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실종된 일가족이 전남 완도 바닷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투자 실패 등 생활고로 인한 부모의 극단적 선택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양 죽음을 부모에 의한 비속(卑屬)살해로 보고, 이런 사건이 다신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달 살기 체험’ 떠난 후 연락 두절
조양의 부모는 지난 5월19일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체험’을 하겠다며 초등학교에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가족이 신청한 교외체험 학습 기간은 5월19일부터 6월15일까지였다. 하지만 체험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조양은 등교하지 않았다. 부모와도 연락이 닿지 않자 학교 측은 지난달 22일 신고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24일 실종 경보를 냈다. 조양의 신상과 가족이 탔던 차량 정보가 알려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일었다.
완도서 끊긴 일가족 행적
경찰 조사에서 조양 가족이 제주를 방문한 행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학교 측에 조양 가족이 알린 행선지와 달리 마지막 행선지는 완도군 신지면이었다. 조양 아버지(36)의 차량이 5월29일 오후 2시 고금대교를 건너 완도에 들어간 것은 확인됐지만 육지로 나오는 모습은 찾지 못했다.
엄마 등에 업힌 아이, 차례로 꺼진 휴대전화
실종 직전 행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YTN이 공개한 CCTV 영상에는 5월30일 밤 11시께 완도의 한 숙소에서 조양 어머니(35)가 축 늘어진 조양을 등에 업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장면이 담겼다. 조양 아버지가 손에 물통 등을 들고 함께 이동해 인근 주차장에 있는 차량에 탑승하는 모습까지 찍혔다. 또 다른 영상에는 조양의 어머니가 숙소에 있던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모습도 담겼다.
영상이 찍힌 두 시간 후인 5월31일 오전 1시께 조양과 조양 어머니의 휴대전화가 차례로 꺼졌다. 같은 날 새벽 4시 송곡선착장 인근에서 조양 아버지의 휴대전화도 꺼졌다.
실종가족, 끝내 주검으로
해안과 바닷속을 집중적으로 수색하던 경찰은 지난달 28일 3월20분께 송곡 선착장 앞바다에서 조양 가족이 탄 차량의 부품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 조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곳에서 80m 떨어진 곳이었다. 이후 2시간여 뒤인 오후 5시12분께 차체도 발견했다.
해경은 다음날인 29일 오후 12시20분께 바다에 빠져 있던 조씨의 차량을 인양했다. 차 안에는 조양과 조씨 부부가 숨진채 발견됐다. 조씨는 안전벨트를 맨 채 운전석에, 조양과 어머니 이씨는 뒷자석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숨져 있었다. 인양된 차량의 자동변속기는 ‘주차(P)’ 상태였다.
조양 가족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경찰 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지난달 30일 1차 부검이 진행됐지만 ‘사인 불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조씨의 차량에서 블랙박스와 휴대전화를 확보하고 경찰청 디지털 포렌식센터에 분석을 맡겼다.
생활고 정황, 극단적 선택 가능성
경찰은 조씨 부부가 어린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조씨는 지난해 7월 운영하던 사업체를 폐업했고 부인 이씨도 비슷한 시기 직장을 그만 뒀다고 한다. 조양의 집에 독촉장이 쌓일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거 온 것으로 파악됐으며, 가상화폐 투자가 실패했다는 주변 증언들도 나왔다. 경찰은 조양 부모가 인터넷으로 방파제 추락, 완도 물때, 수면제, 루나코인 등을 검색한 기록과 이씨가 의료기관에서 불면증과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수면제를 처방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왜 아이까지” 시민들 탄식
조양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만약 부모가 극단 선택을 한 것이라면 조양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SNS 등 온라인에선 “여행 간다고 신나서 웃었을 아이 생각에 안타깝다” “아이는 무슨 죄냐” “아이는 피해자”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낸 2020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등은 2016년 36건, 2017년 38건, 2018년 28건, 2019건 42건, 2020년 43건으로 증가세다.
다만 자녀가 부모를 살해(존속살해)하면 가중처벌을 받는 것과 달리 가중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지난 3월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에 비속살해도 가중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형법 개정안이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영의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선임매니저는 “부모와 아동은 별개의 존재”라며 “죽음을 동의하지 않은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부모의 결정에 의해서 본인의 생명권을 박탈 당한 것이기 때문에 아동학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선임매니저는 “자녀를 자신과 다른 인격체로 보지 않고 부모의 소유물, 종속된 존재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부모가 (최악의 상황을 생각할 때) ‘이제 자녀를 누가 돌볼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 또한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이 일어나는 많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은 다음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위기 가정이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