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스타人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오

기사승인 2016-11-23 16: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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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e스포츠 종목으로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국내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종국에 치닫고 있다. 지난달 한국e스포츠협회가 프로리그 유지를 공식 포기하자 동시다발적으로 기업 스폰서들이 팀 해체를 선언했다. 아직 국내에는 GSL(Global Starcraft League), SSL(Spotv Starcraft League) 같은 굵직한 대회가 남아있지만 이들 또한 안개속이다. 협회가 스타2에 손을 뗀 상황에서 강한 영향 하에 있는 SSL 또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가 GSL 대회를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TV는 선수들과의 계약 종료로 팀 해단 수순을 밟고 있다. 당장 스타2 종목은 대회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프로선수 ‘보존’을 고민해야 하는 형국이다.

해가 지기에는 창창한 종주국의 위상

스타크래프트2 국제대회인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WSC)’는 여지없이 한국인의 잔치였다. 지난 6일 새벽(한국시간) 진행된 WCS 글로벌 플레이오프 파이널 준결승에 미콜라이 오고노프스키(폴란드)가 가까스로 이름을 올렸지만, 박령우(Dark)에게 0대3으로 완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결승전은 한국인 맞대결이 성사됐고, 우승은 GSL 디펜딩 챔피언 변현우(Byun)의 차지였다.

스타2 종목의 ‘그들만의 리그’는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지난해 WCS 16강 토너먼트에 15명이 한국인으로 도배됐고, 유일하게 타국인으로 자리한 ‘Lilbow’는 한국인을 만나 3대0 셧아웃 당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세계인들은 당연한 결과인 듯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블리자드는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의 ‘한국인 도배’를 대놓고 막았다. 지난해 비자 규제를 둔 데 이어 올해에는 WCS 시드를 한국대회와 해외대회로 이원화해 각각 8개자리를 배정한 뒤 5주 이상 소속 지역을 떠나있을 경우 대회출전을 제한했다. 사실상 국내에 적을 두고 있는 선수들은 해외 WCS 대회(WCS 서킷)에 참가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블리자드의 노력으로 올해 WCS 4강에 외국인 선수 1인이 이름을 올리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기승전한’을 막을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어마어마한 상금으로 대회 전부터 화제를 모은 ‘월드 일레트로닉 스포츠 게임즈(WESG)’의 경우 스타2 종목에 출전한 한국인 2인(총 18인)이 그대로 결승 대진표에 이름을 올리며 드라마라면 아무도 안 볼 뻔한 스토리의 밋밋한 마침표를 찍었다.

스타2, 상징성과 흥행성 사이

한국의 스타2 종목 경쟁력은 압도적이지만 대회 존속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듯 보였던 한국e스포츠협회와 스타크래프트의 인연이 사실상 끝나면서 인프라 유지의 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협회는 지난달 18일 성명을 발표하고 14년간 지속해온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를 공식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로리그 종료의 가장 큰 이유는 흥행성 상실에 따른 투자 감소다. 전병헌 협회장은 성명에서 “지속적인 참가 팀 수 축소와 선수 수 부족, 리그 후원사 유치 난항,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 등으로 더 이상 프로리그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인 발굴의 어려움, 래더 유저 감소에 따른 팬덤 저하도 주된 해체 사유인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리그와 팀 해체 소식에도 여전히 스타2에 애착을 드러내는 선수도 있다. 변현우는 GSL 우승 후 “나는 여전히 스타크래프트가 가장 좋다”고 말했고, ‘테란 명가’ SKT의 명맥을 이어온 이신형은 근래 연습량을 늘리며 피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블리자드 관계자는 “종목사 입장에서 이번 프로리그 해체에 대해 입장이 있는 건 아니다”면서 “스타크래프트는 상징적인 게임이고, 완성도 또한 상당하다. 해당 게임이 e스포츠 종목으로 계속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회의 이번 프로리그 종료가 오버워치로의 ‘종목 갈아타기’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SK, KT 등 e스포츠 팀 운영을 주력사업으로 삼아온 기업들이 오버워치 팀 창단을 비중 있게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며 중간다리 역할을 해온 협회가 행동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협회는 “(블리자드 같은) 종목사들과는 항상 여러 가지 논의를 한다”면서도 “(종목 변경이) 있다 없다 말하긴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스타人은 어디로 가야하오

임요환, 홍진호, 기욤 패트리 등 숱한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고 ‘콩라인’ ‘O나쌩(O 나오면 쌩큐)’ ‘너의 CPU를 믿지 마’ ‘엔진 소리 죽이는데?’ 등의 유행어를 남긴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모태와 같다. 그러나 이번 ‘팀해체 쇼크’로 해당 종목으로 ‘광안리 10만의 기적’을 일궈낼 토대는 영영 사라지게 됐다.

프로리그 해체는 협회측 공식발표 이전부터 예견됐다. ‘통신가 명가’ SKT와 KT를 비롯해 삼성, CJ 등 대기업 스폰서 팀 소속 코치와 선수들은 SNS나 개인방송을 통해 팀 해체 가능성을 암시했고,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스타2 팀 존치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을 공공연하게 다뤘다. 

팀의 미래를 ‘보류’에 부쳤던 아프리카TV마저 며칠 전 계약 만료에 따른 팀 해단을 공식화했다. 이로써 가장 두터운 팬덤을 보유중인 진에어 그린윙스만이 스타2 팀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스타2 종목에 집중하던 선수에게 이번 구단 해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한 핵심 토대로 간주되는 ‘합숙훈련’의 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WCS가 한국과 서킷으로 구분되며 국내 활동이 더욱 제약된 터라 국내에서의 스타2 선수 활동은 메리트가 떨어진다. 블리자드는 아직까지 내년도 WCS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합숙 훈련의 기반을 상실한 프로게이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 선수들은 은퇴와 종목 전향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해체 팀 소속 한 프로게이머는 “올해 초부터 (해체 관련) 불안한 소식이 들렸지만 믿지 않았다”면서 “팀을 정하지 못했다. 혼자서 연습하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합숙훈련에 익숙해져있는 선수들은 프로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팀에 들어가거나 외국팀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물론 여건은 녹록치 않다.

OSEN 보도에 따르면 스타2 프로게이머 평균나이는 22.48세로, 5년 전 평균나이가 20세 미만이었던 것 대비 크게 올라갔다. 스타2 프로 유입이 사실상 단절됐음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블리자드가 WCS를 지속하는 한 스타2의 e스포츠로서 명맥은 유지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회 유지의 최소한의 인프라인 선수 감소는 자연히 투자 감소로 이어진다. 국내에는 SPOTV와 아프리카에서 진행하는 SSL와 GSL이 있지만, 이미 상당수 프로게이머들이 은퇴나 종목 전향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대회가 폐지되거나 상금규모가 축소될 거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GSL의 경우 서수길 대표가 대회 규모 확대를 공언한 바 있지만, 게임단 해체가 기정사실화 된 마당에 대회가 비중있게 유지될 지는 알 수 없다.

스타2 종목에서 배태랑으로 알려졌으나 팀 해단으로 갈 곳을 잃게 된 프로게이머 A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다른 종목을 준비하긴 버겁다고 생각한다. 은퇴가 사실상 강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후 타 종목 코치로 활동하기 위해 지도자 교육을 받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팀 프로게이머 B씨는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종목전향밖에 답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스트리머로의 전향을 계획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괜찮은 수익을 얻고 있다는 한 게이머는 “커리어 유지를 1순위로 삼겠지만, 안된다면 인터넷 방송에 좀 더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의 향후 거취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그건 팀에서 대답할 사안이고 우리가 대답하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협회측은 케스파컵과 같은 스타2 대회를 확대 운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케스파컵은 지난해 스타2 종목으로 두 차례 열렸지만, 올해에는 외려 1회로 대회규모가 줄었다.

대안 없는 게이머들, 승부조작 우려 상승

앞서 쿠키뉴스는 스타크래프트가 1대1의 특성상 승부조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기획] "한 사람의 결심만으로…" e스포츠 승부조작, 다각적 대책 필요) 승부조작의 효시인 마재윤 사건만 보더라도 한 개인의 결단만으로 ‘전염병’이 시나브로 퍼져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팀 단위의 승부조작뿐 아니라 한 개인이 브로커와 짜고 승부조작을 벌인 사건들은 1대1 승부로 치러지는 스타2 종목의 한계를 보여준다.

[기획] 스타人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오

불법 베팅사이트를 없애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해외 우회 IP를 쓰는 사이트들을 모두 적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승부조작 대책은 근절 못지않게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다.

협회측은 승부조작 예방책을 다각적으로 강구해왔다. 선수와 코치진 전원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소양교육을 매년 실시하고, 강력한 책임을 담은 서약서 서명을 받았다. 아울러 매년 수시로 게임단을 방문해 관련 종사자들과 1대1 대화를 시도했다. 협회는 지난해 소양교육에서도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철저한 관리를 공언했던 터다.

e스포츠계 고위 관계자는 “(스타2 종목) 팀들의 도미노 해체로 선수들에게 울타리가 없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법적인 테두리가 없어지며 계약관계 같은 것에서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승부조작에 노출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협회측은 이번 팀 해체가 승부조작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선수를 직접 관리했던 게 아니라서 따로 (승부조작에 대해)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승부조작은) 팀 유무와 상관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팀 해체 후 스타2 프로게이머 관리에 대해선 “명확히 정해진 바가 없다”면서 “팀이 없다고 해도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선수들이 그렇게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고위 관계자는 “팀 합숙생활을 하면 선수들은 메신저 사용조차 모두 검사를 받을 정도로 (승부조작 관련) 관리가 매우 엄격하게 이뤄진다”면서 “ 어린 선수들은 판단력이 부족할 수 있다. 실제 감독이나 코치에게 승부조작 관련 상담을 한 선수들의 사례가 굉장히 많다. 어떻게 팀 케어와 승부조작을 분리해 생각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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