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끝자락, 금천구 시흥동 SK 박미주유소에겐 이름이 하나 더 있다. ‘국내 1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이다. 28일 기자가 주유소에 들어서자, 이름처럼 ‘Energy Super Station’이라고 쓰인 큰 벽이 보였다. 외관상으론 크기나 모습 등 다른 주유소와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왜 ‘슈퍼 에너지’란 이름이 붙었을까.
박미주유소는 원래 휘발유와 경유를 넣는 평범한 주유소였다. 그러나 지난 2021년 5월 SK에너지가 300kWh짜리 연료전지(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와 태양광 발전기를 주유소 내에 설치했다. 에너지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만들기까지 하는 장소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에너지를 직접 만들어 주유소 내 전기차 충전에 사용할 수 있다.
연료전지는 박미주유소 옥상에 있었다. 28일 기자가 방문한 박미주유소 옥상에는 냉장고 크기만 한 연료전지 7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연료전지는 옆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건너편엔 태양광 패널이 깔려 있었다. 분명 발전소였다. 흔히 상상하는 콘크리트로 단단히 굳어진 거대한 원전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전까지는 주유소 내에 에너지 연료전지를 설치할 수 없었다. 전기사업법상 발전 사업자가 전기 판매업을 겸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미주유소를 포함한 SK 세 개 주유소만이 샌드박스 규제를 통해 임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일 소방청이 주유소에 설치 가능한 설비로 ‘발전용 수소연료전지’를 추가하는 내용의 위험물안전관리 세부기준을 시행하면서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의 전국 확대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SK는 2025년까지 전국 SK주유소 내 2000곳에 연료전지를 설치해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확장해 갈 계획이다.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은 분산에너지 발전소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 한국은 도시별 전력자립률이 경기(61.6%), 서울(11.2%), 대전(1.8%) 등으로 낮은 편이다. 발전소를 설치할 만한 면적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연료전지는 동일 용량을 설치 기준 태양광 패널 대비 설치 면적이 1/40수준으로 협소한 공간 활용에 매우 효율적이다.
또 연료전지는 다른 발전원 대비 대기오염 무릴 배출이 적다. 도시 내에서 주변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발전원이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도 박미주유소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을 방문했다. 황수성 산업부 산업기반실장은 옥상에 놓인 연료전지를 살피고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달성을 위한 친환경에너지 활성화의 제도적 기반이 조기 마련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적으로도 분산형 전원 활성화, 전력 수급 안정성 제고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산업부와 소방청이 꾸준히 협의해서 규제 개선까지 끌어낸 만큼, 정부도 이 사업이 SK 관할 주유소뿐아니라 1만개가 넘는 전국 주유소로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동종 정유업계에선 아직까진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심갖지 않는 상황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은 사업이라 추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분산에너지 발전소 사업이 극초기 단계인 만큼, 슈퍼스테이션 확대 여부는 SK의 성과에 기댈 것으로 보인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은 “SK가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낸 선례가 생기면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정책 마련, 상업성을 높여주는 규제개선 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