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예후 징조 보였던 ‘참극’ 막을 수 없었나

입력 2019-04-17 19: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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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예후 징조 보였던 ‘참극’ 막을 수 없었나

17일 새벽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방화 후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마구 흉기를 휘둘러 18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안모(42)씨가 올해 들어서만 주민 다툼 등의 문제로 수차례 경찰에 신고 접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안씨의 이상행동은 도무지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들어 이웃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됐다.

주민들은 ‘우려하던 일이 결국 발생했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진주경찰서에 따르면 안씨와 관련해 올 들어 신고 접수된 것만 7건이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에서 5건, 이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2건이다.

특히 아파트 5건 중 안씨가 살던 4층 집 위층 주민과 관련된 신고만 4건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범행 전까지 안씨의 정신 병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이웃 간 단순 시비로 판단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안씨 집 위층에 살던 A(18)양은 평소 안씨의 위협적인 행동 때문에 불안에 떨었다.

이 같은 정황은 A양 유족이 언론에 공개한 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달 12일 오후 안씨는 A양이 살던 집에 간장과 식초가 섞인 오물을 뿌렸다.

오물 투척 1시간 전에는 안씨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A양을 집 앞까지 뒤쫓아갔다.

A양은 안씨가 따라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 뒤 황급히 집안으로 몸을 숨겼다.

안씨는 A양이 집에 들어갔는데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집 앞을 서성거렸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A양이 안씨 때문에 두려움을 호소해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종종 동행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안씨가 A양 집에 오물을 뿌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안씨는 앞서 지난달 초에도 A양 집에 오물을 뿌렸다.

그런데 경찰은 안씨를 처벌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며 A양 가족에게 CCTV를 설치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A양 가족은 자비를 들여 CCTV를 설치했고, 이 결과 안씨의 이상행동을 포착할 수 있었다.

안씨는 지난 1월에도 진주시내 한 자활센터에서 근무하던 직원 2명을 때려 폭행죄로 처벌받기도 했다.

한 달 전 상담하러 갔을 때 마셨던 커피로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는 이유에서였다.

동네주민과 이 아파트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안씨의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이상행동이 “지난해 9월부터 계속 됐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9월 A양 집 주변과 5층 엘리베이터에 누군가가 인분을 뿌리고 달아난 적이 있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섰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안씨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아파트관리사무소 한 직원은 “안씨의 난동으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돌아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안씨는 과거 폭행죄로 처벌받으면서 조현병으로 치료감호와 보호관찰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정신 병력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안씨의 위협적인 이상행동으로 여러 차례 신고가 접수되면서도 이웃 간 단순 시비라 판단해 정신 병력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안씨가 앓았던 조현병은 치료를 받으면 그 증세가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전 계속 이상행동을 보인 안씨의 정신 병력을 경찰이나 지자체 등 관계기관에서 파악해 조처했다면 이 같은 참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냐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이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안씨가 평소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아무 이유 없이 욕설을 하는가 하면 정상인이라고 보기 힘든 위협적인 이상행동을 해 살기를 느낀 주민들도 있었다”며 “이 참극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날 오전 4시30분께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4층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붙잡혔다.

경찰은 안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집중 수사하는 한편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흉악범은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법에 따라 안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진주=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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