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짓값 하락에 추위까지…폐지 노인들에게 필요한 건

폐짓값 하락에 추위까지…폐지 노인들에게 필요한 건

기사승인 2024-01-16 14:00:03
지난 11일 오후 서울 홍제동 인근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리어카에 가득 실은 채 도로를 건너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아직 동이 트지 않은 12일 오전 6시, 허리가 휜 노인들이 각자 리어카를 끌고 서울 홍제동 한 고물상을 찾아왔다. 1시간 동안 이곳을 찾아온 이들은 6~7명쯤. 노인들은 리어카를 끌고 7차선 도로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고물상으로 한 명씩 들어갔다. 리어카마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폐지가 실려 있었다.

폐지 가격이 점점 하락하는 상황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의 건강과 생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유도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참여 의향이 없는 노인들이 대다수다.

매일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 수는 전국 4만2000여명.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28일 발표한 ‘2023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 76세 노인들은 하루 평균 5.4시간씩 주 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를 꼬박 모은 폐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달 평균 15만9000원으로 하루 평균 수입은 6225원이다. 시간당 수입은 1226원으로 최저임금의 13% 수준이다. ‘75세 이상’의 비율이 57.8%로 가장 높았다.

최근 물가가 오르면서 폐지 단가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폐지 1㎏당 가격은 한국환경공단 집계 기준 74원이다. 이는 2017년(144원)의 절반 정도고, 2022년(84원) 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리어카 가득 100㎏를 채워도 8000원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날 새벽 고물상 앞에서 만난 황형선(78)씨가 리어카에 실어 온 폐지는 약 150㎏로, 이날 번 돈은 5000원 정도다. 황씨는 “요즘 폐지 가격이 절반도 넘게 떨어졌다”며 “겨울은 여름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적어서 그나마 낫다. 그래도 힘든 일에 비해 돈이 너무 적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 대부분 다른 노인들에 비해 건강도 열악한 상태다. 3년째 폐지를 수집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김모(79)씨는 다리와 허리가 안 좋아 절뚝거리며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 중 스스로 건강하다고 인지하는 비율은 21.4%였다. 전체 노인 중 스스로 건강하다고 인지하는 비율(56.9%)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홍제동 한 고물상 앞에 폐지를 담은 리어카가 줄지어 서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폐지 수집 노인 문제, 일자리 복지로 풀어야

보건복지부는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인 일자리 사업 연계 등 지원 대책을 공개했다. 폐지 수집 노인의 인적 사항을 확보한 뒤 노인 일자리 사업을 소개해 연계하는 내용이다. 정부 차원에서 폐지 수집 노인을 위한 지원책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폐지 수집 노인들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적다는 점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57.7%로 과반이었다. 고물상 앞에서 만난 황씨는 “80살이 다 돼가는데, 기술도 없고 내 직업으로는 (폐지 수집이) 최고다”라고 말했다. 10년간 폐지 수집을 하던 남편이 쓰러지자 직접 리어카 손잡이를 잡았다는 김씨도 “다른 일을 소개해준다고 해도 집에 환자가 있어서 할 수 없다”며 “폐지 수집도 오후 4시부터 9시까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노인들에게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로 소개받고 나와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무기력하다”며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것이 아니다. 이들이 일자리에 자부심을 갖고 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다른 일자리와 연계가 되면 소득이 높아질 텐데, 그럼에도 참여하지 않는 건 일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긍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교육을 강화하고 교육 기간 동안 소득을 보장해 줘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 경제연구소장도 폐지 가격 인상 대신 노인 복지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 소장은 “폐지는 재지회사의 원료기에 기본적으로 시장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영향으로 가격이 떨어진 것”이라며 “폐지 수집 노인 생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노인 복지 관점에서 어떻게 구제할 건지 접근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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