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식당’ 감독 “진실하게 만드니까 영화가 스스로 움직여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4-13 19:38:28
- + 인쇄
‘복지식당’ 감독 “진실하게 만드니까 영화가 스스로 움직여요” [쿠키인터뷰]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영화 ‘복지식당’(감독 정재익, 서태수)를 보다 보면 절로 웃음이 터지는 두 장면을 만난다. 하나는 재기(조민상)이 처음 전동 휠체어에 오르는 장면이다. 중증 장애를 가진 재기는 혼자 밖을 나갈 수 없어 전동 휠체어가 꼭 필요하지만, 경증인 5급이라 지급받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휠체어가 필요 없는 ‘달리는 2급’ 봉수(송민혁)는 선심 쓰듯 전동 휠체어를 재기에게 넘겨주면서 신이 나서 사용법을 알려준다. 또 하나는 장애 등급을 바꾸기 위해 행정 소송을 제기한 재기를 위해 “재기의 중증 장애인을 위하여”라고 건배하는 장면이다. 사실 중증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그것이 재기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아이러니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지어낸 장면이 아니다. ‘복지식당’은 정재익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탄생한 영화다. 지난 12일 영화를 공동 연출한 정재익, 서태수 감독을 만난 카페는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1층에 위치했다. 두 감독은 과거 인터뷰 장소가 지하에 위치한 곳이라 계단을 내려갈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영화는 장애인 사회에 진입하는 재기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초점을 맞췄다. 정작 두 감독은 스스럼없이 “관심받고 싶다”며 인터뷰 내내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복지식당’ 감독 “진실하게 만드니까 영화가 스스로 움직여요” [쿠키인터뷰]
서태수(왼쪽), 정재익 감독. 인디스토리

‘복지식당’의 시작은 워크숍

음성 꽃동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정재익 감독은 2010년 교통사고를 당해 후천적 장애인으로 살게 됐다. 극 중 재기처럼 중증 장애가 있지만 경증인 5급 판정을 받았다. 장애인 등급제의 문제를 알리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장애인 협회에 요청하기도 하고 인권단체에 글도 썼다. 나중엔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자신의 사연을 올렸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러던 때 영화를 만났다. 이전 기수 수료식에서 장애인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본 정재익 감독은 “정말 너희가 만든 거 맞냐고”고 물었다. 메이킹 필름까지 보고 정말 장애인들이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정 감독은 곧바로 다음 기수 워크숍에 참여했다. 정 감독은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이었다”며 “나도 내가 경험한 나의 얘기가 있었다”고 했다.

서태수 감독은 정재익 감독을 2018년 장애인 영화제작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엔 가벼운 워크숍이었지만,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정재익 감독을 봤다.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 서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정 감독의 경험을 꼽았다. 그는 “‘복지식당’을 보면 느껴지는 답답하고 화나는 그 감정이 폭발하듯 글에 담겨 있었다”고 기억했다. 짧은 단편영화를 목표로 시작한 작업이 장편영화로 규모가 커졌다. 처음엔 프로듀서로 제작을 도울 생각이었지만 공동연출로 생각을 바꿨다.

두 사람은 10개월 이상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 끝에 2019년 12월 대본을 완성했다. 20일 정도 걸려 17회차 촬영을 마치고 2020년엔 후반 작업에 매진했다. 배리어 프리 버전까지 완성했고, 지난해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14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에 두 사람은 “처음엔 장애인들이 같이 보고 얘기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며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복지식당’ 감독 “진실하게 만드니까 영화가 스스로 움직여요” [쿠키인터뷰]
영화 ‘복지식당’ 제작 스틸컷

"목표는 완성이었어요"

‘복지식당’의 초고 제목은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었다. 영화 초반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재판 장면을 떠올리는 제목이다. 정재익 감독이 마음에 들어한 제목이었지만 서태수 감독 생각은 달랐다. 영화가 직설적이고 투박한 만큼 더 부드럽고 유연한 제목을 원했다. 친근하고 편안한 복지를 생각하다가 영화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인 식당을 제목으로 넣었다.

‘복지식당’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도 많았다. 정재익 감독은 현실적인 장애인 사회 이야기를 영화로 그리는 것에 주저했다. 자신이 살아왔던 동시에 앞으로 평생 살아갈 사회이기 때문이다. 극 중 재기처럼 장애인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 찍히기도 하고 당하기도 했던 정 감독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며 “지금은 영화를 보신 장애인들도 다 이해를 해준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직설적인 영화의 전달 방식에 고민이 많았다. 날 것의 이야기를 예쁘게 포장하거나 간접적으로 돌려 얘기하는 방법은 많았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영화를 만들자는 결론에 닿았다. 서 감독은 “직설적이고 투박한 방식에 관객들이 불편한 것 안다”며 “하지만 우리는 다른 방법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 매체에서) 장애인들이 포장되고 좋게만 나오니까 (비장애인들이) 진실을 모른다”며 “영화는 스스로 움직인다. 영화를 진실하게 만드니까 움직이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복지식당’ 감독 “진실하게 만드니까 영화가 스스로 움직여요” [쿠키인터뷰]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

전동 휠체어를 처음 타고 행복해하는 극중 재기의 모습은 정재익 감독의 경험에서 탄생했다. 사고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이후 몇 년을 병원과 집에만 있었다. 제도의 피해자로서 분노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최근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며 연일 시위를 벌인 장애인들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1년 아들을 만나러 가던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후 21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 시위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6일 “이동권 관련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 서울시민을 볼모로 삼는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재익 감독은 지난해 12월31일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언급하며 “장애인들이 20년을 싸워서 겨우 법안이 통과됐다”며 “장애인은 20년을 싸웠는데 비장애인들은 출근 시간 1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태수 감독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초기에 우리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밖에 못 나가서 답답해했잖아요”라며 “어떤 장애인은 20년 동안 못 나오고 있다. 밖에 나오는 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라는 걸 생각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복지식당’ 감독 “진실하게 만드니까 영화가 스스로 움직여요” [쿠키인터뷰]
서태수(왼쪽), 정재익 감독. 인디스토리

‘복지식당’은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정재익, 서태수 감독은 배우들에게 연기 지시를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재기 역을 맡은 조민상 배우의 외적 표현에 신경을 썼다. 처음엔 정재익 감독이 외형적인 것을 알려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민상 배우가 장애인의 심리를 계속 물어봤다. 정 감독은 “재기가 됐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서태수 감독은 ‘복지식당’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정의했다. 장애인이 아니었던 재기가 장애인이 되어가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 이야기란 얘기다. 서 감독은 “영화에서 재기를 지켜보면 처음엔 제도의 문제로 들여다보다가 나중엔 장애인 사회가 보여요”라며 “한 사람이 외치는 소리거든요. 사회나 국가가 아닌 개인이 몸부림치는 얘기입니다. 정재익 감독이 수년 동안 느꼈던 답답하고 숨 막히는 시간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예전에 인터뷰를 하러 갔더니 지하에 계단이 있는 곳이었어요. 그분이 죄송하다고 했어요. 다음부터는 경사로가 있는 곳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계단이 불편한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서태수 감독은 농담처럼 저를 대한민국에서 손이 제일 많이 가는 감독이라 불러요. 촬영 현장에 배우들은 혼자 오지만, 제가 활동 보조인과 같이 온다는 생각을 못해요. 첫 번째가 장애인을 생각하는 거예요. 처음엔 어렵죠. 두 번째는 쉬워요. 그런 생각이 있으면 돼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