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정신질환 환자를 둔 가족들은 힘이 듭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원해도 법체계 안에서는 보호자, 의료 전문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5년째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멉니다.”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당한 서현역 사건 피의자의 경우 2015년 정신과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으나 3년 전 치료를 스스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에서도 조현병이 불거졌다. 범행 이전에 가족이 조현병을 앓는 피의자의 입원치료를 시도했지만 제도에 가로막혀 치료를 받지 못했다.
중증 정신질환 입원치료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은 2017년 5월 정착된 ‘정신건강복지법’ 이후부터다. 이전 ‘정신보건법’을 통해서는 환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자 2명과 전문의 1명이 동의하면 보호입원(강제입원)이 가능했다. 정부는 이 같은 제도가 악용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2명 이상의 보호의무자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보호입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정 입원을 진행하거나 경찰이 응급 입원시킬 수도 있지만 소송 등의 이유로 활발히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이화영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순천향대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8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신건강복지법 제정은 의료 전문가와 논의 없이 이뤄진 만큼 이로 인한 파장을 예상하고 있었다. 자·타해 가능성이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처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이라며 “학회는 2019년부터 개정을 요구해왔지만 법안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과 다름없다보니 5년째 정부도 답변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는 일본에서 시작됐는데, 정작 일본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20여년 전 폐지했다. 1980년대처럼 강제로 환자를 수용하던 시절은 끝났고 의료의 질도 높아졌지만 입원 환경은 개선된 게 없다”며 “현행 시스템 속에서 보호자는 환자의 입원 치료는커녕 외래 진료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환자를 이끌어가야 할 보호자들의 책임감과 부담감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한국정신장애인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을 계기로 2019년부터 중증 정신질환 치료 체계를 보완하기 위한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소송은 진주 방화사건 당시 사망한 피해자의 가족도 함께했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은 “정신질환자의 응급 입원 사례 가운데 경찰과 구급대원을 통한 입원은 전체의 16.2%에 불과하다. 대부분 가족이 감당하고 있다”며 “소송의 목적은 현행법에서 응급·행정 입원이 제대로 작동하고, 최소한 공공의 이송 책임만이라도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비자의 입원’을 국가와 사회가 결정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즉,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로 바꿔가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의학회는 판사가 입원보호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도’ 또는 정신건강심판위원회를 구성해 다수결로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심판입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각 지자체가 담당자를 지정해 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신속한 이송·입원을 지원하고, 주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정신응급 환자 치료를 위해서는 인프라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신질환 진료 관련 수가는 40년째 제자리다. 급성기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인력과 의료서비스를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비현실적인 수가 시스템이다. 급성기 정신질환을 담당하려는 병원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라면서 “대학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들은 예산이 없어 급성기 환자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치료를 중단하면 재발 가능성이 높으니 의무적으로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현병 환자 중에는 급여 환자가 많은데, 현재 보험 환자와 지원 금액이 달라 치료비 부담이 큰 경우가 많다. 외래지원제도가 시행돼야 한다”며 “전반적으로 필수적인 여건과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복지부는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신질환자의 입원과 치료를 지원하는 제도를 추진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8일 쿠키뉴스에 “아직 TF 구성에 대해 논의하는 단계”라며 “의료계 참여 여부 등도 정해진 게 없다”라고 밝혔다. 복지부와 함께 법무부도 ‘사법 입원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사법 입원제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때 준사법기관이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