작정 기다리기엔 가망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앞을 볼 수 있을 때 내가 후속작을 만들자’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거죠.”

'환상 서유기 : 이터널' 작업물.  이탄현 씨 제공

대학 전공이 컴퓨터 공학, 프로그래밍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씨는 ‘환상서유기 : 이터널’의 초기 개발 과정이 ‘맨땅에 헤딩과도 같았다’고 전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하루에 8시간씩 들이받았죠. 그 땐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무작정 개발에만 몰두했어요.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까지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어요. 몇 번이고 좌절도 했고요.”

“개발을 하면서 지금도 ‘환상서유기’를 종종 플레이 해봐요. 같은 게임이지만 제작자의 입장으로 게임을 바라보니 또 다르더군요. 명작 영화들을 볼 때면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잖아요. 지금 나오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약간 비루할 수 있는 품질인데, ‘환상 서유기’ 역시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세계관에 대한 몰입감,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정말 대작이에요.”

개발을 시작한 이후 이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개발 과정과 일지를 꾸준히 업데이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시글 댓글란은 소문을 듣고 몰려온 게이머의 응원과 격려의 글로 가득 찼다. 

“게임에 대해서 처음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금방 완성시킬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 전에 모아둔 돈을 까 먹어가면서 생각 없이 개발만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고요. 하지만 출시를 기대하는 분들은 많아지고… 개인 사정으로 놓아 버리기엔 일이 커져버린 거죠.”

생활고에 봉착한 이 씨는 고심 끝에 개인 후원을 받기로 결심했다. 

“다른 일과 병행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을 때여서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친구의 권유로 팬 분들에게 블로그를 통한 개인 후원을 받기로 했죠. 십시일반 보내주신 돈으로 라면도 사 먹고, 원룸 방세도 내면서 개발에만 전념 했어요.”

“그 땐 기본적인 이미지 작업, 포토샵도 할 줄 몰라서 시간을 정말 많이 썼어요. 후원해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좌초 됐을 수도 있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오직 열정만 보고 적게는 3000원, 많게는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보내주셨어요. 어떤 분은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하는 분이었는데 ‘자기 인생 게임인데 소식을 들어서 기쁘다, 힘내 달라’며 격려 해주신 것도 생각나네요. 빠듯하고 고단 상황에서 되게 힘이 됐었어요.”

'환상서유기 : 이터널' 작업물.  이탄현 씨 제공

그저 게임이 좋아서 시작한 개발은, 어느덧 이 씨에게 하나의 사명이 됐다.

“처음에는 오로지 저를 위한 작업이었어요. 하지만 반드시 완수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든든한 우군이 생겼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위기에 몰렸을 때, 저 건너편에서 우군 병사들이 등장했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요. 원래도 ‘환상서유기’를 좋아하는 팬 분들이 많은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 블로그를 하루에도 몇 천 명씩 찾고 후원까지 해주시는 걸 보고, ‘환상서유기’가 나만의 ‘인생 게임’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연히 연락이 닿은 ‘환상서유기’ 개발진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어느 날 쪽지를 보내온 KCT의 프로그래머 분을 통해 ‘환상서유기’의 시나리오와 기획을 담당했던 정연태 디렉터님의 소식도 건너 들었어요. ‘처음 개발 소식을 접하고 걱정을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고,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시더라고요. 차마 풀어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필요한 소스 등을 알 수 있을까 기대도 했었는데,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자료를 잃어버렸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힘이 많이 됐어요. 저 같은 게 뭐라고. 존경하는 분들의 응원을 들으니 마음이 벅찼어요.”

물론 이 씨를 의뭉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 씨가 직업 활동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게임 개발이 지체되자, 그를 비난하는 댓글도 최근 여럿 달렸다고.

“일을 시작한 뒤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주말에는 부업도 하고 있어서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많이 쏟고 있어요. 8~10시간 컴퓨터 앞에 눌러앉아서 대사를 넣고 씬을 구성해야 하는데, 짬을 내 의무적으로 작업 하다 보니 작업물이 시원치 않아요. 아쉽지만 그 때마다 싹 갈아엎어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후속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되뇌어 봤을 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퇴근하면 샤워하고 50분 정도 작업하는 것 같아요.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도 많죠. 최근엔 백신을 맞고 받은 휴가 날에 몰아서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추석 땐 고향에도 안 내려갔어요. 요즘은 시간이 많을 때 조금 더 해놓을 걸, 이런 생각도 들어요.”

“‘들어보니 처음 만드는 거라고 하던데 장편을 고집 하느냐, 단편으로 하면 서로 좋지 않으냐’, ‘왜 무리를 하느냐. 기대도 안 된다’ 이런 댓글을 적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일리가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섭섭하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김이 빠지는 얘길 하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분들도 있어야 쉽게 나태해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어요. 비판 댓글을 보면 독기가 차오르거든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라, 내가 보란 듯이 만들어 보이겠다’ 다짐하는 거죠.”

이탄현 씨는 게임 개발자로 취업을 꿈꾸고 있다.   본인 제공

숨을 고른 이 씨는 기자에게 일과 개발을 병행하고 있는 이유를 털어놨다.

“게임 개발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최근에 꾸게 됐어요. 상경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어요. 게임을 직접 만들면서 개발에 대한 매력과 흥미를 알게 됐어요. 물론 제가 겪은 수고스러움과 어려움은 빙산의 일각이겠죠. 그래도 거기서 제 길을 보게 된 것 같아요.”

“31살에 이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미련하고 미친 짓일 수 있어요. 사실 많이 쪼들려요, 하하. 그래도 내년부턴 게임 회사에 기획자로 취업을 해서 역량을 쌓고 싶어요. 당장은 아마추어에 불과하겠지만 먼 훗날, ‘환상 서유기’에 버금가는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이 씨는 올해는 꼭 후속작 ‘이터널’ 개발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는 ‘이터널’을 꼭 마무리 짓고 싶어요. 이걸 완성하지 못 하고 게임 회사에 들어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제가 만들어 낸 세계관도 아니고, 그저 숟가락을 얹는 것뿐이지만 이 후속작이 원작의 반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게임이었으면 해요. 최선을 다해 누가 되지 않으려고 해요.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새롭게 꾸려나가기로 한 제2의 삶, 그 시작점이잖아요. 확실하게 잘 마무리 짓고 싶어요.”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