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공수처법인가…국회의원이 ‘쫄지 않는’ 이유

기사승인 2020-12-09 20:06:02
- + 인쇄
누구를 위한 공수처법인가…국회의원이 ‘쫄지 않는’ 이유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2차 회의.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김희란 인턴기자 = 국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두고 시끄럽다. 집권여당은 권력의 축소를 주장하며 출범을 위한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1야당은 최후수단을 동원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9부 능선을 넘었다. 어떻게 일련의 상황이 가능할까.

그 해답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추천에 대한 비토권(거부권)을 삭제하는 공수처법 개정을 두고 다투는 9일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김 의원은 21대 첫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자 국민의힘이 무제한 토론방식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시작하기 전 발언에서 “공수처는 괴물이 아니다.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만 더 엄격한 권력이 되는 곳”이라며 “야당도 발 뻗고 잘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돼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면 국민에게는 절제된 권력을, 고위공직자에게는 엄정한 권력이 적용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토론을 마쳤다. 

정치화된 검찰권력에 의해 정권의 반대에 선 야당을 핍박하는 도구로 사용된 검찰권력이 공수처에 의해 견제돼 야당도 여당처럼 발을 뻗고 잘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수처의 수사 및 기소대상에서 정치인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8일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됐던 석동현 변호사가 돌연 처장후보를 사퇴하며 “시민단체의 고발장 하나로 공수처는 대통령부터 모든 3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수사하고, 관련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당 정치인들이 하루라도 빨리 만들자고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식의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공수처법 문안대로라면 현 정권의 장관이나 시도지사, 기타 고위직을 맡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이 수사의 1차적 대상이자 정보감시 대상이 될 경우 껄끄럽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오히려 자신들을 옭죄고 감시할 거대권력을 조금이라도 빨리 출범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누구를 위한 공수처법인가…국회의원이 ‘쫄지 않는’ 이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민 최고위원, 추미애 법무부장관 등은 지난 10월 1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입주할 과천정부청사를 찾았다. 사진=연합뉴스

돌려 말하면 자신들은 ‘떳떳하다’거나 ‘위축될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리고 일련의 해석의 근거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가진 공수처가 기소할 수 없는 대상에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수처법 상 기소대상은 판·검사 및 경무관급 이상 공직자만 포함된다. 여당 국회의원이 공수처를 통해 수사는 받아도 기소될 일은 없는 셈이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 기소대상 제외에 대해 꾸준히 비판해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3월 성명서를 내고 “국회의원들이 연루된 권력형 범죄사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반드시 이(수사대상)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수사 범위에 대해서도 “수사권·기소권·공소유지권 모두가 부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국회는 당당했다. 국회의원이 기소대상이 아닌 이유에 대해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 측은 “여당은 공수처를 만들 때 수사대상에 대한 기소권을 전면 인정하자고 했지만 야당은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 주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이에 여·야 합의를 통해 공수처의 기소권에 제한을 두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금번 공수처법 개정에서조차 국회의원을 기소대상에서 제외한 경위에 대해서는 “여·야당의 주요 쟁점은 공수처장 임명 관련 건이었지, 기소대상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적이 없다”며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여당이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다시피 단독으로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에게 족쇄가 될 내용은 뺐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와 관련 남은경 경실련 국장은 9일 공수처법 개정을 앞두고 “많이 우려스럽다. 계속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 같다”면서 “현 공수처법은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국민의힘은 9일 오후 8시30분부터 자정까지 공수처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10일 임시회가 소집되는 즉시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청해 국회의원 전원이 공수처법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방안을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공수처법 처리를 두고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heeran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