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푸른 하늘은 그들의 무대였다. 거대한 하트와 태극 문양, 형형색색의 연기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장식했다. 세계인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렸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든 곡예비행을 선보인 그들은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지난 7월 영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군사에어쇼 ‘리아트(RIAT) 에어쇼’에서 최우수상과 인기상을 독차지하며 무한한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블랙이글스는 현지인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현지 관객 이슬라 러셀씨는 “친애하는 ‘검은 독수리’, 귀하와 함께하게 돼 영광입니다”는 글이 적힌 편지를 조종사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영국 BBC 등 각종 외신 보도와 유튜브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이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대한민국 위상을 드높였던 공군의 자랑 ‘블랙이글스’의 훈련 모습은 어떨까. 블랙이글스의 훈련지인 강원 횡성군을 찾았다. 도심, 외곽 할 것 없이 맹훈련 중인 블랙이글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제8전투비행단의 활주로를 달리며 비상하는 블랙이글스는 총 8대. 편대를 이뤄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한 대의 항공기와 같이 일사불란하게 비행하다 신호에 맞춰 각 방향으로 퍼졌다. 수직으로 치솟고, 곤두박질치듯 하강하는 모습에 심장이 요동쳤다.
‘검은 독수리’의 큰 날개짓에 거센 바람이 일자, 검붉은 현수막 100여 개가 세차게 나부끼기 시작했다.
지난 11월7일 오후 4시30분. 횡성에 사는 박가람(18·횡성여고 2학년) 양을 만났다. 가람 양은 지난해 블랙이글스를 처음 알게 된 그때를 회상했다. “엄마한테 저 까만 현수막에 적힌 블랙이글스가 뭐냐고 물었죠. 엄마가 일하는 군청 위로도 자주 지나다니는 곡예비행기라고 설명해주시던데요.”
점심시간. 가람 양은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공중을 빙빙 도는 블랙이글스가 처음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스마트폰 카메라를 치켜 올렸다. 기세등등한 곡예비행은 여고생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감동의 시간은 그리 길진 않았다. 훈련이 시작된 지 10분쯤 지나자, 비행소리는 점차 굉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가람아, 안 들려!” 대화를 하던 친구들은 서로의 오만상을 보며 약 30초간 침묵을 이어갔다. 친구들의 말소리는 비행소음과 함께 공중분해 됐다. 수업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블랙이글스가 뜨는 날이면 3~4번씩 흐름이 끊겼고, 선생님들은 손에 잡고 있던 분필을 수차례 내려놓아야 했다.
횡성고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10일 오후 4시쯤 만난 횡성고등학교 3학년 김우경(19) 군의 표정은 체념한 듯 보였다. 평소 비염으로 고생하는 우경 군은 블랙이글스의 비행 소음까지 들리면 머리가 심하게 울려 두통을 호소한다.
불행히도 블랙이글스 훈련이 영어수업과 겹친 날이면, 우경 군과 친구들의 신경은 유독 예민해졌다. 듣기와 말하기가 주된 영어 수업에서도 수업 흐름이 3~4번씩 끊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듣기평가가 있는 날에도 어김없이 블랙이글스가 뜨자, 영어 선생님은 결국 시험을 중단해야 했고 우경 군을 비롯한 학급 친구들은 같은 시험을 다음날 또 치러야 했다. 블랙이글스뿐 아니라 A-50 전투기, KA-1 전술통제기, 민간항공기 등 수십 대의 기체들이 상공을 활보하는 통에 인근 학교 학생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군소음보상법 피해 보상 범위엔 학생들이 포함돼 있지 않아 소음피해를 받아도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는 상태다. 이에 횡성군은 소음피해 지역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며 해당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막상 학생들에게 보상금을 준다 해도 이들의 고통이 해소될 수 있을까.
성인 1명이 받을 수 있는 보상액은 한 달 최대 6만 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가장 피해가 큰 1종 구역(95웨클 이상) 얘기고, 2종(90~94웨클)은 4만5000원, 3종(80~89웨클)은 3만 원으로 각각 책정됐다. 하루 평균 1000~2000원 꼴을 받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0월31일 오후 3시17분께 1종 지역 곡교리 마을 이장 유장열(65)씨에게 통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 톤은 유난히 높았다. 34초, 55초, 1분34초, 2분19초, 2분53초, 5분28초, 7분26초. 총 8분25초간의 전화 통화에서 군용기의 이착륙 ‘굉음’에 의해 7번씩이나 대화가 끊겼던 순간이다. “아우씨...군용기 소리 때문에...후...” 몹시 답답했는지 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는 한 달 6만 원으로 책정된 군소음보상금에서 30%를 깎인 채로 받는다며 쓰린 한숨을 내쉬었다. 곡교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군 제대 후 객지에서 몇 년 살다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처우를 받게 됐다. 보상금은 1989년 1월1일 이후 전입했으면 30%, 2011년 1월1일 이후 전입했으면 50%가 깎인다.
해당 지역 주민이면서도 타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거주지와 직장의 거리가 100km 이내면 30%, 초과하면 전액을 감액한다. 그는 보상금 몇 푼보다 제대로 된 방음시설이나 TV 시청료 면제, 전화통신비 지원 등 실질적인 지원을 마련해달라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현재까지 반영되진 못한 상태다.
‘탕’,‘탕’,‘탕’. 11월1일 오후 4시. 곡교리 건너편 마을 모평리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멧돼지가 출몰했나, 귀가 움찔움찔 거렸다. 모평리 어르신들은 새들이 기체 엔진에 들어가지 않도록 활주로 주변에서 공포탄을 쏘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쏴대는 총소리까지 들린다. 주민들의 심신은 나날이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막이 찢어지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스마트폰 앱으로 측정했을 땐, 최대 104데시벨(dB)까지 기록됐다. 이 정도면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맞먹는다. 동네 개 짖는 소리도 엔진 소음에 가볍게 잡아먹혔다.
갈풍리에서 만난 박관수(54)씨는 하루아침에 금쪽같은 송아지들을 땅에 묻어야 했다. 갓 태어났거나, 다른 지역에서 온 송아지들이 목숨을 잃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유산, 조산, 돌연사, 체중감량, 발작으로 인한 부상 등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3년 전부터 송아지 폐사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2019년엔 송아지 83두 중 7두를, 2020년엔 82두 중 9두를, 2021년엔 93두 중 6두, 올해엔 70두 중 6두를 땅속에 묻어야 했다.
농협중앙회 축산연구원의 한우번식우 사양관리 핸드북에 따르면 유·사산율은 5% 이내, 폐사율은 5% 이내가 가장 이상적인 사양관리 수치다. 그러나 그의 축사에선 유·사산율과 폐사율이 4년간 평균 약 9%에 달했다. 그는 직감했다. 블랙이글스 비행훈련 소음이 원인이라는 것을.
그는 자구책으로 블랙이글스 훈련 시간이 임박할 때면 자고 있는 어미 소를 깨워 소음충격을 줄이기도 했다. 송아지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군용기가 뜨면 큰소리를 내지르거나 수시로 라디오도 틀며 소음에 둔감하게 만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안타깝게도 소음으로 인한 폐사를 입증할 결정적 단서가 없어 피해지역 가축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81년 창설된 블랙이글스는 2007년 서울 에어쇼를 끝으로 원주(횡성)에서 활동하며 잠정적으로 해체됐지만, 2009년 9월 재창설되면서 광주 1전투비행단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광주 주민들과도 소음피해 갈등을 빚으면서 2010년 12월 원주(횡성)로 다시 이동배치 됐다.
블랙이글스가 지나간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상공에 거대한 하트가 그려질 때마다 가슴이 울화로 터질 것만 같았고, 태극기가 그려질 때마다 애향심은 바닥을 쳤다고. 그렇게 그 화려한 비행의 이면엔 매일 밤낮으로 고막을 찢는 고통에 시달린 주민들의 한(恨)이 가려져 있었다.
횡성=박하림 기자 hrp11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