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7개월차 중대재해처벌법, ‘종이호랑이’ 비판 남았다

기사승인 2022-08-24 06: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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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7개월차 중대재해처벌법, ‘종이호랑이’ 비판 남았다
서울 내 한 건설공사 현장.   사진=조현지 기자

“종이호랑이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참담한 심경으로 모였다”

노동·시민단체가 한데 모인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올해부터 법이 시행됐지만 최고책임자 기소는 단 1건에 그치는 등 제도의 ‘유명무실화’가 우려된다는 의견이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지 200여일이 지났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 ‘경영자 처벌중심’ 방식에서 중대재해 예방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책임자를 처벌하고 중대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을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된 14건의 사건 중 단 1건만 기소됐다. 게다가 해당 사건은 ‘서류상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갖췄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활동가는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지만, 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는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1월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됐다.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은 중대재해를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등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 시행에도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크게 줄지 않았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2년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이슈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업 사망사고 피해자는 78명이다. 지난해 1분기 85명에 비해 7명(8.2%) 감소하는데 그쳤다.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지 않은 공사비 1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중소규모 건설공사 현장은 지난해 1분기 28명에서 29명으로 사망자가 늘어났다. 입법조사처는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효과를 분석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면서도 “애초 법 시행에 다른 기대효과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노동·시민단체는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를 발족하고 현장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고책임자를 처벌하고 중대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와 경제계의 법안 무력화 시도를 저지하고, 모든 사업장에 법이 전면 적용되도록 개정 운동에도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고 경영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 시행이 재해율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이전에도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 진흥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다수의 법률에서 건설공사 현장 안전사고에 대한 처벌규정을 적용하고 있었으나 그 효과에 한계가 있었다”며 “처벌규정을 강화한 당시에는 재해율이 감소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해율은 다시 올라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처벌규정 강화와 함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의 병행 필요성이 제기된다. 입법조사처는 “정부 부처의 현장점검 및 계도, (외국인)건설노동자 안전교육, 노・사・정 건설업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체 구성을 통한 제도개선 논의 등 건전한 건설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경영자 처벌로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실제 현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현장 사고를 줄이기 위한 지원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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