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불경기에 이웃사랑 어쩌나…

연말, 불경기에 이웃사랑 어쩌나…

- 봉사도 후원도 크게 줄어
- 코로나 한숨돌리니 불경기 찾아와

기사승인 2022-12-26 05:00:02
'식사 기다리는 어르신들'
강추위가 온 몸을 꽁꽁 얼게한 22일, 점심 식사를 위해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프란치스꼬의 집을 찾은 어른신들이 봉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 ‘밥퍼’ 등 후원 감소로 성탄과 연말 선물 줄여
- 사랑의 온도탑도 ‘꽁꽁’

 한파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지난 22일 오전 동대문구 제기동 위치한 '프란치스꼬의 집'을 찾았다. 미사를 마친 자원봉사자들이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준비에 나섰다. 아직 배식시간(11시 반)이 30분이나 남았지만 멀리서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이 문밖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88년부터 천주교 수도원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프란치스꼬의 집은 무료급식을 하지 않는다. 이용객의 자존감을 위해 식사비 200원을 문을 열 당시부터 받고 있다. 봉사자들은 부지런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을 배식판에 넉넉히 담아 상을 차린다. 11시 반이 가까이 되자 어르신들은 주머니에서 동전 200원을 주섬주섬 꺼내 동전함에 넣고 입장한다. 배식판에는 맛난 생선조림과 싱싱한 무를 채썰어 양념에 버무린 무생채와 흰쌀밥과 된장국이 어르신들의 허기진 배를 자극한다. 너나 없이 입안에 밥과 반찬이 가득하다.


시설장 김수희 수사는 “새벽 3시부터 야채를 다듬고 다시마, 멸치로 국물을 우려낸 후 토종된장국을 끓이고 쌀을 씻어 밥을 짓는다”면서 “물론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피로가 풀린다."면서 밝게 웃는다. 
배식을 하던 한 자원봉사자는 "예수님이 보내신 귀한 손님들인데 당연히 정성껏 대접해야 한다."면서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저희 집을 찾아 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식사를 마친 한 어르신은 "내 집은 여기서 1시간 거리인데 운동삼아 걸어온다. 대부분 아침 저녁은 적게 먹고 여기서 점심을 든든히 먹는다. 밥도 넉넉히 상 한가운데 큰 그릇에 담아 더 주어서 눈치안보고 많이 먹는다. 배려해준 신부님과 봉사자들께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한다.

프란치스꼬의 집에서 식사를 마친 한 어르신은 "식사 후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커피도 한잔하고 집에 돌아가는게 하루의 큰 즐거움"이라며 "연말, 연초에는 특식도 나오고 선물도 준다. 하지만 올해는 경기가 안좋아서 나라가 걱정"이라고도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자원봉사자 한 분이 "기사를 쓰려면 여기 밥맛이 어떤지 식사를 하고 가셔야지요." 하면서 식사를 준비해 준다. 추운 날씨에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나서는 기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프란치스꼬의 집은 추운 날 밖에서 줄을 서 대기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식사 시간이 11시반부터 2시까지 넉넉하다.

이용객들이 밥퍼 무료급식소에 따뜻한 국과 밥을 먹으며 추위에 언 몸과 마음을 녹이고 있다.

다음 날(23일)은 청량리역 6번 출구를 나와서 작은 굴다리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무료 급식소를 찾았다. 다일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밥퍼’ 무료급식소이다. 이날도 500 여명의 이용객들은 한 끼를 든든히 해결했다.
찬바람이 부는 날 아침 일찍부터 서울과 수도권 각 곳에서 청량리 밥퍼를 찾아온다. 이들은 배가 고파서 오고, 외로워서 밥퍼를 찾아온다.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이거나 사회활동이 어려운 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추운 방에서 홀로 지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곳을 찾는다. 이들은 배고픈것도 참기 힘들지만 외로움은 더욱 참기 힘들다고 말한다.
밥퍼무료급식소 앞에 23일 점심을 먹기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밥퍼 무료급식소의 긴 줄을 통과해 실내로 들어오는 이용자들에게 식권과 같은 숟가락을 나눠주고 있던 임순옥 권사(63· 새은혜교회)는 “지난 10년간 일주일에 1~2번씩 밥퍼 봉사를 나오고 있지만 추운 날 찬바람 맞으며 줄 서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면서 “어르신들이 뜨끈한 국에 밥을 말아 배부르게 잘 먹었다”면서 환하게 웃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도 군포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왔다는 김 모(76) 씨는 “아침 8시에 출발해 11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먹고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빈 식판에 한번 밥을 받아 온다.
코로나가 극성이었던 2000년 3월 밥퍼를 취재하며 만난 이OO씨(67)와 장애가 있는 딸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지금도 이문동에 살고 있다는 모녀는 대부분의 끼니를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 씨는 “우리 모녀는 밥퍼가 아니면 살 수 없어요. 장애가 있는 딸을 모두 다 싫어해요. 밥퍼에 와야만 제대로 밥을 먹일 수 있어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밥퍼 자원봉사자들이 배식을 하고 있다. 밥퍼 측은 '과거 주말이면 적정 인원의 두 배가 넘는 60~80명이 봉사자가 찾아왔지만 요즘은 40명을 넘긴 날이 드물다.'고 말했다.

최 홍 다일복지재단 사무총장은 “매년 성탄절이 되면 노숙인들에게 점퍼와 장갑, 양말 등이 담긴 방한 키트를 배부했다. 하지만 24일 열린 길거리 성탄 예배는 기존 후원자들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후원을 크게 줄이거나 아예 못한 분들도 있다.”면서 “후원금이 상당량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선물보따리도 작아지고 수량도 줄여 전달했다.”고 말했다.
'연탄 나눔도 크게 줄어'
연탄 나눔도 코로나19 발병 이전인 2019년 9~11월 2305명에 이르렀던 연탄은행 봉사자 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 1498명, 경기가 급속히 침체된 올해는 992명으로 급속히 줄었다.
강남구 개포동 수정마을을 찾은 ㈜SR임직원 이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쿠키뉴스 DB)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등이 후원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개인 후원자나 기업, 공공기관 모두 ‘경기가 어렵다’ ‘직원 월급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말 미안하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전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불경기 여파로 자선단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모금 문화가 충분히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관보다는 민간이 주도하는 후원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 앞에 설치된 경기도 사랑의 온도탑이 26도를 나타내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 전국 주요도시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역시 경기침체로 기업과 개인의 기부 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어 목표액 달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 사랑의 온도탑 목표액은 4040억원이다.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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