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10년 전 “내가 누군지 좀 알아봐 미리”라고 랩을 하던 일곱 소년이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할 줄, 자신들조차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룹 방탄소년단이 13일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누군가에겐 기적 같은 시간, 다른 누군가에겐 피 땀 눈물로 채운 시간, 또 누군가에겐 “추운 겨울을 지나 다시 봄날”(노래 ‘봄날’ 가사)을 맞은 시간으로 기억될 지난 10년을 쿠키뉴스가 다시 짚어봤다. <편집자 주>
△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하다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이 포털사이트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0년. 방시혁 프로듀서가 방탄소년단 멤버를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당시만 해도 방탄소년단은 아이돌보단 힙합 그룹에 가까웠다. 힙합 크루 대남조선힙합협동조합 소속이던 RM이 일찌감치 멤버로 확정됐고, 광주에서 춤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제이홉도 같은 회사 연습생으로 있었다. 이후 공개 오디션을 통해 글로스란 예명으로 활동하던 슈가가 발탁되며 방탄소년단은 힙합 그룹이라는 색깔을 두껍게 했다. 이들이 아이돌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건 다른 네 멤버가 합세하면서부터다. 이듬해 건국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진, Mnet ‘슈퍼스타K3’ 예선에서 소속사 관계자 눈에 띈 정국, 친구를 따라 오디션을 봤다가 덜컥 합격한 뷔가 방탄소년단 멤버로 합류했고, 데뷔를 1년여 앞둔 때 부산예술고등학교 무용과에 수석 입학했던 지민이 마지막으로 발탁되면서 방탄소년단은 지금의 7인 체제를 완성했다.
△ 첫 트로피를 손에 쥐다
데뷔 초 선보인 학교 3부작 음반으로 사회와 10대의 불화를 노래한 방탄소년단은 20대로 건너가 청춘의 아픔과 성장을 표현한 ‘화양연화’ 시리즈를 발표하며 같은 세대 청년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주목받았다. 그중 ‘화양연화’ 시리즈 첫 편의 타이틀곡인 ‘아이 니드 유’(I NEED YOU)는 KBS2 ‘뮤직뱅크’ 등 순위제 음악방송에서 방탄소년단에게 첫 1위 트로피를 안겨줘 의미가 깊다. 청춘을 푸르르고 아름다운 시기가 아닌, 불안과 욕망으로 방황하는 격동기로 조명한 이 시리즈는 방탄소년단을 미국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에 데려가며 훗날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하는 발판 역할을 했다. 한국에선 2016년 열린 멜론뮤직어워즈에서 방탄소년단에게 첫 대상 트로피를 쥐어 주기도 했다. 한편, ‘화양연화’는 K팝 시장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제작사가 기획한 기존의 판타지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가수의 자의식과 서사성이 두드러진 연작 음반의 부흥을 알렸다.
△ 미국 시상식에 강제 진출하다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2017년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세계적인 듀오 체인스모커스는 방탄소년단을 이렇게 소개했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TV 방송에 출연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지만 반응은 이미 뜨거웠다. 앞선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꺾고 톱 소셜 아티스트를 수상한 뒤 “K팝 전체의 승리”(영국 BBC)라고 평가받았던 방탄소년단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세계가 주목한 방탄소년단의 미국 시상식 데뷔는 이후 쓰일 역사의 서막에 불과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까지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6년 연속,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5년 연속 수상했다. 2021년엔 아시아 가수 최초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가운데 남은 것은 이제 그래미 어워즈뿐. 방탄소년단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그래미 어워즈에 후보로 지명되며 수상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 고지를 밟다
2020년 세계를 덮친 감염병은 주어진 일상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방탄소년단도 그랬다. 계획했던 월드투어를 취소하고 준비하던 음반도 대폭 수정했다. 이 시기 발매한 ‘다이너마이트’와 ‘버터’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RM, ‘버터’ 발매 기념 기자회견)를 고민한 끝에 내놓은 답안지다. 방탄소년단은 두 곡으로 미국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정상에 올랐다.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이었다.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와 해외 팬들이 이해하기 쉬운 영어 가사, 공격적인 미국 프로모션이 모터를 달아줬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힘은 두 곡에 담긴 ‘방탄소년단스러움’에서 나왔다. 재난이 가져온 단절을 초연결로 극복하는 자세와 익숙해진 절망에 희망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방탄소년단이 데뷔 9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6월 발매한 신보 제목은 ‘옛 투 컴’(Yet To Come). 이들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 ‘최고의 순간’은 어쩌면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이 아닌, “너와 함께하는 청춘”(신곡 ‘테이크 투’ 가사)인지도 모른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