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뱅크 경쟁’, 은행 실적 만능주의 허상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3-04-15 06: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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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뱅크 경쟁’, 은행 실적 만능주의 허상 [친절한 쿡기자]
쿠키뉴스DB

은행권에 리딩뱅크[leading bank, 선도은행]라는 용어가 있다. 은행권 가운데 시장을 움직여 나가는 선도 은행이라는 표현이다. 은행들 사이에는 리딩뱅크를 차지하기 위해 묘한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지주회장이나 은행장의 발언에 자주 등장하며, 자(自)회사를 리딩뱅크로 표현하거나 리딩뱅크 탈환을 주문한다.

은행권에서 리딩뱅크는 전적으로 실적에 따라 평가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4조6423억원을 달성해 3년 만에 ‘리딩뱅크’ 탈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KB금융지주는 리딩뱅크에서 밀려나며 2위 기업이라는 평가에 그쳤다.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리딩뱅크 경쟁은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리딩뱅크라는 용어는 은행권 내에서 사용될 뿐 은행 고객들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은행권에서 리딩뱅크 경쟁이 반복되는 것은 리딩뱅크 타이틀이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성과를 포장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명확한 주인이 없는 은행들은 CEO의 입지가 불안하고, CEO들은 경영성과를 통해 본인의 입지를 탄탄히 만들기를 원한다. 은행의 불안한 지배구조가 리딩뱅크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적 중심의 리딩뱅크 경쟁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실적을 늘리는데 치우쳐 소비자보호를 등한시하는 문제다. 원금보장을 원하는 80대 노인에게 고위험상품을 판매하거나, 안전투자를 원하는 소기업의 투자성향을 조작해 고위험상품을 팔아치워 결국 은행을 믿었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고들이 반복되고 있다.

실적 1위 리딩뱅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은행 사회공헌비용을 살펴보면 개별 은행 기준으로 국내 5대 주요 은행 가운데 실적 1위를 기록한 하나은행의 사회공헌비는 3위에 그쳤다. 실적 5위에 머물렀던 농협은행의 사회공헌비가 리딩뱅크로 평가될 수 있는 하나은행을 앞질렀다. 현재의 리딩뱅크 경쟁은 은행의 고객과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리딩뱅크 경쟁과 평가가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을 지고 용퇴를 결정한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이와 관련해 “‘리딩뱅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속가능하게 기초 체력을 탄탄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그러다 보면 1등도 하고 좀 뒤처지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라 민감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사를 평가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도 변화하고 있다. 실적에서 벗어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ESG 평가가 부각되고 있다. 은행에 대한 평가도 이제 실적중심에서 벗어나 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물론 소비자보호, 사회공헌 등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은행도 국민의 눈높이가 상생에 맞춰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