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

반 고흐가 그린 조셉 룰랭의 가족의 초상화 2

입력 2023-12-28 09: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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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
마담 오거스틴 룰랭과 아기 마르셀, 1888. 8~9, 필리델피아 아트 뮤지

조셉 룰랭((Joseph Roulin, 1841~1903) 가족을 그린 빈센트의 초상화는 그가 그린 가장 아름다운 작품군(群)에 속한다.

룰랭의 가족은 당시 모두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와 친구가 되는 걸 반대했던 아를에서 그에게 가족의 사랑과 친절을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해바라기를 칠했던 밝고 노란 배경은 사랑스러운 아기와 엄마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의 강보에 쌓인 마르셀을 자랑스럽게 보는 어머니의 행복한 마음이 전달된다. 빈센트가 그린 초상화 중 룰랭 부인을 모델로 한 초상화가 8점으로 가장 많다.

빈센트는 첫아들이 아닌 둘째로 태어났다. 장남이 죽자 그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가족들은 모여 죽은 형을 위한 기도를 했으며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는 빈센트를 한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상하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아기를 돌보는 룰랭 부인의 모습을 애정 어린 필치로 화폭에 담았다. 빈센트는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을 할 때 말고는 이 주일 동안 말을 한마디도 안 한 적도 있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화구를 사고 나면 언제나 제대로 된 음식을 사먹을 돈이 부족했다. 그런 그에게 룰랭 부인이 차려주는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은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
마르셀 룰랭의 초상, 1888년 12월, 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 미술관 

이 작품은 젖 살이 포동포동 오른 갓난 아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그림이다.

1888년 5월 빈센트는 테오의 부인 요한나에게 마르셀의 초상화를 보냈다.

임신 중인 요한나는 빈센트가 나중에 태어날 조카에게 ‘마르셀의 초상화’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그림은 영원히 그려지지 못했다.

“아기의 크고 파란 눈, 작고 예쁜 손, 둥근 뺨을 식탁의 내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걸어 두었답니다” 라고 요한나는 빈세트에게 편지를 썼다. 요한나는 마르셀의 그림을 보며 태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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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 우체부의 아들(카미유 룰랭), 1888, 캔버스에 유채, 상파울루 미술관

부드럽고 활달한 소년의 얼굴을 한 11살의 카미유를 그린 이 작품은 필자가 처음 만난 룰랭 가족의 초상화이다. 주황과 빨간색의 바탕에 초록색이 칠해진 푸른색 놀이옷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 카미유는 빈센트의 의자에 앉아 있다. 한창 개구쟁이인 얼굴과 손가락의 근육과 마디가 거칠게 표현되었다.

이후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빈센트의 묘사이다. 배경에 쓰인 붉은색과 주황색 그리고 놀이옷의 푸른색이 얼굴과 손 그리고 의자에 표현되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1901년부터 1905년 사이에 파리에서 열린 반 고흐, 고갱, 세잔의 회고전은 화가들이 이탈리아의 고전주의 회화에서 급진적으로 방향을 틀게 용기를 주었다.

야수주의(野獸主義, Fauvisme)의 화가인 블라맹크는 반 고흐의 회고전을 보고 난 뒤 “너무 큰 감명을 받은 나는 기쁨과 절망감 때문에 울 뻔했다. 그날부터 난 반 고흐를 나의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반 고흐의 화풍은 야수주의 화가들이 자연의 재현과 모방으로부터 색채가 해방되도록 만들었다.

1905년 파리에서 야수주의 전시회가 열린 시점은 미술사에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다.

왜냐하면 이후 예술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마티스. 블라맹크, 드랭, 뒤피, 브라크 같은 화가로 대표되는 야수주의는 20세기를 여는 주류적인 아방가르드 사조이며,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때까지 하늘은 푸른색이었고 나무는 초록색이라는 등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야수주의자들에 의해 하늘은 겨자색으로, 나무는 붉은색으로 칠해졌다.

야수주의라는 명칭은 ‘광란하는 미치광이 또는 물감을 가지고 장난치던 아이가 마음껏 그려놓은 그림’이라는 루이 복셀(Louis Vauxcelles)의 혹평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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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검은 고양이를 안은 마르그리트, 1910, 캔버스에 유체, 조르주 퐁피두 센터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자신의 딸 마르그리트를 그린 이 초상화를 보면 빈센트가 어떻게 야수주의 화가들에게 과감한 색채 사용에 대한 터부를 없애주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그림을 빈센트의 ‘어린 학생, 우체부의 아들’과 대조해 보면, 이 그림의 배경과 얼굴 그리고 옷의 표현이 빈센트의 화풍으로 그린 것임을 볼 수 있다.

화가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나갈 때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대상은 바로 동료 화가들이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도 1908년 큐비즘의 시작을 알리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1906년부터 1년 동안 그리며 이런 저런 모색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1905년의 마티스도 마찬가지였다.

파리의 3대 미술관을 꼽는다면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조르주 퐁피두 센터를 뽑는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고대부터 1850년까지의 고전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고, 오르세 미술관은 1848년부터 일차세계대전 전인 1914년까지의 작품을 소장, 전시하며, 조르주 퐁피두 센터는 1914년 이후의 현대 미술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전시함으로써 3대 미술관이 각각의 특색을 시대적으로 나누어 나타낸다.

그러나 1905년은 파리에서 야수주의 작품 전시회가 열린 중대한 전환점이므로 오르세와 퐁피두센터에는 야수주의 작품들이 중복적으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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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룰랭의 초상화, 1888, 반 고흐 미술관

11살의 카미유는 죠셉 룰랭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그의 가족이 아를에서 마르세유로 이사를 간 뒤 아버지 편지를 대필하여 빈센트에게 보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당신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냅니다. 또 마르셀이 편지를 쓰는 카미유처럼 당신에게 큰 키스를 보냅니다.” 카미유는 아버지보다 철자를 정확하게 쓸 줄 알았다.

파란 모자의 쏟아져 내리는 긴 색선과 올리브그린으로 칠한 외투를 입은 카미유 룰랭의 초상화는 회오리 치는 터치의 붓자국이 율동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맑고 투명한 눈동자만은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담고 빛나고 있다.

빈센트는 다양한 시도를 하며 색채와 표현 기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
아르망 룰랭의 초상화, 1888년 8~9월, 66x55cm, 에센 폴크방 미술관

초상의 배경에는 아르망의 진중함을 상징하는 듯한 푸른빛이 도는 초록색을 썼다. 매력적인 노란색 자켓은 파란색으로 테두리를 둘렀으며 검은 조끼와 하얀색 스카프를 둘렀다.

화가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껏 멋을 부려 쓴 모자는 아를 거리에서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반항기 가득한 청년의 모습이다. 푸릇푸릇 자라난 앳된 수염이 10대의 반항기를 누그러트린다.

룰랭의 큰아들 아르망은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 2017’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는 세계 최초로 손으로 그린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란 점과 125명의 화가들이 동원되어 10년간에 걸쳐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해 냈기 때문이었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
아르망 룰랭, 1888년 11월, 65.5x54.3cm, 캔버스에 유채, 아츠 데포 보이스 판 뵈닝언(Arts De Pot Boijmans van Beuningen) 로테르담

순박한 소년에서 이제 청년으로 변해가는 사춘기와 청년기의 불안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16살의 잘 생긴 아르망이다. 친구들과 한창 어울려 다니고 싶은데 붙잡혀 모델을 서는 게 불만인 듯 뚱한 표정이다.

빈센트는 소박한 사람들이 더욱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을 신성한 손길로 쓰다듬고 싶다”라고 고백했다.

빈센트는 자신을 초상화가라고 자처했다. 빈센트가 그린 룰랭 가족이나 지인들의 초상화를 바라보면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자식처럼 생각했던 화가의 그림답게 그의 작품에서는 부모의 마음처럼 애정 어린 필치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빈센트는 룰랭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모습에 위로 받았다. 그는 언제나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고독과 싸워야 했기에 소박한 룰랭 가족의 친절과 환대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룰랭 가족이 마르세유로 이사를 간 뒤에는 빈센트는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그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다. 정에 굶주린 빈센트에게 다정한 룰랭 가족은 완벽한 사랑이었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