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균은 무지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현장보고] 국립목포병원에서의 하루①

기사승인 2017-09-12 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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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쿠키뉴스는 결핵을 통해 공공의료기관의 실태를 집중 점검하는 결핵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1화는 고질적인 인력문제, 2화는 현장 르포, 3화는 현직 간호사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국립목포병원을 무대로 한 이번 기획은 비단, 해당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코자 합니다. 쿠키뉴스의 보도가 변화를 위한 작은 주춧돌이 되길 바랍니다.  

결핵(tuberculosis, TB)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이 유발시키는 전염병이다. 결핵균은 악랄하다. 체내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결핵은 오직 환자에 의해서만 전염된다. 전염은 공기를 매개로 진행된다. 대개 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폐결핵 환자가 주를 이루지만, 인체의 다른 부분에서의 폐외결핵도 관찰된다. 최근에는 슈퍼결핵, 즉 광범위약제내성결핵, 중증 결핵 등의 빈도가 늘고 있다. 치료기간도 길고 전염성이 강하다. 

후진국병 혹은 빈곤의 질병으로 불리는 결핵은, 그러나 한국에서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은 수년째 결핵3대 지표에서 압도적인 1위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장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사실상 국립목포병원과 국립마산병원이 전부다. 그렇지만 이들 국립의료기관의 상황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이 다수의 결핵환자를 돌보다 보니 의료진의 감염 위험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또한 민간 병원에 비해 급여 등 처우도 열악한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사와 간호사가 결핵 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의료진을 확충할 권한은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가 쥐고 있지만, 복지부는 인력 충원에 소극적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주된 것은 ‘돈’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남아있는 인력들은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폭발 일보 직전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복지부가 어떠한 개선책을 갖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기자는 실제 결핵 의료 현장을 확인코자 지난 5일 목포행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용산역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여를 달려 목포에 도착했다. 목적지까지는 다시 30여분을 차로 더 가야 한다. 한적한 시골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시야에 황량한 병원 부지가 들어왔다. 국립목포병원이었다. 비쩍 마른 노령의 결핵 환자가 유령처럼 거니는 모습은 흡사 이곳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이곳에서의 1박2일 동안 기자는 ‘오 마이 갓’을 거듭 외쳤다. 이 한적한 시골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강한 어조로 논한다면, 이곳에 보건당국은 부재했다.    

국립목포병원은 6층 규모다. 건물이 노후한 탓에 현재도 공사가 한창이다. 4개병동 204병상 규모로, 이곳의 의료진 수를 보면 ‘동네의원’ 수준이다. 진료과도 흉부외과와 진단검사의학과가 전부. 의사는 달랑 3명에, 간호사는 28명뿐이었다. 각 병동은 간호사 7명이 맡는다. 그나마 스테이션을 지키는 간호팀장을 제외하면 6명이 중증 결핵 환자들을 돌본다. 가장 취약한 시간대는 밤이다. 야간에는 오직 1명의 간호사가 병동을 지킨다.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병원 전체가 비상이다. 5병동의 간호사가 4병동으로 달려가면 5병동은 곧바로 의료공백 상태에 놓인다. 국가결핵치료의료기관이자 전남지역 제1호 감염병관리기관의 현실은 열악하다 못해 비참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의료공백의 최대 피해자는 결핵 환자, 즉 국민들이라는 점이다.  

환자도 많다. 특히 치매 등 정신질환자, 고령 및 노인성 질환자, 거동불편 중환자 등 중증질환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입원 대기환자마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입원환자 4만3931명 중 중증환자는 2만3053명(52.5%)이었고, 약제내성결핵 환자는 1만3016명(29.6%)에 달했다. 국립마산병원보다 열악한 상황의 국립목포병원에는 이렇듯 치료하기 어렵고, 간병이 필요한 환자로 가득차 있었다. 정부가 ‘밀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꿈도 꿀 수 없다.      

◇ 병동마다 SOS… 응급상황서 의료진 발동동

“최근 폐혈증이 의심되는 환자를 전원하는 과정에서의 긴박했던 응급상황이 있었다. 그날따라 6병동에서도 객혈 환자가 발생해서 5병동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해당 간호사도 급한 일처리만 해주고 바로 올라가야 했다. 계속 타병동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도움을 줬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어서 다음 근무자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게 된다. 매순간이 울고 싶은 상황이었다.”

내부 인트라넷에 올라온 병동 간호사의 속내다. 병원 간호과 관계자는 “국립의료기관에서 4병동을 간호사 7명씩만 운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금 인력으론 한계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간호사들도 각자 가정을 갖고 있는데 언제까지 정신력에만 의존할 순 없다는 지적이다. 해당 관계자는 간호사들이 고충을 토로하면 다독여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무력감을 토로했다. 

국회에서 국립목포병원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불가능한 인력실태를 거듭 문제 삼자, 복지부는 간호사(3명)와 조무사(6명), 내성결핵 전문의(1명)을 배정키로 했다. 그러나 40병상을 기준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가능하려면 간호사 16명과 조무사 6명이 필요하다. 복지부에서 확충키로 한 인력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하려면, 국립목포병원은 1개 병동을 폐쇄해야 한다. 

김천태 병원장은 이에 대해 “병원 의료시스템을 무너뜨리면 환자를 받기도, 돌보기도 어렵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타협점으로 내년에 4병동을 유지하되, 인력 보강이 이뤄지면 1개 병동은 30병상으로 축소해 간호사 12명과 조무사 6명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키로 정리는 됐다. 그마저도 내년 7월께나 가능하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정부 기조를 의식한 복지부의 ‘반쪽짜리’ 서비스라는 비판이 가능한 지점이다.  

복지부도 할 말은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 공공의료기관의 인력 확충에는 정부 부처 3곳이 관여돼 있다. 행정안전부가 인력배정을 하고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정해, 복지부를 통해 인력 배치가 이뤄지는 식이다. 인력 확충이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방침은, 그러나 의료현장의 다급함을 과연 고려하고 있느냐는 의문으로 뒤바뀐다. 

의사는 지원자도, 정원 마련도 요원하다. 어쩔 수 없이 공중보건의가 진료를 맡다보니 아무래도 의료 연속성에 공백이 생기기 마련. 진료과의 부서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3년 임기의 공보의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한명에 소요되는 세금은 20억”이라는 이야기는 공직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말인즉슨 ‘돈’이 들기 때문에 행안부나 기재부가 공무원 정원을 늘리는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따로 있다. 현장의 어려움을 수지타산과 통계, 숫자로만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반증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는 더욱 커진다. 

“복지부에서 공무원 신분이니 편하지 않냐고 묻더라. 국립목포병원의 실정을 말해주면 그제야 ‘그 정도로 심각하냐’고 반문한다. 행안부와 기재부 탓만 하기엔 보건 당국의 무관심도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국립목포병원 관계자)

결핵균은 무지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 구색 맞추기 미봉책에 현장 의료진만 전전긍긍… 현실은 아프리카 수준 

공공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국내 실정을 감안하면 민간병원과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상황을 타개할 순 없을까? 김천태 병원장은 “협력 의료기관과의 네트워크 구축은 일순 효율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민간병원은 결핵 환자는 기피하려는 경향이 크다. 이를 ‘이기적’이라고 힐난하기만은 어렵다. 내성결핵환자의 경우 민간병원에서는 치료 및 관리가 사실상 어렵다. 특히 난치성 결핵환자의 경우 치료가 18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등 입원 치료 기간이 길고, 고가의 약제비에도 불구 완치율은 낮은 형편이다. 민간병원 입장에선 타 내원 환자의 결핵 전염 위험 및 의료적자를 감당할 여건이 안 된다.  

현재와 같이 결핵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정부의 방기 책임도 없지 않다. 수년 동안 “결핵은 쉽게 치료할 수 있다”는 논조의 정부 캠페인은 결핵에 대한 예방 및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1990년대 중반 결핵 환자수가 줄면서 정부의 관심도 멀어졌다. 김천태 병원장은 이 지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결핵연구원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부가 주장하는 ‘결핵 안심국가’는 국민들의 관심이 많아야 더 많은 예산 편성으로 이어진다. 그래야 치료 환경이 개선된다. 10만 명당 20명 수준으로 결핵 환자 비율이 떨어질 때까지 결핵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한다.” 참고로 현재 한국은 2014년 기준 10만 명당 결핵발생률은 86명이었으며, 유병률은 101명, 사망률은 3.8명을 기록했다. 노인 결핵 환자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10만 명당 300명을 상회한다. 결핵 전문가 사이에서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오가는 이유다. 

현재 국립목포병원은 병상 축소를 고려 중이다. 인력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적은 수의 의료진이 다수의 환자와 접촉하다보니 매년 결핵에 감염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천태 병원장의 말에선 비애가 진하게 묻어난다. “인력 부족으로 더 이상은 어렵다. 한계에 부딪쳤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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