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 첫 방송 후 일어난 일 [쿡이슈]

기사승인 2021-03-25 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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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전례가 없는 일이다. 방송 2회 만에 광고 없는 드라마로 전락했다. 첫 방송부터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진 SBS 월화극 ‘조선구마사’의 이야기다. 시청자의 항의가 이어지자 제작사와 방송사는 사과문을 내고 “한 주 결방”을 선언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조선구마사’ 첫 방송 후 일어난 일 [쿡이슈]
SBS 월화극 ‘조선구마사’ 1회 화면

◇ 중국 월병이 왜 조선시대 사극에?

‘조선구마사’는 22일 첫 전파를 탄 직후부터 시청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조선 초기를 배경으로 태종, 충녕대군, 양녕대군 등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에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는 소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충녕대군이 서역에서 온 구마사제를 인도하며 접대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문제로 떠올랐다. 통역사와 사제 앞에 놓인 술상에는 중국 음식인 월병과 피단, 중국식 만두와 술병이 있었다. 충녕대군이 구마사제와 역관에게 무시당하거나, 태종이 아버지인 태조의 환시를 보고 백성을 학살하는 장면도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했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조선구마사’의 작가가 tvN ‘철인왕후’의 박계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청자는 더욱 분노했다. ‘철인왕후’도 앞서 ‘조선구마사’와 같은 논란을 빚었기 때문이다.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하거나, 일부 실존인물을 부적절하게 묘사해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에도 제작진이 나서 사과문을 냈는데 ‘조선구마사’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자 박 작가의 저의나 국적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생겼다. 

‘조선구마사’ 첫 방송 후 일어난 일 [쿡이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 ‘조기 종영’ 항의에 끊어진 광고


논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중지를 요청한다’는 청원은 하루 만에 17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엔 관련 민원이 3900건 넘게 접수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문화체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게 문제를 제보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전주이씨종친회도 24일 성명을 통해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중지를 요청한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시청자의 마음이 떠난 드라마에서 광고주도 하나 둘 등을 돌렸다. 제작을 지원했던 삼성전자, 시몬스, 명인제약, 블랙야크, 바디프렌드, LG생활건강 등 다수의 기업이 일제히 광고를 중단했다. 현재 ‘조선구마사’에 광고를 주는 기업은 한 곳도 남지 않았다. 한복을 협찬한 업체도 협찬을 중단했다. 장소협찬과 제작비 360만 원을 지원했던 문경시는 제작사와 환수 절차를 진행 중이다. 촬영 장소를 내줬던 나주시도 장소 사용 취소를 통보하고 드라마 엔딩에 들어가는 나주시 관련 사항 역시 삭제를 요청했다.

‘조선구마사’ 첫 방송 후 일어난 일 [쿡이슈]
SBS 월화극 ‘조선구마사’ 포스터

◇ 두 번의 입장문, 비판 여론은 여전

‘조선구마사’ 측은 두 번에 걸쳐 입장문을 냈다. 제작진은 23일 중국 음식이 오른 술상에 관해 “특별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충녕대군이 세자인 양녕대군 대신 중국 국경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 서역의 구마 사제를 데려와야 했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의주 근방’(명나라 국경)이라는 해당 장소를 설정하고 자막처리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력을 가미해 소품을 준비했다”며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을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해명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자 24일 제작사와 방송사가 각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작사는 “실존 인물을 차용해 ‘공포의 현실성’을 전하며 ‘판타지적 상상력’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했으나, 예민한 시기에 큰 혼란을 드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다만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라는 의혹에 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방송사는 다시보기를 중단하고 한 주 결방해 드라마를 재정비하겠다는 방침을 알렸다. 

‘조선구마사’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무녀 의복과 칼도 중국식이며 배경음악에도 중국악기를 사용했다는 새로운 지적이 연이어 나왔다. 일부 시청자와 전문가는 “의주는 거란 1차 침략 때(993년) 서희 장군이 강동 6주를 확보한 땅”이라며 “드라마가 배경인 15세기 초엔 국경지대가 아니었다”고 제작진의 해명에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이 드라마의 역사 자문으로 이름을 올린 이규철 박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문제가 된 부분에 관해 강한 우려를 표했고, 그 외 다양하게 지적했다”면서 “방영 전 최종 결과물을 볼 수 없었고, 역사자료에 입각한 학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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