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과 쪼는 맛 사이 ‘비공식작전’ [쿡리뷰]

기사승인 2023-07-17 18: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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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맛과 쪼는 맛 사이 ‘비공식작전’ [쿡리뷰]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쇼박스

1986년 1월, 내전이 극심하던 레바논에서 대한민국 외교관이 피랍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생사가 묘연하던 외교관에게서 구조 요청이 온 건 그로부터 1년 8개월이 흐른 뒤. 서울올림픽을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외무부는 이를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레바논 투입을 자처한 외교관 민준(하정우)은 우여곡절 끝에 현지에서 수상쩍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를 만나 구출작전에 돌입한다.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은 관객이 기시감을 느낄법한 영화다. 앞서 개봉한 ‘모가디슈’(감독 류승완), ‘교섭’(감독 임순례)으로 해외 현지에서 피랍된 이를 구출하는 이야기가 익숙해져서다. 그래서 ‘비공식작전’은 독자적인 볼거리를 부지런히 마련해둔다.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인 주연 배우 하정우·주지훈의 관계성을 활용하고 스릴감을 극대화하는 식으로 개성을 찾아간다. 여기에, 두 남자 주인공을 내세워 버디무비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면서 아는 맛을 보기 좋게 차려낸다.

민준과 판수는 동상이몽 속 미국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작한다. 중동국가만 나돌던 민준은 미국 발령을 꿈꾸고, 사기 전과로 비자받기가 어렵던 판수는 민준을 통해 미국으로 떠날 생각뿐이다. 각기 다른 꿍꿍이를 가진 두 사람은 아옹다옹 다툰다. 민준은 판수가 영 못 미덥다. “돈만 벌면 된다”던 판수는 민준의 대의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티격태격 다투는 이들의 모습은 극 전반을 지배하는 긴장감 속 단비처럼 재미를 준다.

아는 맛과 쪼는 맛 사이 ‘비공식작전’ [쿡리뷰]
‘비공식작전’ 스틸컷. 쇼박스

하정우의 활약이 도드라지는 영화다. 대부분의 웃음이 하찮아진 하정우의 신세에서 터져 나온다. 다수 영화에서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과 달리, 전투 능력이 전혀 없고 겁 많은 민준을 연기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능청맞게 대사를 소화하면서도 눈 뜨고 코 베이는 민준의 어수룩함을 차지게 표현한다. 처량한 신세가 돼 “너무 피곤하다 진짜”라고 푸념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주지훈은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판수의 의뭉스러운 면을 살린다.

다만 하정우와 주지훈의 널리 알려진 친분이 극에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기묘한 동행을 함께하는 두 배우의 모습이 너무 익숙한데, 초면에 죄송하다는 대사가 나올 때면 웃음보다 극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민준과 판수로 보이다가도 어떤 대목에서는 실제 하정우와 주지훈의 모습이 맴돌기도 한다. 다만 버디무비 요소로 기능하는 장면들에서는 이들의 차진 호흡이 재미를 배가한다.

아는 맛과 쪼는 맛 사이 ‘비공식작전’ [쿡리뷰]
‘비공식작전’ 스틸컷. 쇼박스

김성훈 감독은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언제나처럼 기본기에 충실한 ‘쪼는 맛’을 곳곳에 심어뒀다. 피랍된 외교관을 구한다는 설정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연출을 쏟아부은 듯하다. 소소한 장면에서도 상황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대단하다. 실생활에서 느낄 법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 중 인물의 감정에 공명하게 이끈다. 구출 영화의 옷을 입은 스릴러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끝까지 간다’와 넷플릭스 ‘킹덤’ 등 감독 전작을 재밌게 봤다면 ‘비공식작전’ 역시 흡족하게 볼 만하다. 심혈을 기울인 차량 추격 장면과 옥상 추격 신을 볼 때면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하게 된다.

감정을 주무르는 방식은 다소 아쉽다.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몇몇 장면이 억지스럽게 느껴져서다. 캐릭터들의 심경 변화에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유치한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늘어지는 전개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인 만큼 진정성은 확실하게 살아있다. 쏟아지는 총알비 속에서 다닥다닥 붙은 건물을 뛰어넘고 좁디좁은 골목을 택시로 질주하는 민준과 판수의 통쾌한 액션은 기대하고 볼 만하다. 1980년대를 충실히 재현한 소품들과 이국적인 풍광 역시 볼거리다. 긴장과 웃음의 비율 역시 적절하다. 다음 달 2일 개봉. 12세 관람가. 상영 시간 132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