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의 숙원, 명장이 아닌 감독대행이 이뤄냈다 [롤드컵]

2016년 이후 7년간 월즈 무대에서 우승과 연 멀었던 T1
지난 7월 코치였던 임재현 코치, 감독 대행으로 보직 옮기고 대성과 이뤄내

기사승인 2023-11-19 20: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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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의 숙원, 명장이 아닌 감독대행이 이뤄냈다 [롤드컵]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임재현 T1 감독대행(밑에서 2번째). 라이엇 게임즈

‘독이 든 성배’의 악몽을 끊어낸 인물은 어떠한 명장도 아닌 소방수였다.

T1은 19일 서울 구로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중국 LoL 프로리그(LPL)의 웨이보 게이밍과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승리해 우승했다.

2017년과 2022년에는 준우승에 그쳤던 T1은 2013년, 2015년, 2016년에 이어 7년 만에 통산 4번째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렸다. T1의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 역시 최초의 4번째 우승 선수로 등극했다.

2019시즌이 끝나고 김정균 전 감독이 물러난 이후 T1 감독직에는 많은 이들이 거쳐갔지만 그 누구도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0년에는 과거 중국 LPL의 인빅터스 게이밍(IG)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했던 김정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월즈 진출도 하지 못한 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21년에도 ‘대니’ 양대인 감독과 ‘제파’ 이재민 코치가 지휘봉을 잡았지만 시즌이 한창이던 그해 7월에 사실상 경질됐다.

이후에도 T1 감독 잔혹사는 이어졌다. 2022시즌에는 팀의 단장을 맡고 있던 ‘폴트’ 최성훈이 감독을 맡아 스프링 시즌의 우승을 견인했지만 그해 월즈를 앞두고 감독직을 내려놨다. 이후 팀의 레전드였던 ‘뱅기’ 배성웅이 월즈 준우승을 이끌고 이후에도 꾸준히 성적을 냈지만, 연달은 우승 실패에 결국 2023시즌 7월 감독직을 사임했다.

연달아 감독직에서 사임하는 사태가 이어지자 T1의 감독직을 두고 많은 이들은 ‘독이 든 성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T1의 숙원, 명장이 아닌 감독대행이 이뤄냈다 [롤드컵]
‘톰’ 임재현 감독대행. 사진=차종관 기자

배 전임 감독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톰’ 임재현 코치였다. 임 코치는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임 감독 대행은 2015년 T1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코칭 스태프로 보직을 옮긴 뒤에는 중국과 한국, 베트남을 오가며 코치직을 맡았다. 다만 완벽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내기도 했다.

T1에서 시작은 좋지 않았다. 팀의 핵심이었던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이 손목 부상으로 ‘2023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스플릿’ 도중 결장하면서 팀도 8경기에서 1승 7패, 중위권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상혁이 복귀하면서 임 감독 대행의 체제도 다시 이륙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천천히 전력을 가다듬고 연전연승을 거두더니 결승 무대까지 밟았다. 젠지e스포츠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T1은 2시드로 올해 월즈에 진출했다.

월즈에 진출하고 나서는 T1은 비상했다.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3승 1패로 8강에 진출한 뒤 LPL의 리닝 게이밍과 4강에선 그랜드 슬램에 도전하는 징동 게이밍까지 격파하고 결승 무대를 밟았다.

T1의 숙원, 명장이 아닌 감독대행이 이뤄냈다 [롤드컵]
T1이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T1은 끝내 결승에서도 임 감독의 능력이 돋보였다.

이 과정에서 임 감독 대행 체제의 T1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T1은 메타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라인 주도권이 강한 챔피언을 통한 스노우볼의 스타일을 꺼냈고, 이를 메타에까지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또 밴픽 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팀원들이 잘 할 수 있는 밴픽을 쥐어주면서 T1이 잘하는 색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 이번 결승전에서도 T1은 바텀 라인전을 강하게 가져가는 밴픽을 극대화시키면서 메타를 바꾸기도 했다. T1이 점점 좋은 성적을 내자 팬들은 ‘톰버지(톰+아버지)’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임 감독 대행은 최병훈 현 DRX 단장-김정균 코치 시절 이후 T1의 최초 월즈 우승을 달성한 감독으로 남게 됐다.

임 감독 대행은 경기가 끝나고 열린 공식 인터뷰에서 “우리가 올해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결국 이렇게 좋은 결말을 맺으려고 힘들었나 싶다. 기분이 되게 좋다”라면서 “오늘을 위해서 조금 더 우리가 이전에 준비했던 밴픽보다 더욱 꼼꼼하게 준비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구로=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