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한국 온 엘르가든 “인생 최고의 날”

기사승인 2023-08-05 06: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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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한국 온 엘르가든 “인생 최고의 날”
2023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일본밴드 엘르가든 보컬 호소미 타케시. PRM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그거 알아요? 오늘이 제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일본밴드 엘르가든의 보컬 호소미 타케시가 외쳤다. 4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다. 그와 동료들은 이 행사에 간판 출연자로 공연했다. 결성 25주년을 맞은 엘르가든이 한국을 다시 찾는 건 2008년 이후 15년만. 호소미는 한국어로 “안녕. 오랜만이야”라고 인사를 건넸다.

엘르가든의 내한이 늦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씽’(Missing), ‘스페이스 소닉’(Space Sonic), ‘셀러맨더’(Salamander) 등을 히트시키며 일본을 대표하는 펑크록 밴드로 자리 잡은 이들은 2008년 돌연 활동을 멈췄다. “새 음반을 발표하기 위해 각자 성장해서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무대 뒤로 떠났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밴드가 해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2018년 재결성을 선언했다. 지난해엔 신곡 ‘마운틴 탑’(Mountain Top)도 냈다. 무려 16년 만에 발표하는 노래였다.

15년 만에 한국 온 엘르가든 “인생 최고의 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KB스테이지 전경. PRM

기다린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한국 팬들의 환대는 더없이 뜨거웠다. 관객 수만 명이 공연장으로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호소미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관객과 대화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같은 간단한 표현부터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번 놀아보자”거나 “여러분께 줄 선물을 가져왔다” 등 긴 문장도 한국어로 막힘없이 뱉었다. 그가 “오늘은 긴 밤이 될 거다. 준비됐나”라고 묻자 객석에선 환호가 쏟아졌다.

지천명을 맞은 록스타의 목에선 핏대가 가라앉을 틈이 없었다. 이날 엘르가든은 신곡을 비롯해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 ‘수퍼노바’(Supernova), ‘피자맨’(Pizza man) 등 20곡 넘게 불렀다. 배우 고아라가 출연한 휴대폰 CF에 삽입돼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메리 미’(Marry Me)가 연주될 땐 분위기가 절정에 올랐다. 공연장 한쪽에선 관객들끼리 몸을 부딪치는 슬램이 벌어졌다. 허공엔 ‘금지된 것음 금지한다’ ‘퇴사’ ‘불여우단 등장’ 등 개성 가득한 문구가 적힌 깃발이 나부꼈다.

15년 만에 한국 온 엘르가든 “인생 최고의 날”
밴드 자우림 멤버 김윤아. PRM

엘르가든에 앞서 무대에 오른 김윤아는 사랑과 증오를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 메시지와 완결성이 돋보였다. “사랑이 위대하다고들 하지만 증오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며 ‘증오는 나의 힘’을 부르던 그는, 그러나 결국 위로와 사랑으로 향했다. 최근 연이은 재해와 강력범죄를 의식한 듯 김윤아는 “어제오늘 많은 분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셨을 것 같다. 누구에게 이유를 물어야 할까”라며 ‘강’을 불렀다. 발매 당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곡이라고 평가받은 노래다. 마지막 곡으로는 ‘다 지나간다’를 선곡했다. “사랑도 괴로움도 언젠가 다 사라진다. 오늘 사랑하고 오늘 미워하자. 오늘 울고 웃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앞으로 달려나가자”고도 했다.

히트곡이 많은 장기하의 공연에선 ‘떼창’이 예삿일이었다. ‘부럽지가 않아’ ‘풍문으로 들었소’ ‘그렇고 그런 사이’ 등 노래 한 곡 한 곡이 연주될 때마다 관객들도 목청을 돋웠다. 일본밴드 키린지의 공연도 인기였다. 체감온도가 35℃를 웃도는 불볕더위에도 인파가 객석을 채웠다. 키린지는 1997년 데뷔해 일본 음악계의 존경을 받아온 관록의 밴드다. 애초 형제가 한 팀으로 나왔지만 지금은 형인 호리고메 타카키 혼자 밴드를 이어가고 있다. 호리고메는 영어로 “한국에 와서 기쁘다”며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가수 백예린이 속한 밴드 더 발룬티어스, 싱어송라이터 죠지, 15년 만에 새 음반을 낸 밴드 마이앤트메리 등이 이날 공연을 펼쳤다. 축제는 5일과 6일에도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