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31)와 공범 조현수(30)의 1심 재판에서 법원이 가스라이팅(심리지배)에 의한 직접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이씨가 남편 윤모(사망 당시 39세)씨의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간접(부작위) 살해했다고 판단해 이씨에겐 무기징역을, 조씨에겐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윤씨가 숨진지 만 3년4개월 만의 첫 법적 결론이다.
남편 윤씨, 왜 절벽 위에 섰나
2019년 6월 경기도 가평군의 한 계곡에서 이씨의 남편 윤씨는 물에 빠져 숨졌다. 남편이 사망하고 5개월 뒤 이씨는 보험회사에 남편의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이씨는 2020년 직접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험사의 횡포를 고발하겠다며 제보했다. 하지만 취재를 시작한 취재진은 오히려 이씨에게 석연치 않은 점을 다수 발견해 이씨 등이 윤씨의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익사 사고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단순 변사로 처리됐던 이 사건은 방송을 통해 알려진 뒤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물을 무서워하는 윤씨가 아무 장비도 없이 4m 높이 바위에서 3m 깊이 계곡으로 다이빙을 했다는 사실을 두고 이씨 등이 강요해 숨지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실제 공판 과정에서 윤씨에 대해 “피해자는 물을 매우 무서워하는 분이었다” “구명조끼를 입고도 물에 빠지면 계속 허우적거렸다” 등의 증언이 나왔다. 이씨는 “윤씨는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가난에도 미소 잃지 않던 소녀, 괴물이 되다
계곡살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세간의 관심을 더 끌게 한 건 이씨의 어린시절 모습이다. 2002년 3월 한 지상파 예능 방송에 출연해 가난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크면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고 싶다”고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성매매와 절도, 협박, 폭행 등으로 경찰에 상습적으로 입건된 사실이 드러났다.
결혼 후 극심한 경제난 겪은 남편…신혼집 홀로 차지한 이은해
윤씨는 지난 2017년 3월 이씨와 결혼한 후 생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 동료에게 3000원을 보내달라고 할 만큼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연봉 6000만원에 달하는 대기업 직원이던 윤씨의 통장에는 잔액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의 수원 월세 자취방에선 개인회생·압류 서류 등이 유족에 의해 발견됐다. 두 사람이 인천에 전세로 마련한 신혼집은 이씨 차지였다.
윤씨가 생전 이씨에게 보낸 메세지도 재조명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윤씨가 이씨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나 너무 배고파. 1만원만 입금해줘. 라면 살 돈도 없어”고 말한 카톡 사진이 퍼졌다. 신발 뒷부분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운동화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여기에 금전적으로 힘들었던 윤씨는 장기 매매 브로커까지 찾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등산용 로프를 검색하고 구입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이씨의 ‘가스라이팅(심리 지배)’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공개되는 추가 의혹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와 조씨가 2019년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뿐만 아니라 2014년과 2010년 이씨의 옛 남자친구 2명이 각각 태국 파타야와 인천 석바위에서 의문사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은해 지인들은 윤씨가 남편인지도 몰랐다
이씨 등과 알고 지내던 다수 지인은 법정에서 이씨와 윤씨가 법적인 부부사이인 줄 몰랐다고 증언했다. 복어독과 피를 섞은 음식을 먹여 윤씨를 살해하려 할 당시 강원 양양군 펜션에 같이 있던 지인은 “고인이 펜션에서 나가자마자 이씨와 조씨가 방에 들어가 성관계를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관계는 윤씨를 상대로 이씨가 경제적 착취를 지속하다 이용가치가 사라지자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했다는 의혹을 더 짙게 했다.
4개월간 잠적…내연남과 여행 다니며 호화생활
2020년 12월 경찰이 재조사에 착수해 이씨와 조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두 사람은 인천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지난해 12월 잠적했고 4개월 만인 4월1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도피 과정에서 이씨와 조씨는 지인들과 여행을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와 조씨의 지인은 이들에게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와 마진거래 사이트 관리·홍보 일을 맡겨 수익금 1900만원을 도피자금으로 쓰게 하고 은신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도록 도왔다.
법원, 이은해 무기징역·조현수 징역 30년 선고
지난 5월27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17차에 걸쳐 재판이 진행돼 마무리됐다. 검찰은 이씨와 조씨의 결심 공판에서 이씨와 조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20년 전자장치 부착명령과 5년간의 보호관찰, 특정시간 외출제한 등의 준수사항을 청구했다.
그리고 27일 오후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이씨에게 무기징역, 조씨에게 징역 30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한 이씨 등에게 전자장치 부착 20년 등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생명보험금 8억원을 받으려던 피고인들은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2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도 단념하지 않고 끝내 살해했다”며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구조하지 않고 사고사로 위장했다. 작위에 의한 살인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이 주장한 직접 살인죄 성립 도구로 가스라이팅을 인정하진 않았다.
이은해 무기징역에…유족 “감사하다” 눈물
이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피해자 유적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윤씨의 매형 A씨는 “증거 없는 미진한 상황이다 보니 저희가 불리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판결에 만족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취재진에 소감을 전했다. 윤씨의 누나는 선고 공판이 끝난 후 검사석에 다가가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온라인도 들썩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뉴스 댓글 등에 이씨 등의 재판 내용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누리꾼들은 “판사님 나이스샷” “고인과 유족분들에게 이번 판결이 조그만 위안이라도 되길 바란다” “아쉬움은 있지만 2심에서도 이대로 유지돼 확정되길” 등의 반응을 내놨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