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 진짜 결말은 시청자들 몫” [쿠키인터뷰①]

“‘소년심판’ 진짜 결말은 시청자들 몫” [쿠키인터뷰①]

기사승인 2022-03-19 06:00:11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에서 촉법소년 백성우를 연기한 배우 이연. 넷플릭스

아파트 단지에서 8세 초등학생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며 경찰에 자수한 이는 13세,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이었다. 여론은 분노로 들끓는다. 법원 앞에선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시위가 벌어진다. 심은석(김혜수) 판사가 활약해 진범을 잡은 뒤에도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소년은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강력한 처분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가, 소년범은 교화 가능한 존재인가 하는 질문이 마구 뒤섞여서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은 소년 범죄를 둘러싼 여러 꺼풀의 문제를 들추며 엄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을 파고든다.

“소년 사건엔 ‘무조건’이 없다”

“(소년 범죄를 향한)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엄벌이 답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김민석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김 작가는 4년 간 법원,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청소년회복센터 등을 취재해 ‘소년심판’ 극본을 썼다. 동행한 기획 PD가 ‘이렇게 취재를 많이 다닌 적은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을 만났다. 김 작가는 “언론 보도와 현직 종사자들 의견이 달라 놀랐다”며 “현직에 계신 분들은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과장된 부분이 많고, 실제로는 소년 사건이 그 정도로 잔인하지 않다’고 했다. 절반 이상은 가난해서, 가정폭력에 못 이겨서, 가출로 인해서 벌어지는 범죄들”이라고 설명했다.

‘소년심판’을 만든 김민석 작가(왼쪽), 홍종찬 감독. 넷플릭스

김 작가가 맞닥뜨린 과제는 “소년사건들을 향한 기존 인식과 현직자 시각 간 간극을 줄이는 작업”이었다. 그는 소년범을 ‘악한 개인’으로 묘사하는 대신, 소년을 둘러싼 환경과 과부화가 걸린 시스템을 함께 주목했다. 서유리(심달기)는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했다가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선다. 보호처분이 끝난 뒤 새 출발을 준비하던 곽도석(송덕호)은 또래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다 면허 없이 운전대를 잡는다. 물론 심은석이 말한 것처럼 “다양한 선택지 중 범죄를 택한 건 결국 소년”이다. 하지만 작품은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는다”고,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다”고 심은석의 입을 빌려 말한다.

“소년사건은 무엇 하나로 인해 벌어지지 않는다. ‘무조건’이란 게 없다. 넓게는 사회적인 시스템 문제, 가까이는 가정환경과 친구관계 등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균형을 지키며 다양한 면을 보여야 본질적인 이야기로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있는 듯 없는 듯…‘숨은 연출’의 비밀

건조한 균형은 메가폰을 잡은 홍종찬 감독도 작업 내내 곱씹은 태도였다. “한쪽 시각에만 치우치면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도 변질된다고 생각”해서다. “‘괴물 같은 아이들’이 부각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소년 범죄를) 미화하거나 덜 보여줄 수도 없다”는 갈등 속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드러나지 않는 연출”이었다. 홍 감독은 “극 안에서 연출이 드러나지 않고 캐릭터가 부각되게 하려니 고민이 많았다. 과도한 카메라 워크나 인위적인 개입이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첫 만남 때부터 ‘이 작품을 계기로 소년사건을 둘러싼 시스템 문제에 관해 더 많은 논의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홍 감독은 “연출자는 작품을 통해 사람의 마음, 감정, 가치관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 ‘소년심판’은 이런 제 연출 철학과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김 작가에게도 ‘소년심판’은 특별하다. 비단 처음 써낸 작품이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이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고 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죄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재판 이후 소년범들의 삶까지, 법정 안팎에서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다양한 질문거리들을 담았다. 우리 모두 아직 풀지 못한 숙제이니 한 번 더 같이 머리를 맞대 보고 싶었다.”

‘소년심판’ 스틸. 넷플릭스

“작품의 진짜 결말은 시청자 몫”


전국 판사 2200여명 중 소년부 판사는 20여명, 이들이 매년 만나는 소년범은 3만명 이상. 재판뿐만 처분받은 소년을 관리·감독도 해야 하는 소년부 판사들에게, 심은석처럼 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보호관찰관 한 명이 관리해야 하는 소년범은 100명을 넘고, 보호력 없는 가정으로부터 소년범을 돌보는 청소년회복센터는 민간에 떠넘겨졌다. 경찰은 ‘소년 범죄는 실적이 안 된다’며 소극적이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막막한 현실 속에도 ‘소년심판’은 희망을 심어뒀다. 학창시절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가 보호처분을 받았던 차태주(김무열)는 담당 판사였던 강원중(이성민)의 노력 덕에 새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소년 사건은 속도전”이라고 믿던 나근희(이정은)는 자기 신념에 상처 입은 이들을 돌아보며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제작진은 작품 안에서 싹 틔운 희망이 작품 바깥으로도 이어지길 소망한다.

“작품의 진짜 결말은 시청자들이 만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며 분노와 먹먹함 등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셨다면, 저희들 역할은 다 한 거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다양한 면을 많이 논의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현재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김민석)

“대사로도 나왔듯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온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내 아이,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많은 아이들, 소년들을 보듬어주고 챙기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홍종찬)

인터뷰=이준범 김예슬 이은호 기자
정리=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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