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역무원 살해 사건’의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스토킹 방지법이 마련됐지만 스토킹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다. 피해자 보호 조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서야 경찰은 신당역 사건을 계기로 전국 스토킹 사건을 전수조사하고 관련 수사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검경 협의체’를 구축하기로 했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30대 남성 A씨가 역사 내부를 순찰하던 20대 여성 역무원 B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와 B씨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로, A씨는 B씨를 불법 촬영하고 협박하며 만남을 강요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고소당했다. 이후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위해제된 A씨는 B씨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문자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 지난 1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피소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스토킹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신당역 사건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10월8일 경찰은 A씨를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지난 1월 스토킹 혐의로 재차 고소했지만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스토킹을 계속했고, 법원 선고 하루 전날 B씨를 살해했다.
스토킹 방지법이 시행된 10월21일 이후 언론에 알려진 스토킹 살인 사건은 한 두건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스토킹 범죄로 신변보호 대상자였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사건이 발생했고, 12월에는 신변보호 대상자인 전 여자친구의 집에 침입해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살해한 이석준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6월 경기 안산에서도 60대 남성이 신변보호 중인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 등이 있었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경찰청으로 제출받아 1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관련 신고 건수는 2만2721건이었다. 법 시행 전인 3년 간의 신고를 모두 합친 것(1만8809건)보다도 많다.
스토킹 피해자 등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112신고, 고소 등을 통해 재신고한 건수는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7772건에 달했다. 이중 경찰이 가해자를 입건한 건수는 1558건, 구속수사한 건수는 211건으로 2.7%에 불과했다.
또한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위반사례에 대해 경찰이 검찰로 송치한 건수는 총4016건이다. 구속송치된 건수는 238건으로 불구속 송치가 95%를 차지했다.
스토킹으로 인한 잔혹 범죄가 터질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제도와 시스템을 손질하겠다던 수사당국은 이번에도 문제점을 뜯어고치겠다고 다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간담회에서 “법 개정 없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을 즉각 추진해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현행법상 가능한 긴급응급조치와 유치장 유치(잠정조치 4호)를 적극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전국 경찰이 수사 중인 스토킹 관련 사건을 전수조사한다. 이미 불송치를 결정한 사건도 전수조사에 포함해 피의자의 보복 위험이 있는지,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수조사 대상은 서울 기준으로만 약 400건으로 파악됐다.
또한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경찰과 검찰이 협의체를 구축한다고 했다. 스토킹 신고부터 잠정조치, 구속영장 신청 등의 단계를 긴밀하게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윤 총장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고 잠정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현실을 알고 판단하게 될 것이고 영장 발부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잠정조치 4호 인용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울러 현재의 3단계(경찰 신청→검찰 청구→법원 결정)로 이뤄진 긴급응급조치 구조를 경찰→법원의 2단계로 간소화하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