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첫 번째 이야기

입력 2023-11-20 15: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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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는 미술사를 공부한 최금희 작가의 칼럼 ‘최금희의 그림 읽기’를 매주 2회 연재한다. 

최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최 작가는 “이같은 노력은 단순한 미술사를 넘어 서양 문화의 원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이해한 바탕에서 정신분석, 실존주의 등 철학과 사상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인간과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을 예정이다. 

최 작가는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편집자 주]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최금희 작가.

오토 반 벤의 ‘미지의 큐피드 천사’ 그림 속의 벽면에서 복원

‘금세기와 지난 세기의 역대 명작전을 통틀어 이렇게 열렬한 전시가 있었던가?’

지난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개막한 페르메이르展이 성황리에 개최됨을 본 현지 언론의 반응이다. 입장권 65만장이 순식간에 매진된, 페르메이르 그림 28점이 모인 21세기 최고의 전시였다. 그 미술관의 타코 디비츠 관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21점을 모아 전시한 후 최대 규모”라며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꿈이 실현되었다”고 말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작품이라고 검증된 전 세계에 있는 작품 37점 중 28점이 전시회에 모였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최대의 전시였다. 45만장의 티켓이 이틀 만에 매진이 되었고, 20만장이 추가발매 되었으나 이베이에서 티켓 한 장에 450만원에 경매될 정도로 인기있었다.

이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43살 평생을 화가로 살았고, 11명의 아이를 두고 생계를 걱정하며 미친듯이 거리를 헤메다 급사한 후, 2세기 가까이 잊혔다가 다시 알려진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향한 전 세계인의 열망이 표출된 결과였다.​

7개국 14개 뮤지엄과 개인에게서 나온 소장품들은 초기의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작품들 몇 점을 제외하곤 전부 소품 크기의 작품들이다. 타코 디비츠 관장을 비롯한 기획진은 프랑스 건축가 미셀 빌모트의 디자인으로 필립스 관을 11개의 주제별로 1~2점씩 작품을 배치하였다. 이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920년 2월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이스 뜨는 여인]을 보고 바랐던 대로 온전히 페르메이르의 작품만을 감상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던 요구가 백 년 후 반영된 전시였다.​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은 낯설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하녀' 등 대표작으로 알려진 ‘베르메르’는 익숙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국립국어원에서 외국어표기법을 개정하며 ‘페르메이르’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베르메르, 영어로는 버미어로 불린다. 그의 대표작 중, 지난 전시회에서 필자가 자세히 본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공유하고자 한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전경.

전시장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하니 ‘페르메이르에 가까이’라는 제목으로 큐레이터의 설명이 있었다. 그는 델프트(Delft)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망했다. 개신교 신앙을 가졌으나 부유한 마리아 산스의 딸 카타리나 볼레스와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장모의 집이 있는 마르그트 그로테 광장 건너편의 교황의 땅인 파펜후크로 들어갔다. 페르메이르는 약 15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그 중 11명의 아이들이 살아 남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술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 딜러 일을 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 작품들에 둘러싸여 자랐고, 그것들을 보기 좋게 전시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자라서 그는 성 루크 길드에 가입했다. 길드 가입 당시 납입할 회비가 없어 면제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화가들은 길드에 가입해야만 그림을 판매할 자격이 생겼다.

‘성 루크(누가)’는 성 모자상을 그리던 화가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화가 길드의 이름은 모두 성 루크이다. 이후 페르메이르는 성 루크 길드의 회장이 되었으며 델프트와 근처 도시에서만 알려진 화가였다. 

그가 사망한 후 50년이 지난 1675년까지도 그의 작품들은 소수의 애호가들과 수집가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1696년부터 화가 페르메이르의 이름 대신 '델프트 반 데 메르(Delfse van der Meer)'라는 이름으로 그림들이 가끔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 피테르 데 호흐, 가브리엘 메추, 프란스 반 미에리스 또는 렘브란트와 같은 17세기의 유명한 다른 예술가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페르메이르의 진가를 몰랐기에 당대에 더 높이 평가된 다른 예술가들의 그림과 비교되어 가격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792년 파리의 미술상 장 바티스트 피에르 르브룬이 "미술사 학자들이 전혀 말하지 않는 이 반 데르 미어(Van der Meer)는 특별한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작품을 언급했다. 또 네덜란드 출신 미술 평론가 토레 뵈르거는 1866년 파리에서 '네덜란드 회화전'을 기획하면서 '반 데르 메르 드 델프트'에 대해 논문을 썼고, 1870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을 구입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신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헤이그의 미술관에서 페르메이르의 '델르트의 풍경'을 보고 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았다”며 극찬했다. 또 미국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소설로 썼고, 2004년 스칼렛 요한센과 콜린 퍼스 주연으로 영화화되면서 페르메이르는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1657~1658, 캔버스에 유채, 85x 64.5cm, 드레스텐, 제멜데 갤러리 알테 마이스터.

이 작품은 독일 드레스텐 미술관 소장품인데 2021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림 속의 그림’으로 오토 반 벤의 ‘미지의 큐피드 천사’가 그림 속의 벽면에서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페르메이르 예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성과 평온함이다. 그가 묘사하는 실내는 마치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내부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외부와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해야 내부의 완전한 영역에 대한 인상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면, 창문은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하고 외부 세계가 내부에 나타나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보는 사람이 밖에 있는 것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창밖을 쳐다보는 한 인물을 묘사한다. 편지를 읽거나 쓰는 그림과 비슷한 방식으로 창문의 모티브는 바깥 세상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페르메이르가 접촉의 형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모티브를 도입하는 것을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의 한쪽 옆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열린 창을 통해 우리는 편지를 읽는 소녀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마치 벨라스케스의 '거울 앞에 누운 비너스'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거울인 것처럼 이 그림에서는 창이 그 역할을 한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벨라스케스, '거울 앞에 누운 비너스', 1650, 캔버스에 유채, 122.5x17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전시된 페르메이르 작품들은 모두 적외선 사진 등 과학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번호로 아래와 같이 표시하여 관람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1. 소녀의 얼굴에 비치는 열린 창문 위로 붉은 커튼이 드리워졌다. 도트와 물감을 사용하여 빛에 의해 반사되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머리카락을 선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색으로 하이라이트를 주었다.
​2. 녹색 커튼 추가하여 관람자가 은밀한 장면을 훔쳐보는 듯한 관찰자 느낌을 갖게 한다. 큰 와인 잔에 덧 칠을 했다.​
3. 손을 들어 인사를 하며 사랑의 신 큐피드가 속임수의 표시인 두 개의 가면을 짓밟는다. 진정한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므로 편지를…​​

페르메이르는 어떻게 하면 공간에 대한 환상과 우리의 인식 체계를 연결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런 연구의 결과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된 그림이다.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은 마지막 복원 이후 빈 공간이 채워지면서 놀랍게도 '잠든 하녀'와 더 많은 공통점이 발견됐다. 300년이 지난 후, 복원가는 아주 초기 단계에 빈 벽에 덧 칠 된, 비록 벽에 붙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림 속의 그림'을 공개했다. ​​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잠든 하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656~1657

우리는 '잠든 하녀'에서는 마스크가 잔해 더미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큐피드가 오른발로 짓밟고 있는 그림을 더 가렸다. 그림의 도상학은 1608년 오토 반 벤(Otto van Veen)의 그림 '아모룸(Amoru)의 엠블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오토 반 벤은 루벤스의 스승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큐피드가 비슷한 자세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만 같을 뿐, 그가 치켜든 손에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를 들고 있다는 것에서 다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반지는 착용자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도깨비감투와 같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
코르넬리스 보엘, 오토 반 벤의 엠블럼인 '공통 신앙' (진심), 앤트워프, 1608, 55페이지의 아모툼 엠블레마타, 판화, 151x20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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