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특식, 5000원 편의점 도시락 [마지못해,상경⑥]

기사승인 2022-12-19 06: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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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특식, 5000원 편의점 도시락 [마지못해,상경⑥]
김진수씨가 서울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이날 파프리카 묶음은 3480원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보다 5% 올랐다.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대 상승률이다.  사진=최은희 기자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에는 사면초가에 빠진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로에서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중 하나를 골라 맞서야 했다. 괴물은 부하를, 소용돌이는 배를 잃는 위험이 있었다. 나아가려면 선택해야 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괴물과 싸웠고 부하 여섯을 잃었다. 그는 후회했을까, 문제에 정답은 있었을까.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만난 지방 청년은 모두 한 명의 오디세우스였다. 서울로 갈 수도 고향에 남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 인생.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일자리, 집, 생활비, 외로움의 고통이 따라왔다. 땅 위에서 부유하는 지방 청년들. 고향에 남은 이의 이야기는 [마지못해, 상경] 홀수 편에, 상경한 이의 목소리는 짝수 편에 담았다.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한 지방 청년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편집자주]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온 김진수(28·가명)씨에게 서울은 어둡다. 지난 2019년 상경한 김씨는 영상 제작회사의 조연출이다.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한다. 자정을 넘겨 야근하는 게 일상이다. 손에 쥐는 월급은 세후 180만원 남짓. 한 달을 살아내기 빠듯하다. 

김씨의 한달살이는 어떨까. 지난 9월 김씨의 총지출은 171만8790원이다. 고정 비용만 80만원가량이다. 13㎡(4평) 자취방 월세 40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교통비 12만원, 콘택트렌즈 등 의료비 7만2000원, 기부 1만원 등이다. 
오늘의 특식, 5000원 편의점 도시락 [마지못해,상경⑥]
지방 청년 김진수씨의 지난 9월 지출내역. 자취방 월세, 부모님 용돈, 교통비, 의료비 등 고정 비용만 매달 80만원씩 빠져나간다. 월급 180만원에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남은 여윳돈은 7만9370원. 아무리 아껴도 월 20만원 저축하기가 어렵다.   그래픽=최은희 기자 

한 달 식비는 30만원 안팎이다. 하루 식비 만원을 넘기지 않는 것이 그의 목표다. 편의점 도시락, 달걀프라이, 참치 통조림이 주로 상 위에 오른다. 열량이 높은 라면·과자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채소·과일이 먹고 싶은 날은 마트 알뜰 코너로 향한다. 갈변한 바나나, 생기 잃은 브로콜리 등을 골라 담는다. “항상 돈에 쪼들려요. 생활비가 빠듯해서 한 끼라도 싸게 먹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제일 서러울 때는 5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살까 말까 백번쯤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볼 때죠” 

옷을 사거나 오락에 쓴 내역은 찾기 힘들다. 가을 코트(5만3000원) 구입, 넷플릭스·웹툰(6만1890원) 결제가 유일하다. 아끼고 아끼지만 한 달 치 수입은 금세 동이 난다. 2020년 기준 39세 이하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 237만6000원. 김씨는 이보다 67만원 적게 쓰지만 매달 적자를 걱정한다. 
오늘의 특식, 5000원 편의점 도시락 [마지못해,상경⑥]
20대 청년의 점심 밥상. 밥, 계란프라이 하나, 조미김, 김치가 놓여있다. 쿠키뉴스DB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유니온의 ‘2018 청년 가계부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청년 74%는 식비·주거비 등 필수 생활비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건 박탈감이다. 김씨는 언제부턴가 서울 토박이인 직장 후배와 자신을 비교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벌지만, 삶의 격차는 좁힐 수 없을 만큼 크다. 서울 본가에 사는 후배는 월급의 반을 저금하고, 분기마다 해외여행도 간다. 김씨는 높은 물가와 주거비용을 감당하느라 저축을 포기한 지 오래다. 아득바득 아껴도 월 20만원 모으기가 벅차다. “서울 출신들이 부러워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니까요. 돈 드는 취미도, 여행도 포기했는데. 포기가 이제 슬프지도 않고 익숙해요. 그래서 억울해요”

오늘의 특식, 5000원 편의점 도시락 [마지못해,상경⑥]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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