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엔데믹에 들어섰지만 백화점 노동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특히 백화점 내 입점업체 직원들은 백화점 본사나 브랜드 원청업체 중 어느 한 곳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근무 환경과 불안정한 고용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아울러 기본적인 노동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등 근로기준법 상 법적 사각지대에도 노출돼 있다.
불안한 노동 현실에 내몰린 협력업체 노동자들, 이들을 위한 개선 방안은 없는 걸까.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Q. 백화점 판매 직원들은 노동 시간과 휴식 등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현장 실태는 어떠한가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건을 거기에 맞출 수 밖에 없다. 휴일도 백화점 본사는 토요일에 다 쉬지만 매장은 상시 열려져 있다.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 다같이 쉬는 날도 없다는 거다. 예를 들어 샤넬 매장에서 일할 때 본사 체육대회 한 번을 못 한다. 다 같이 쉬는 날이 하루도 없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이 1500명 정도 되는데 다 뿔뿔이 흩어져 있고 주중에 다른 날로 선점해서 쉬긴 하지만 그 패턴도 되게 불규칙하다. 이번 주는 화,목이면 다음 주는 토,월 이렇게 바뀐다. 또 여러 가지 이슈로 인해서 계속 변경되기도 한다.
상시 근무이기 때문에 펑크가 나면 대체 인원이 들어와야 된다. 그럼 휴무자가 대기하고 있다가 나오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Q. 원청이 아닌 입점 협력사 직원들은 본사로부터 보호장치도 없어 어려움이 더 많을 것 같다
영업 시간이나 영업 정책은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한다. 거기에 무수히 많은 업체와 노동자들이 다 맞춰서 해야 되는 거다. 본사 측에 “이런 점을 개선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백화점에선 우리 직원이 아닌데 근로 조건을 개선해 줄 이유가 없다며 그건 “권리 남용”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시설 문제다. 시설은 알다시피 본청 직원들은 굉장히 소수이고 입점업체가 훨씬 많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만 해놓고 있다.
Q. 롯데백화점은 본점 직영 고용인원 비율은 8%로, 나머지 92%의 직원들은 입점업체 또는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다. 이처럼 백화점 직고용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백화점 내 입점된 브랜드가 굉장히 많다. 입점된 브랜드 직원들이 사실상 일을 하는 구조고, 백화점에 직고용된 사람들은 예를 들어 캐셔하시는 분들이나 사무직이 중심이다. 고객 센터라든지 나머지의 경우 판매 입점업체 브랜드에 있는 직원들이 근무를 한다. 경비나 주차, 청소, 시설, 안내 등은 거의 다 도급업체 소속이다. 과거 원래 직고용 형태였으나 IMF 이후로 상황이 어려워져 영업시간도 뒤로 밀리게 됐다. 매월 매주 한 번씩 쉬는 것도 없어졌다. 잠시 이렇게 간다고 했는데 굳어지면서 바뀌지 않는 현실이 됐다. 그 무렵 이후로부터 계속 직원 수도 줄여오고 있다.
Q. 백화점 직고용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심지어 이런 사건도 있었다. 예전에 백화점에 가면 ‘안내 데스크’라고 정문 앞에 여성분들이 서서 고객 안내를 하는데 이제 도급이 되면서 직원들이 다 사라지게 됐다. 그래서 1층 화장품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아침에 오픈할 때 나오라고 해서 인사를 하라고 시키기도 했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그때 문제 제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Q. 입점 협력사 직원들은 불안한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다. 무노조 사업장일수록 법적 사각지대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지 않나
맞다. 법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으니까 더 그렇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이거다. 단순히 노동조합이 있고 없고의 양극화가 아니라 이중 구조 문제인 것이다.
이익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익은 결국 백화점이 취하고 그럼에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다. 8%의 본청 직원만 책임지면 되는 구조다. 나머지 92%는 사실 브랜드에 소속돼 있는 사람들이라 책임 소재는 없다며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입점 브랜드별로 근무형태도 다양하고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노조와 무노조는 고용 형태부터 차이가 난다.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비정규직이 많고 어떤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 처우를 들여다봐도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서 고지할 의무라든가 이런 것들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Q. 임금 문제와 고용불안도 큰 문제다. 고용 안정화를 위해 그간 어떤 노력들을 해왔고,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나
노조 출범한 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용 형태를 안정화 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 임금 조건이나 고용 형태도 있지만 작년, 재작년부터 계속 고용 안정을 주장하는 이유는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오프라인 입지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결국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오프라인 시장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온라인 사업이 적은 비용을 들여 고수익을 낼 수 있다 보니 온라인 전환에 나서는 추세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입점 브랜드들도 온라인을 강화하면 결국 고객들의 온라인 구매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고 사실상 오프라인 시장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향후 온라인 사업이 안정세에 들어서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입점 브랜드 철수 등으로 고용 불안에 놓이게 될 것이다.
Q. 협력업체 직원들은 연차나 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상시적으로 업무 연락을 받는다고 들었다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올해 백화점면세점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퇴근 혹은 휴일, 휴가 기간 SNS 등으로 연락받은 경험은 절반 가량이 넘었다.
백화점은 거의 쉬는 날이 없는데 한 달에 한 번 문을 닫는 날 빼고는 다 열려 있다. 그럼 협력업체 직원들은 끊임없이 연락을 받는다. 고객, 관리자 등과 항상 연결돼 있어 업무 지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같이 쉬는 날이 정말 절실하다.
Q.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VIP 고객만 초청해 비공식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날은 롯데백화점 정기휴점일이었다. 내부 반발이 심해 논란이 됐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쉬는 건 약속이다. 월요일 정기 휴일을 해서 문을 닫고 쉰다고 정한 것. 쉬는 날마저도 vip를 초청해서 장사를 하겠다는 건데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무조건 갈 수 밖에 없다. 하루 모처럼 휴일을 지켜줘야지 왜 쉬는 날 행사를 하냐 이거다.
그래서 노동자의 휴식권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하고 철회하라고 한 건데 롯데에선 “나오라고 한 적 없다. 나왔으면 다른 날 쉬면 되지 않냐”고 반박하고 있다. 다른날 쉬는 게 아니라 다같이 쉬는 날을 이야기하는 거다. 지난달 인천 뿐만이 아니라 코로나 이전에도 이같은 사례가 몇 번 있었다.
Q. 입점업체의 표준 가이드라인과 내부적인 지침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어떤 부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백화점은 유통 재벌 기업이다. 롯데, 신세계, 현대 다 그들의 일방적인 경영권만 보호받는 것 같다. 일방적인 경영 정책 등으로 연결돼 있는 작은 기업들도 많고 거기에 소속된 노동자들도 너무 많은데 그들의 휴식권과 건강권 등은 침해되고 있다. 보호받아야 된다고 하는데 법의 안전 체계도 없다.
이런 이중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방치돼 있다. 적어도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교섭 구조나 3자 협의체라도 만들어서 모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찾는 대화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백화점은 지금이라도 사회적 기업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된다.
마찬가지로 정부에서도 이런 실태들을 좀 들여다보고 이중 구조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진짜 고용과 노동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심 역할을 해줘야 될 것이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