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처리 마감…‘전공의 공백’ 계속된다

사직처리 마감…‘전공의 공백’ 계속된다

기사승인 2024-07-16 06:00:13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정부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사직 처리 기한이 지났지만 수련병원으로 복귀한 전공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공의 1만여명이 자동 사직 처리되면서 반년 가까이 이어지는 대형병원 의료공백의 장기화는 불가피해졌다.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은 ‘전공의 없는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들에게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15일까지 복귀와 사직 중 결정해 달라. 거취를 밝히지 않는 경우 사직 처리하겠다”고 공지했지만, 대다수의 전공의가 의사표현을 하지 않은 채 사직 처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에 출근한 전공의는 전체 1만3756명 중 1111명(복귀율 8.1%)으로 집계됐다.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전공의 2442명 중 출근자는 164명(복귀율 6.7%)에 불과하다.

전공의 복귀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정부의 수련병원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복지부는 전날까지 전공의들의 복귀 혹은 사직을 처리해 부족한 전공의 인원을 확정하고, 17일까지 복지부 장관 직속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신청하라는 공문을 각 수련병원에 보냈다. 해당 공문에는 전공의 결원 확정과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 신청을 기한 내 이행하지 않는 수련병원에 대해선 내년도 전공의 정원 감원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수련병원들은 오는 9월 전공의 결원 충원과 내년 3월 모집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피부과, 성형외과 등 인기과 위주로 전공의들이 다소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은 나오지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과는 복귀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전공의 사직서 수리 시점은 6월4일 이후임을 강조하며, 9월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지 않는 전공의는 내년 3월 복귀가 불가하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행정처분 철회, 복귀 전공의 수련 특례 적용 등으론 전공의들의 복귀를 이끌어내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이미 몇 달 전부터 한국 의료는 최소 5년에서 10년 전으로 후퇴했다. 지금까지 겨우겨우 버텨왔지만 이제 병원 집행부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았다고 걱정한다”며 “병원은 무너져가고, 환자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며, 교수들은 지쳐가는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양윤선홀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께 드리는 의견’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대현 기자

이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것은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정책 추진 강행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고, 그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라며 “저들의 절망은 여전한데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만으로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 애초에 이들이 왜 사직서를 냈는지 그 이유부터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복귀는 요원하고, 상급종합병원이 누적 적자에 시달리며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가운데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등 의료개혁이 성공할지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이어진다. 정부는 서울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을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 규모를 조정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책은 2019년에도 나왔고, 2021년에도 나왔다. 관련 시범사업들을 시행한 시점은 그나마 전공의들이 있었고,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던 때”라며 “상급종합병원 진료 규모의 33%를 차지하는 경증 환자를 1·2차 병원으로 보내면 수익이 감소할 텐데, 이를 중증진료 수가 개선만으로 보전하긴 어렵다”고 짚었다.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교수들은 “대한민국 의료가 붕괴하고 있다”며 환자 피해를 막기 위해선 진료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미 세브란스병원 등 연세의료원 산하 병원들, 고대안암병원 등 고려대의료원 산하 병원들, 국립암센터 등이 진료 축소에 들어간 상태다.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 소아응급의학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진료지원(PA) 간호사 등 대체 인력으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지금 남아있는 인력 중에도 번아웃 된 사람이 많아서 의료공백 상황이 계속된다면 병원을 축소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내년 인턴, 전문의,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등 인력 수급 차질은 불가피하다. A교수는 “‘전공의가 돌아올까’, ‘내년에는 지원할까’ 등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미 한국 의료는 무너졌다고 본다”면서 “내년엔 전공의도 없지만 전문의, 공보의 등 인력 역시 공급되지 않을 수 있고, 수련교육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며 의료의 질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꼬집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