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다시 꺼내든 민주당...마음 졸이는 은행권

민주당, 횡재세 다시 추진하나
효과 두고 의견 분분
처분적 법률에 국힘 “삼권분립 위배” 반발

기사승인 2024-05-08 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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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세 다시 꺼내든 민주당...마음 졸이는 은행권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박효상 기자

야권이 ‘횡재세’ 부과 재추진 입장을 밝혀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횡재세’(windfall tax) 도입을 처분적 법률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횡재세를 한시적으로 3년 도입하는 안을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분적 법률은 행정부나 사법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 입법만으로 자동으로 집행력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횡재세는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외부 사건)으로 부당하게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간주하는 부분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5개 국가에서는 이미 횡재세를 도입했다.

21대 국회 문턱 못 넘은 횡재세…이번엔 다를까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해 11월 은행의 순이자이익이 직전 5년 평균치의 120%보다 많으면 초과분의 최대 40%를 정부가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과 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걷힌 기여금은 장애인, 청년, 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 금융소비자의 금융 부담을 줄이는 데 쓴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발의안에 따르면 2018~2022년 평균 이자 순수익을 기준으로 횡재세 도입시 국내 시중은행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1대 국회에서는 여당이 과세 형평성과 시장 논리에 역행한다며 반대해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일단 횡재세 도입에 높은 의욕을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달 22일  “고유가 시대에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더욱 적극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횡재세 도입을 거듭 제안했다. 이 대표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경기가 어렵고 살기 팍팍할수록 있는 쪽이 더 부담하고 없는 사람이 지원받아 서로 숨 쉬고 살아가는 것이 사회의 기본 원리”라고 강조했다. 또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지난 총선보다도 많은 175석을 확보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민주당 한 의원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이 도산하고 많은 자영업자가 빚더미 위에 앉았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금융기관은 역설적으로 돈을 더 벌었다”며 “금융 공공성 회복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대해 당 내에서 작년보다 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ELS·부동산PF 리스크에 은행권 난색…전문가 “도입 의미 있어”

은행권 횡재세 도입 효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은행권이 예대마진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억제할 수 있어 간접적으로 소비자가격에 대한 상한선을 두는 것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국내 금융권은 최근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규제 강도가 높아 초과이익 규모가 글로벌 은행보다 제한적이고, 이미 국내 시중은행이 다른 국제 금융기관에 비해 사회공헌 비율이 높다는 반론을 펼친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과연 어느 정도를 초과이익으로 과세할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고, 초과이득을 추가로 과세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과세근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짚은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난색을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날 “홍콩H지수 ELS로 손실이 큰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언제 시스템 리스크가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세금을 추가로 거둔다면 반발이 거셀 것”이라며 “횡재세가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세금은 아니다. 시장기능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아닌 정부가 강압적으로 분배를 하는 게 적절한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횡재세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횡재세와 관련해 “몇년간 물가가 잡히면서 금리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거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지만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크레디트스위스(CS)사태가 벌어진 만큼 시장에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며 “법을 통해서 (초과이익을 제한)하는 것보다 업계와 당국 간 논의를 통해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유연하고 정교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날 “다른 업종은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경기가 안 좋으면 바로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은행권은 예대마진이 있어서 항상 이익을 보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 시중은행은 외인 지분이 60% 이상이다. 고금리 정책으로 국민은 고통받는데, 수익은 배당금 명목으로 몇 조원씩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횡재세 도입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정 교수는 “단순히 횡재세를 걷냐 마냐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은행과 관련한 다른 정책과 함께 큰 틀에서 구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국민의힘은 처분적 법률은 사실상 행정부 ‘패싱’으로, 삼권분립 위배 소지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19일 “삼권분립의 근본적인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사실 물가나 환율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없는데 굳이 왜 정유사와 금융사만 해야 하느냐는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국세청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세금을 걷겠다는 건지 잘 감이 오질 않는다. 구체적 법률안을 봐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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