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과 전문의로 ‘응급실 공백’ 막는다?…“현장 모르는 발상”

타과 전문의로 ‘응급실 공백’ 막는다?…“현장 모르는 발상”

기사승인 2024-07-21 17:59:36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응급의료센터로 옮기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가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며 의료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24시간 돌아가야 할 응급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후 공백을 메워온 전문의들은 격무를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이탈하고 있다. 응급의료 담당기관 중 최상위에 속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들까지 이용을 제한하며 빨간불을 켰지만 정부는 다른 진료과의 인력을 대신 투입하는 방안을 제시할 뿐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 현장 최전선인 응급실의 파행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권역별 응급의료의 마지노선이라고 일컫는 전국 44개 권역응급의료센터들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에 따르면 대다수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일부 진료 불가능 상태에 처했다.

충남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순천향대천안병원 응급실은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집단 사직으로 축소 운영에 들어갔다. 이 병원은 8명이 교대로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해왔는데 전문의들이 병원 측과 처우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절반이 이탈해 4명만 남았다. 전공의 사직 이전엔 18명의 의사가 응급실을 지켰다. 순천향대천안병원은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과계, 내과계 보직 교수들이 2명씩 당직을 이어가도록 했다. 또 지난 20일부터 순천향대중앙의료원 산하 서울·부천·구미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를 각각 1명씩 파견해 진료를 돕도록 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은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을 통해 인력 공백으로 인해 환자 수용과 진료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서울 한양대병원은 지난 14일 인력 부재로 정신건강의학과 입원환자와 중증외상환자 수용이 불가능하고, 소아신경분과 환자 진료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알렸다. 이대목동병원은 16일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정신과 진료가 안 된다고 공지했다.

경기도에선 분당서울대병원이 17일 성형외과 수부 질환과 손상 진료, 단순 열상 환자 봉합, 서혜부 탈장 외과 진료, 정신과 입원환자 수용, 정형외과 응급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인천에선 가천대길병원이 16일 성형외과 안면 단순 열상 봉합, 흉부외과 환자 수용, 수부·전완부 진료, 안과 응급수술, 사지접합 수술이 제한된다고 통지했다.

비수도권 권역응급의료센터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강원도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 지난 19일 인력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제한한다고 전했고, 강릉아산병원은 담낭담관질환, 대동맥 복부·흉부 응급진료, 산부인과 응급수술, 분만 등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경북에선 경북대병원이 정신과, 위장관외과, 소청과 의료진 부재로 응급진료가 안 된다고 알렸다. 부산에서도 동아대병원이 18일 소아 약물중독·신경·혈액종양·신장 진료를 중단했고, 19일엔 응급실환자 포화로 모든 환자 수용이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두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NMC)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중 1명이 이달 말 퇴사를 앞두고 있다. NMC는 지난 3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NMC는 즉시 충원을 위한 모집에 나섰지만 지원율은 저조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응급의료센터의 파행 운영이 계속되자 정부는 “응급의학과 외에 다른 전문 진료과목의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현장을 모르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현장에서 이미 다른 과목 전문의가 많이 투입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응급환자의 경우 응급처치를 시행할 때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면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에 한계가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전국 응급의료기관 400여곳에서 응급의학과 외 전문의가 800~900명 정도 일하고 있다”며 “응급의학과 의사가 없어서 다른 진료과 전문의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현장 상황을 모르고 내놓은 무책임한 정책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근본적 대책 없는 인력 돌려막기로는 의료 공백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지방 응급의료센터 인력 유출은 앞으로 더 심화될 테고, 이들이 처우와 환경이 좋은 수도권 대도시로 이동하면 지역 응급의료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강원지역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의 A교수는 “다른 필수진료과 전문의도 사직하는 마당에 외래·입원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응급실 콜까지 받으라는 것은 불가능한 소리”라며 “응급의학과 의사가 그만둔다고 해서 땜질식으로 다른 진료과 의사를 배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단체는 응급의료 지원을 강화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가 응급의료체계는 반드시 유지돼야 하는 만큼 응급의료 현장을 지켜내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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